‘회복적사법 조정자’ 양성 프로그램 가보니… 갈길 먼 제도화 교육 받아도 무용지물

[2010.03.03 22:08]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관계 회복을 이뤄 문제를 해결하는 회복적사법제도(Restorative Justice)가 기존 사법체계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와 가해자 의견을 조정해 합의를 끌어내는 조정자(mediator)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2009년 12월 10∼15일 “우리 아이를 용서해주세요” 가해-피해자 갈등 해결 ‘회복적 사법’ 시리즈 참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회복적사법의 제도화가 요원해 조정자가 양성돼도 그 기술과 지식이 활용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조정자 양성 프로그램 가보니=지난달 27일 서울 대방동 여성복지재단 4층 회의실에 모인 20여명의 눈이 반짝거렸다. 평화여성회 주최로 열린 ‘회복적사법 조정자 양성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들은 역할극을 통해 조정 기술을 익혔다.

참가자들은 각각 팀을 이뤄 2008년 7월 10일 오후 3시쯤 서울 공덕동 한 공원에서 발생한 청소년 폭행 사건의 피해자, 가해자, 조정자를 맡았다. 가해자의 보호자가 된 참가자가 “사기꾼이구만”이라고 소리치자 조정자 역할을 맡은 또 다른 참가자는 “사건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뜻”이라며 피해자와 중재를 시도했다.

회복적사법 조정자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곳은 평화여성회가 유일하다. 참가자들은 40시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사건 당사자들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고 합의를 도출했다. 이들은 이틀 동안 조정 절차와 형법 등 이론을 먼저 배운 뒤 역할극을 통해 소통 기술을 습득했다.

민영(48·여)씨는 “자식이 싸워도 조정자 역할은 필요하다. 화해를 이끌어내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교사를 ‘왕따’시킨 경험이 있다는 한 참석자는 “피해자 역할을 해보니 당시 선생님의 고통이 느껴져 마음이 무너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조정, 효과 있으나 활용 기회 없어=참가자들은 조정의 필요성과 효과에 공감했다. 안향숙(42·여)씨는 “조정 실습에 참여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편한 마음에서 마음속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상호 신뢰가 생기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정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존재다. 조정자가 제 역할을 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고 신뢰를 구축해 화해와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조정을 활용할 기회가 없다는 게 한계다. 경찰(2007년)과 법원(2008년)이 회복적사법제도를 시범 운영할 당시 조정자가 투입됐지만 그때뿐이었다. 정부는 회복적사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회복적사법의 긍정적 효과를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제도화에 대해 연구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박수선 소장은 “청소년 범죄가 발생했을 때 적어도 학교 단위에서라도 조정자를 투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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