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평화운동의 활동과 과제


                                                                                               조영희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2010 동북아여성평화회의에 참가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북아일랜드 등 멀리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토론 장소에 바쁜 일정을 조정하며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자매애와 감사를 동시에 느낍니다.


  아시다시피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2007년 4개국 방문으로부터 2008년 국내에서, 2009년에는 워싱턴에서, 2010년 서울에서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KWAU)과 민족화해화협력범국민협의회(KCRC) 여성위원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WMP) 등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연합하여 이 회의를 준비해왔습니다. 여성들이 이런 국제회의를 조직하고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재정적인 문제 외에도 요즈음 남북한과 동북아의 정세가 우리가 바라는 평화의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흘러가는 데서 오는 좌절과 실망이 무척 컸기에,  우리의 소진된 평화에의 염원을 다시 모으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가 여성들의 평화에의 열망과 희망을 다시 확인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향한 여성들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단절과 좌절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남북관계는 크게 후퇴했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틀인 6자회담도 중단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후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 3000'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를 이루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지원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선(先)비핵화'는 이후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은 그간의 6자회담의 성과, 특히 9.19공동성명(2005)과 2.13합의(2007)에서 동의된 원칙 즉 북한의 비핵화, 북-미관계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동북아평화안보체제 등을 병행해서 이루어 간다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commitment for commitment, action for action)의 원칙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의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이루어진 6.15 공동선언(2000년)이나 10.4 합의(2007)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이명박정부의 정책은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남북한 이렇게 6자회담 참여국 사이의 국제적 합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비핵화의 조건으로 자국의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고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남한정부가 먼저 비핵화를 해야 교류와 협력,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요구한 것은 먼저 항복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비핵화 조치이후 약속한 지원과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북한으로서는 그 실행을 강제할 방법이 없어지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남북관계 경색은 당연한 수순이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북한이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에 이어, 다시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을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조치입니다. 이는 ‘핵 없는 한반도’를 희구하는 우리 여성들에게 다시 한반도의 위기, 나아가 동북아의 긴장고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것을 세계평화를 위한 새 출발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뜨겁게 환영하였습니다. 부시정부가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21세기에도 전쟁의 공포를 세계로 확산시켰던 것을 오바마정부가 중단시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네오콘들의 강경책과 모습이 너무나 흡사합니다. 오바마 정부가 ‘전략전 인내’라는 이름으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할 경우 그 결과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뿐입니다. 우리들은 오바마정부의 대북정책은 클린턴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관여정책이나 부시정부 말기에 시도된 대북협상정책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방향에서 추진하는 대북정책이 북핵폐기와 동북아평화를 정착하는 것으로서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핵 없는 세계’와 동북아 평화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또한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비극적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남한정부는 사과와 조사, 그리고 재발방지조처를 요구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조사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지만 유감 등의 표시를 했고 2009년 8월 방북한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광객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남한정부는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이 사건 이후에 금강산관광 중단, 남북교역 축소, 인도적 지원 중단, 민간교류와 지원 중단, 이산가족 상봉 중단과 함께 남북관계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겨우 개성공단만이 남북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실마리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여성들의 입장에서 가장 수용하기 힘든 일은 인도주의적 지원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2009년 남북여성대표자회의가 개최 직전 정부의 불허로 무산되고, 일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해 평양에서 열리기도 되었던 남북여성들의 모임(2010.4.)도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남한여성들이 참석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남북여성대표자회의는 2000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이루기 위한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시작되어, 여성들이 남과 북을 오가며 서로의 이해를 높이고,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해오던 지속 사업이었으며, 일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여성들의 협력도 거의 20여년 동안 지속되어온 일입니다. 이 일로 가장 슬퍼한 사람들은 북한에 고향을 둔 14명의 나이 든 일본군 성노예 출신 할머니들이었습니다.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은 어쩌면 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고향방문을 눈앞에 두고 쓰라린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고향에 가서 그간에 쌓인 한을 풀 기회를 놓친 할머니들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마저 정부가 막는다"고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민간교류나 경제협력은 그 자체의 의미 뿐 아니라 남북이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 그 여파를 흡수하는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듯 민간교류를 제한하는 것은 경색되고 긴장된 남북관계의 완충지대 역할을 걷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금강산의 비극적 사건이 지난 2년 동안 남북 사이에 충분히 해결되지 않음으로써 이번에 겨우 합의된 이산가족 상봉도 그 날짜가 자꾸 연기되고 있습니다. 남한 땅에는 80세가 넘은 고령의 이산가족이 7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분들 역시 언제나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장소문제와 상봉의 조건문제로 기(氣)싸움을 하고 있을 때, 지난 60년을 견뎌온 어르신들은 오랜 기다림과 병마로 지쳐가고 있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상봉하지 못하고 이미 사망하신 분들이 4만 명이나 넘는다고 합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가장 큰 인도주의적 문제이며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이 든 노인들의 눈물을 앞에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흥정하는 모습은 하루 빨리 중단되어야 합니다. 남북 당국의 대범한 정치적 결단만이 그동안 쌓인 이산가족의 눈물과 한을 풀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도 여기저기 물난리가 났고 북한에서도 역시 신의주를 비롯하여 수해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정부차원의 지원은 물론 시민단체 등 민간에 의한 지원도 정부가 불허하여 중단되었습니다. 다행히 정부가 북한의 수해에 대해 100억 원 가량의 긴급지원을 결정했습니다. 남한의 지원단체들 뿐 아니라 시민단체, 농민단체들이 환영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남한 정부는 약 5천 톤의 쌀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5천 톤은 사실 기대한 것보다 적은 양입니다. 2006년의 수해 때는 약 10만 톤의 쌀을 지원했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남한정부의 북한 쌀 지원은 중단되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매년 4-50만톤의 쌀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남한은 쌀이 남아돌아 비축할 장소도 부족하고 또 새로 추수하는 쌀도 보관할 곳이 없는 긴급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남아도는 쌀이 약 140만 톤이라고 하니 지난 2년 반 동안 북으로 지원하지 않은 쌀이 고스란히 남은 것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먹을 쌀이 부족한데 남한에는 쌀을 담아 놓을 창고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하는 것은 남아도는 쌀을 가축을 위한 사료로 사용할 계획이라는 언론의 보도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탈북자가 늘어나고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가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입니다. DMZ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 사이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저는 여기서 평화란 바로 먹을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라는 한자 화평(和平)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떠올립니다. 한국여성평화운동의 대모(代母)이자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초대회장이기도 하셨던 고(故)이우정선생님은 한자 화(和)는 쌀(米)과 입(口)이 합쳐진 것이고 입에 들어가는 식량이 평등(平等)할 때 바로 평화(平和)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즐겨하셨습니다. 실로 먹을 것이 골고루 나눠진다면 평화가 이뤄질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 동북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모인 우리 여성들이 그 어느 때 보다 '먹을 것의 나눔'이라는 평화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 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먹을 것이 제대로 나눠지지 않는 남북한의 현재의 상황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평화의 시대입니다.   



불안한 평화


  올해 3월 26일 서해에서 천안함이 침몰되어 해군장병 4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남북이 해상경계선을 마주하고 있는 서해바다는 분쟁의 바다였습니다. 2007년 10월 4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를 더 이상 분쟁과 갈등의 바다가 아닌 평화와 협력지대로 만들자고 합의하였지만, 여전히 여기에는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후 국방부의 주도하에 국제조사단이 꾸려졌고, 5월 24일의 발표는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진실 규명에 초점을 두고 싶지도 않고, 원인을 둘러싼 복잡한 논쟁을 연장할 충분한 자료나 증거도 없습니다. 다만 그 이후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변화에 대해 여성평화운동가의 한 사람으로서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곧바로 반발하고 공동조사를 요구했습니다만, 이는 한국정부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2년 전 금강산에서 남한의 민간인이 북한군 병사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남한정부가 조사를 요구한 것을 북한이 거부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재현된 것입니다. 남한이 북한 땅에서 조사를 요구했을 때 북한은 거부했고, 북한이 남한 영해에서 조사를 요구했을 때 마찬가지로 남한은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는 더 큰 단절과 과거의 적대관계로의 회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안함 사건 이후 동북아의 정세가 마치 냉전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남한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UN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갔고, 북한 제재를 미국과 일본정부는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한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천안함은 외부의 "공격"으로 침몰되었지만, 그 공격 주체는 명시되지 않는 아주 이상한 내용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 동해에서는 조지 워싱턴호라는 항공모함도 참가하는 대규모의 한미군사합동훈련이 실시되었고 처음으로 일본군이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군과 미군은 을지프리덤 합동훈련을 실시했는데, 이는 북한의 긴급사태에 대비한 일종의 북한접수훈련입니다. 또한 지난 9월말에도 한국군은 한국형구축함(KDX-II), 호위함, 초계함 등을 동원하고 미군은 존메케인함(DDG-56)과 피츠제럴드함(DDG-62)등 대규모 전력을 동원한 대잠수함전 훈련을 하였습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동맹을 강화되고 있으며 아울러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이 보다 더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중국과 더욱 가까워짐으로써 안전보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해 5월과 8월 중국을 연달아 방문한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남한이 미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연달아 하는 것은 군사전략을 ‘방어’전략에서 ‘적극적 억제’원칙으로 전환한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 군사력 강화를 통한 억제는 상대방의 군사력 강화를 가져와 남북 정부의 군사력 경쟁이 점차 가속화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공격적 군사전략은 반드시 타격해야 할 적을 상정합니다.


  군사전략을 '방어전략'으로 세웠을 때는 군인들은 국토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면 되지만, 공세적 '적극적 억지전략'으로 바뀌면 반드시 패배시켜야 할 적대적 대상이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호전적인 교육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우리 젊은이들이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기반하여 적대감을 고취하고 이를 내면화하면서 군사훈련을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적대감을 고취하는 병영의 군대문화는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의 군사화로 확장되고 군사문화가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갈등과 분쟁을 대화와 타협, 협력을 통해 해결한다는 이른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는 단지 평화운동가들 만의 공염불일까요? 남북이 분쟁지역이나 긴장요인을 대화를 통해 관리하고 합리적 판단을 통해 양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공동의 이익을 찾아내는 정치적 협상력이나 수완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합니다. 무력적 수단에 의한 갈등해결이나 전쟁이 불러올 파국과 재앙을 예상한다면, 우리는 모든 대화의 기회를 신뢰조성과 화해형성의 장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의 실무회담이나 인도적 지원을 의논하는 실무모임 등 작은 기회라도 후퇴된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로 만들려는 적극적 의지가 절실한 때입니다.


  2000년에 발표된 6.15 공동선언은 주로 남북의 교류와 협력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평화와 안보 관련사안, 즉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군비경쟁, 한미동맹 등 군사적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는데, 김대중대통령은 한반도와 평화와 안보문제가 남북한만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 출발을 위한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대북화해협력 정책으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대북교역이 활성화되고 민간차원의 교류와 지원도 발발해졌습니다. 남북여성들의 만남도 6.15, 8.15 등에 이뤄졌고 금강산과 평양에서 대규모의 남북여성통일행사나 여성대표자 모임 등도 정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듯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대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로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통일을 향해 함께 노력하는 관계였습니다.


  전임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을 이어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와 안보문제, 특별히 북한 핵문제를 6자회담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병행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9.19 공동선언 이후 부시대통령과의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의 내용을 확인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고(2005.11.17.), 김정일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종전선언을 위한 3자 혹은 4자 회담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2007.10.4.). 이러한 지난 10여 년의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사이에 남북한 관계는 상호에 대한 불신, 상호비방, 공격적 언사들로 채워졌고, 남과 북을 이어주던 교두보는 거의 다 끊어졌습니다. 남은 것은 난무하는 적대적 언어와 예정된 군사훈련과 같은 것입니다. 하여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잠재적 가능태로 우리 앞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것은 "불안한 평화"일 뿐입니다.


  남북한의 관계가 불안해 지면 동북아의 평화도 역시 불안해집니다. 미국과 중국은 G2라는 말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듯합니다. 속담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란 제재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각축전에 한국의 기업들은 벌벌 떨고 있습니다. 또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역시 우리는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동북아에서도 불안한 평화가 간신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성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의 여성평화운동은 그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남북여성교류 외에도, 북한의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과 관련하여 이라크파병에 반대하는 활동을 포함한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평화교육과 평화문화 확산에도 노력하였고, 특히 갈등해소와 관용교육은 여성운동이 제일 먼저 시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제 이는 사회 각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특히 자라나는 세대인 청소녀들에 대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집행하면서, 오랜 분단사회인 한국에서 평화를 일상생활의 문화로 접근하는 데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통일이나 국방관련 정책결정과정에 여성 참여 확대를 요구하였고, 이러한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실시나 유엔안보리 1325조항의 시행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 외교, 국방분야 정치집단의 평화감수성이나 젠더감수성은 대단히 낮아서, 여성들의 요구는 아무런 현실적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의 경험 속에서 한국여성들은 점점 더 불안한 평화가 가지는 취약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불안정성을 극복하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를 수립해야 할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얻은 역설적 깨달음이라고나 할까요?


  한국여성들은 지금 해외에서 오신 여러 자매들과의 연대활동과 협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동북아지역의 여성들이 모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지식과 지혜, 그리고 비전을 나누는 자리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자국의 이해를 둘러싼 동북아 국가들의 대결과 경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와 국제관계는 무자비하게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해서 얻는 이익 보다는 동북아의 공동의 안보, 공동의 발전, 공동의 번영이 가져다 줄 성과가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한반도 비핵화 및 한반도평화체제와 동북아의 안전보장 체제를 공동으로 논의할 다자적 안보협력체계의 틀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현재 가장 절박한 문제를 풀어나갈 공론의 장인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2010 동북아여성평화회의가 6자회담 당사국들에게 하루 빨리 종래의 논의구조로 복귀하도록 촉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물론 여기에 여성들도 협상의 당사자나 참관자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길을 제공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이미 2009년 미국 워싱턴D.C. 에서 개최하였던 동북아여성평화회의 직후, 우리 대표단은 미국 국무부와 상/하원 외교위원회를 방문하였고, 이 자리에서 ‘북한과 관련된 정책결정이나 개발지원과정에서 여성담당자를 절반이상 임명하고, 이와 병행하여 Track II 활동, 즉 여성 NGO운동을 적극 지원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우리의 요구에 대한 답변은 긍정적이었지만, 아직 6자회담이 재개되지 못한지라 이를 구체화할 계기는 마련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이런 요구를 계속 제기하고, 이런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한국정부에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루 빨리 재개할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번 지원을 북한의 신의주 지역의 수해에 대한 지원으로 한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주민은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과 특히 여성과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식량과 약품 지원을 재개해야 합니다. 현재 사용하지 않고 남은 남북교류협력기금(2008년 집행률 18.1%, 2009년 집행률 8.6%)은 바로 긴급한 구호를 기다리는 북한의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남북여성들의 교류를 재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다양한 이유를 거론하며 남북여성상봉 모임을 제한해 왔습니다. 또 남북여성교류 실무에 참여하는 여성인사의 북측인사 접촉도 불허했습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남북의 평화공동체를 지향한다면 여성들을 비롯한 민간차원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 지원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간차원의 교류와 연대는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는 완충지대 역할은 물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북의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진정한 평화교육의 현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대결과 경쟁의 군사문화에서 대화와 협력의 평화문화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군사적 차원에서는 각각의 대결적인 양자동맹의 강화가 아니라 동북아의 공동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다자안보협력체제로, 경제적 차원에서도 상생을 지향하는 경제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각국들이 상생(win-win)하는 관계로 나아갈 때, 즉 평화문화로 나아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상대방의 모습에서 극복해야 할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갈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즉 적대화에서 인간화로 나아가는 길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평화를만드는여성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55길 6, 401호 (02) 929-4846~47 FAX: (02) 929-4843 하나은행 388-810005-03104 국민은행 347-01-0018-351 (예금주 : 평화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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