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국제여성연대의 방향

 

정현백 동북아여성평화회의 추진위원장,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이사장

 

1. 6자회담의 배경 및 현황

 

북한이 핵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대치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이때는 사회주의권의 붕괴, 독일 통일. 한국과 러시아 중국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여기에 북한의 경제난이 더해지자, 북한은 체제위협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에 수교를 요청하거나, 남북 간의 총리급 회담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91년 여름부터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때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외에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타결하여 남북대화의 지속과 많은 합의서를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북한이 1991년 9월 유엔가입을 전격적으로 신청하면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는 북한이 그간 완강히 주장하던 One Korea정책을 포기하고, 체제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Two Korea정책을 수용한 것이다.

 

이렇게 남북 간에 대화를 위한 노력을 진행하였지만,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일시 중단되었던 한미합동 군사훈련 Team Spirit훈련이 1993년부터 재개될 조짐을 보이자, 북한은 이를 미국의 대북압박전략으로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클린턴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NPT탈퇴를 선언하였고, 이때부터 북한과 미국사이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북한의 전략은 성과를 거두어, 양국사이에 실무접촉이 진행되었고, 이는 93년 6월에 미· 북 베를린 협정의 타결을 가져왔다. 다시 94년 9월에는 미국의 북폭계획 때문에 위기가 고조되기도 하였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다시 협상국면으로 들어갔고, 94년 12월 21일 마침내 「미·북제네바기본합의」가 타결되었다. 북한이 실험용 원자로와 건설 중인 핵발전시설을 중지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게 200만Kw의 경수로발전소 설립을 보장받고, 미·북 수교협상도 개시한 것이다. 북한은 핵카드를 통해서 절박한 에너지 난 해결과 미북관계개선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클린턴정부 기간 동안 북핵문제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고, 경수로 공사는 한국이 총공사비의 70% 그리고 일본이 약 20%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일 · 북관계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 햇볕정책을 통해서 남북 간의 관계는 완화되었고, 교류도 활성화되었다. 특히 2000년 최초로 남북정상 간의 역사적 만남을 통해 발표된 6. 15 남북공동선언과 뒤이은 2007년의 10. 4 공동선언은 남북대결의 시대를 화해협력시대로 돌리고 상호인정과 협력을 통해 남북의 재통합을 평화적으로 달성하려는 결정적인 조치였다. 이는 또한 주변 강대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북이 스스로의 힘으로 한반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귀중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1998년 8월 미국에서 다시 북한의 지하핵시설 의혹이 제기되었고, 여기에다가 북한이 대포동1호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일본 여론이 악화되었고, 동북아의 긴장도 고조되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는 신속하게 전 국방장관 페리를 통해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였고, 뒤이은 현장조사 결과 지하핵의혹시설은 텅 빈 동굴이었고, 미사일문제는 북한이 발사를 미루는 방식으로 조정되었다.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로 불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북핵문제는 해결국면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는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더욱 강경해졌고,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하여 HEU(고농축아랴늄)프로그램의 추진의혹을 제기하였고, 이에 북한 외무성 第一副相 강석주가 “HEU 뿐 아니라 그 이상도 가질 수 있다”고 답변하자, 미국은 이를 HEU 추진근거로 제시하면서 대북압박을 시도하였고, 여기에 일본도 곧바로 가세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김대중 정부는 1차 북핵위기(1993-94)에서 남북관계를 핵문제와 연계시켰다가 한국이 고립되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햇볕정책의 정신 아래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하는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로 인해 한미 간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Bush 정부가 중유공급과 경수로 공사를 중단시키자, 이에 북한도 강하게 반발하면서, 2002년 북한은 평양주재 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클린턴 정부와의 협상으로 유보하였던 NPT달퇴를 단행하였다. 또한 IAEA 관리 하에 있던 폐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하고, 풀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실험용 원자로 가동을 시작하였다.

 

북한은 북·미 양자대화를 요구하였지만, 이에 대해 미국은 6자회담 개최를 고집하였다. 부시정부는 북한의 先核폐기가 협상의 출발점이 된다는 주장을 반복하였고, 이에 대해 북한의 핵 카드가 애당초 경제지원을 겨냥한 것인 만큼 양자대화와 주고받기 식의 해결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한국과 중국의 권고를 부시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6자회담은 2년 여 동안 성과 없이 멈추었다. 그러나 2005년 2월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북한의 핵 활동에 관한 정보가 입수되자 미국의 태도는 유연해지기 시작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주도적인 역할 아래 ‘동시행동’과 ‘단계별 해결’을 핵심으로 하는 「9. 19 성명」이 발표될 수 있었다. 이는 북한의 핵 폐기를 대가로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해주고, 이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로드맵이다.

 

그러나 「9. 19 성명」이 발표된 지 불과 며칠 후에 미국이 북한의 위폐 제작문제로 Bank Delta Asia에 대한 계좌 동결조처를 단행하면서 북한이 난관에 빠지게 되자 6자회담은 다시 1년 이상 공전하였다. 이에 북한은 94년 이래 봉인 저장되어있던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서 얻은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고 폭파실험까지 단행하였다.

 

2007년 2월 13일 베이징에서 다시 극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북핵 폐기의 절차로 핵폐쇄(초기 단계)→ 핵불능→ 핵폐기의 3단계를 결정하였다. 이어 북한의 핵신고와 영변 핵시설 폭파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미국은 적성국 교역법 배제/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통보(2008. 6. 26)하면서 2단계 조치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핵 신고 미비로 과정이 지연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이후로 핵폐기가 더 진전되면, 다음 단계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평화체제는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협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아직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적인 의욕을 보이는 국가가 없어서, 현실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민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그 진행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급변하는 현실과 새로운 국제연대의 필요성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26일의 통일부 업무보고는 남북관계의 추진원칙으로 , 실용과 생산성, 철저한 원칙 하의 유연한 접근, 국민합의, 국제협력과 남북협력의 조화를 제시하였다. 이를 위한 실행계획으로는 비핵 · 개방 · 3000 이행준비, 경제협력 확대, 호혜적 인도적 협력 모색 등의 3대 과제를 제안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보이나, 구체적으로 비핵 · 개방 · 3000, 즉 북한의 핵 폐기 이후 개방에 따른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 지원 구상은 새 정부의 차별성과 자신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러나 간헐적인 대북관련 발언들, 예를 들면 ‘북한인권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 “북핵 타결 안 되면 개성공단 확대는 어렵다”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 북의 핵 기지 (선제)타격을 언급한 합창의장 내정자의 발언 등은 새 정부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북은 개성의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직원철수(3. 27), 북한 미사일 발사실험(3. 28), 북한 군부의 남북대화 중단 천명(3. 29)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분간 남북관계에는 단절과 냉각기가 올 것으로 보인다.

 

2008년 4월 18-19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일종의 상견례에 해당하는 회담이어서, 여기에서 한국의 미사일방어체제 참여(MD)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가, 아프가니스탄 추가파병 등이 직접 의제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한미동맹의 새로운 출발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포함한 전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향후에 더욱 돈독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것임은 거의 당연한 코스로 보이고, MD나 PSI에의 참여는 거의 정해진 수순인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다가 지난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폭탄실험은 남북관계 뿐 아니라 동북아 정치정세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핵실험은 국제사회에서 북의 사실적 주권과 협상력을 강화하였다. 이라크전쟁이나 대선과 관련하여 위기상황에 몰린 미국의 주도하에 파생된 6자회담체제는 동북아지역의 평화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지렛대가 되었다. 새 정부 등장이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는 동북아 평화의 해결은 결국 북미관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6자회담체제는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들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이가 다자적 상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는 높아졌지만, 달리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커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이미 미국과의 교역량을 넘어서고 있으나, 양국간의 심리적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 일본, 러시아의 이해관계의 망상에 끼인 남북한으로서는 역외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조정역할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6자회담체제가 보다 평등한 다자적 관계를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인식과 여론이 참여국가 내에서 높아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이 동북아여성평화회의를 사실상 ‘여성6자회의’로 간주하고 별칭을 붙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북아의 현실은 평화와 (인간)안보를 위한 국제체제의 중요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의 평화운동의 중요성이 십분 강조되어야 하지만 동북아의 평화는 여전히 강대국이 연출하는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규정되고 실현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현실에 직면하면서, 여성들은 국제연대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비정부기구간의 국제연대활동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이를 활성화시켜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냉전시대의 유산으로 인해, 6자 회담에 참여하는 국가들 사이에 상호교류와 만남, 대화가 원활하지 못하였다. 또한 일부 국가들에서는 제대로 된 비정부기구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엄격한 의미의 민간교류는 가능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동북아 평화와 관련한 국제연대에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 일본과 미국 사이에 비교적 활발한 교류가 가능하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이 21세기에 들어와 국가 간의 장벽을 낮추는 유럽공동체를 결성하고 화폐를 통일한 데 비해서, 오히려 아시아에서는 국가 차원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평화 역시도 위협받는 실정이다.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비정부기구들은 홍콩, 마닐라, 방콕에 본부를 둔 인권, 평화, 환경, 사회발전 운동단체들과 지역 연대기구들을 중심으로 비교적 활발한 연대활동을 벌리고 있으나, 동북아에서는 여전히 국제적인 연대가 간헐적인 공조활동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실현을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의 의회나 시민사회, 혹은 러시아와 중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한국 여성운동의 오랜 노력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였고, 외재적인 요인이 항시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한국 여성운동은 6자회담에 참여하는 국가의 여성/평화운동이나 해외의 (여성)평화단체나 유엔 등과의 활발한 접촉을 통해서 동북아 평화의 당위성을 국제사회를 상대로 설득해야 하게 되었다. 여성이 시도하는 <동북아여성평화회의>기획은 이런 과제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작업이고, 그래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단합된 노력과 광범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후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니라 보편주의적 잣대로 재어보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북과는 “매우 투명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틀 위에서 적극적으로 대화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나 북한인권문제를 국제적 규범에 토대를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이대통령의 주장은 지금의 현실 속에서 남북관계에 여러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인수위의 통일부 폐지 방안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남북문제를 특수관계의 시각에서만 풀어가는 것은 글로벌 코리아의 구상에 부응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하는데도 큰 어려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구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주의적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맥락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조건과 입장을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접근이 되고 이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국제사회, 특히 서구사회가 한반도가 처한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근대의 보편적 원칙을 그대로 대입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제 우리는 국제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평화실현을 위한 국제사회의 보편주의 원칙과 남북이 처한 특수성을 이해하고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3. 동북아여성평화회의의 배경과 지향점

 

1) 배경 동북아 여성평화회의는 일명 ‘여성6자회의’로 지칭되며, 동북아평화체제 건설과정에 여성의 모습을 드러내고 참여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불참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지만, 경색된 남북관계라는 잠정적 한계조건에 기초한 것이어서 장기적으로는 이 회의를 상징적인 의미의 여성6자회의로 가동하려는 우리의 취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개최 배경을 상술하고자 한다.

 

(1)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실현과정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실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독일의 사례를 통해서 여성이 개입하지 않는 통일과 평화체제 정착과정이 결국 성별에 따른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서 진정한 내적 통일에 실패하는 것을 익히 경험하였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평화의 온전한 실현은 한반도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관련 국가들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여성 공동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실천을 할 때 가능하다. 동북아시아 절반인 여성들이 평화형성의 파트너로서 함께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정책결정, 리더쉽, 교육적 기회에서 배제되지 않는 길이며 여성 세력화에 기여할 수 있다. 폭력과 평화문제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경험적 차이나 감수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여성의 개입이 만들어지는 평화의 모습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여 평화형성 과정에 여성의 통찰력과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이는 화해와 평화형성자로서의 여성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평화과정과 평화합의 이행과정에서 시민사회 특히 여성을 포함시키도록 요구하는 ‘UN안보리 결의안 1325’의 정신을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동북아시아 평화실현을 위한 국제협력에서 여성의 역할이 미약하다

여성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동북아 평화실현을 위해 다양한 국제연대를 진행해왔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는 특히 2007년 “2008 여성6자회담 실현을 동북아시아여성평화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중국/일본/북한/러시아/미국 방문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특히 일본과 미국에서는 여성단체 대표 뿐 만이 아니라 여성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로비활동을 병행하였다.

 

중국에서는 부녀연맹, 반가정폭력네트워크, 북경대 여성연구중심, 일본에서는 동경생활자네트워크, 신일본여성회, I여성회, 아시아여성자료센터, 민주당 여성부장, 사민당 당수, 미국에서는 WILPF 워싱턴 지부, PEACE X PEACE, 코드핑크 등 여성단체 그리고 민주당 여성코커스 공동대표 등은 여성6자회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평화형성의 주체로서 평화형성과정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여성의원들은 남성의원들과는 달리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성주의에 기초한 연대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동북아여성평화회의에 대한 지원을 표명했다.

 

그러나 동북아의 평화 실현을 위한 국제협력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미미하고, 그래서 평화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다. 폭력과 평화문제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경험적 차이는 크다. 여성의 개입은 형성되는 평화의 모습을 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동북아에서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평화만들기를 위해 그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3) 평화형성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낼 공론의 장(場)이 없다

아직까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역사문제, 영토분쟁, 이데올로기적 균열 등 갈등구조가 해체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한반도 평화형성을 위해 노력해온 다양한 경험과 국제 연대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여성들이 평화형성과 화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함으로써 차이를 이해하고, 차이를 수용하며, 신뢰와 우정을 쌓고, 공동의 협력을 모색하는 기회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간간히 있어 왔지만, 평화체제 실현과 관련된 모임은 제한적이거나 주로 개별단체와 단체 사이에 이루어졌다. 또한 여성들의 이런 노력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실제로 여성의 목소리가 공론의 장에 끼어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6자회담에 참여한 국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북한의 여성들이 모여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및 동북아 평화 실현을 위한 여성의 공동과제를 논의하면서, 공론의 장에서 여성적 공간을 확보해가고자 하는 것이다.

 

(4)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 증진에 여성의 관심제고와 실질적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2007년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방문 시, 한국 여성들은 여성 NGO,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문제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의 경험으로는 한반도를 방문하거나 주변에서 이에 관한 정보를 들은 경험이 있는 국회의원, 의원 비서관들이 경우에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쉽게 공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 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회의가 DMZ을 넘어 개성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넣은 것도 이를 통해서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개성 공단을 통해서 갈등을 넘어서는 경제협력의 새로운 시도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우선 참여 여성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적극적인 언론 작업을 통해서 한국에 있는 여성대중에게도 동북아 평화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여성의 역할 증대를 설득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가 거의 정지된 현재의 시점에서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6자회담이 진행되는 지금 평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평화달성 방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알리고, 평화 만들기에서 여성의 주류화를 사회적으로 각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지향점

 

(1) 동북아여성평화회의를 통해 여성들은 먼저 만나야하고, 상호간에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각자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통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평화가 각국 여성의 삶과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여성들은 식민지와 냉전의 경험을 거치면서, 진영, 국가 간 대립의 역사 속에서 서로에 대한 소통의 부재, 오해와 불신을 겪어왔다. ‘6자회담 체제’라는 새로운 다자적 협력체제의 틀이 마련되는 역사적 전기를 맞이하면서, 여성도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바탕위에서 서로 간에 이해와 신뢰를 쌓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주 만나야 한다.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여성들이 그동안 하지 못한, 비평화를 통해 여성이 겪었던 고통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소통의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2)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평화 형성과정에 여성의 참여기회 및 역할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베이징 행동강령에서는 ‘평화와 갈등의 금지?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에서 여성들이 확실하게 개입하는 것이 평화와 안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중심영역 E: 여성과 무장갈등)이라고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평화는 하늘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하고 실현될 수 없다. 하늘의 절반인 여성들이 평화형성의 파트너로서 남성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정책결정, 리더쉽, 교육적 기회에서 배제되지 않는 길이며 평화형성과정에 여성들의 재능을 사용함으로써 여성 세력화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동북아시아 평화 실현을 논의하기 위해 6개국(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북한 여성)이 모이는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UN안보리 결의안 1325’의 정신을 구현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해갈 것이다.

(3)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여성이 갈등의 중재자이자 평화형성자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동북아여성평화회를 통한 소통을 통해서 여성들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파괴적인 냉전구조를 공존과 화해에 기초를 둔 평화구조로 전환하는 데 여성이 갈등의 중재자이자 평화 형성자의 역할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반도평화체제와 동북아 평화 실현은 한반도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여성들의 공동의 목소리와 실천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폭력과 평화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경험적 차이가 큰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여 평화형성 과정에 여성의 통찰력과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확보되어야 한다.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6개국 여성이 모여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동북아 평화 실현을 위한 여성의 공동과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주의 시각에서 6자회담을 향한 여성의 요구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 회의는 장기적으로 참가국 여성들이 갈등에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며, 평화지대를 확대하고, 평화 능력을 향상해 적대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는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도출해 가야 한다. 여성은 더 이상 전쟁의 피해자로만 머물 수 없다. 여성이 스스로 주체로 나서야 하고, 동북아 평화형성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쉽 형성, 공존과 평화문화 확산, ‘동북아공동의 집-동북아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여성의 역할을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과정은 지속적인 과정이며 끊임없는 전환의 과정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연대의 방식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4. 연대의 방법

 

동북아 평화 형성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들이나 여성단체 간에도 그 실천방법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와 입장 차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제안하는 사안들은 그야말로 제안이고, 이 회의에서 이를 둘러싼 토론이 진지하게 진행하여 결론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1) 먼저 동북아여성평화회의를 통해서 동북아평화 실현을 위한 여성평화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여성평화회의를 정례화해야 한다. 첫 출발은 소박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2) 동북아여성평화회의의 준비에서 개별국가와 접촉하는 과정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따라서 지속적인 네트워크와 평화회의의 정례화를 위해서는 국가별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첫 번째 동북아여성평화회의를 준비한 한국 여성운동은 가능하면 여기에 다양한 입장을 지닌 여성들을 포괄하고자 하였다. 한국과 같이 지금까지는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집단끼리만 연대를 모색하는 방식을 선택하였으나, 이제는 다양한 의견을 지닌 평화운동의 지지자를 함께 모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토론이 필요하다.

 

또한 동북아여성평화회의가 각국의 여성 국회의원 혹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참여를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NGO 중심으로 조직할 것인지, 의원들도 대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경우에는 별도의 기구를 구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도 함께 토론해야 한다. 평화운동을 하면서, 의회에서 활동하는 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확인한 까닭에 여성운동이 공동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4) 다음 여성평화회의의 개최를 위한 방식과 담당주체를 선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계속 이런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국가에서 개최를 주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 참조: 그간의 국제적 연락 및 네트워크 여성 6자회담 성사를 위한 동북아여성단체네트워크 추진을 위해 방문했던 단체, 여성의원들과 연락 및 소통 ○ 중국: 부녀연맹, 반가정폭력네트워크, 북경대 여성연구중심 등 ○ 일본: 페미니스트의원연맹, 동경생활자네트워크, 신일본여성회, I여성회, 아시아여성자료센터, 여성의원 ○ 미국: WILPF 워싱턴 지부, PEACE X PEACE, 코드핑크 등 여성단체 그리고 민주당 여성의원 ○ 러시아: 러시아여성연합, 러시아평화재단 ○ 북한: 615 및 815 통일행사 여성상봉모임시 여성6자회담과 관련한 네트워크 구성 및 2008 여성 6자회담 개최계획 등의 내용을 함께 공유하고 여성6자회담 참여를 적극적으로 타진 (작성: 200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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