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실현 과제와 여성 평화운동의 역할
- 한국 여성의 관점에서 본 동북아시아 평화 -

                                           
한정숙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
서울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후 타의에 의해 분단되었다. 단독정부 수립, 전쟁, 휴전을 겪었고 냉전 상황 속에서 극한적으로 대립했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한반도에서는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극복은 남북한 양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동북아 전체의 평화정착과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반도 문제에는 기본적으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했고, 현재도 한반도 평화의 확립에는 주변국들의 이해가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엄밀히 말하면 유엔군사령부의 소속국), 중국은 북한과 함께 한국전쟁 이후 체결된 휴전협정의 당사자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지배와 2차대전을 한반도 주민들에게 강요함으로써 결국 한반도 분단을 초래한 제 1원인 제공자이다. 러시아는 2차대전 후 한반도 분할점령의 한 당사자였고 냉전시기에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의 정착에서는 이들 관련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역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동북아와 나아가 세계의 평화정착에 필요불가결하다. 한반도의 긴장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긴장과 군비 증대를 가져온다. 
   남북한의 관계는 냉전 시기를 통해 적대적이었으나 국제적 냉전 종식 후 햇볕 정책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2008년 초부터 양자 관계는 다시 경색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이 구성되었으나 현재 6자회담은 정체 상태에 빠져있다. 회담의 활성화와 의미 있는 진전,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해 새로운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서 여성의 역할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여성은 평화의 교란으로 인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피해를 당하는 집단이며, 평화를 바라는 성향 또한 강한 집단이다. 세계 역사상 평화주의적 노력에서 많은 여성이 참여해 왔음이 이를 말해준다. 여성의 주체적, 능동적 노력은 긴장된 국제관계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에서도 여성 평화운동은 다년간에 걸친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동북아여성평화회의는 그 하나의 가시적 성과의 하나이다.
  이 발표에서 나는 남북관계의 변화와 한국 여성평화운동의 현황을 개관하고, 여성평화운동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한반도 상황과 남북한 관계의 전개 

 

(1) 남북한 관계와 북핵문제의 전개

1) 남북한 관계의 변화
  한국전쟁 후 남북한 관계는 심각한 대결로 일관하였으나, 1970년대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의 형성에 따라 변화가 찾아왔다. 19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된 데 이어, 남북한 최고 권력자들의 의지를 반영한 ‘7.4 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공동선언에서 남북한 당국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천명하였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완화되고 결국 종식되자 남북한 관계도 중요한 전기를 맞이하였다. 남한 정부는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수교한 후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이는 남북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정책을 위해 중요한 문서인데, 한국에서는 보수파이자 군부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 집권 시절에 채택된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심장하다.   
  국내정치적으로는 군부출신 대통령들에 비해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보수주의자였던 김 영삼 대통령 집권기에 남북관계는 오히려 긴장되었다. 1993-4년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발생했다. 이것이 이른바 1차 북핵위기이다. 이 위기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제네바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 직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김 정일 위원장이 집권하였다.
   1998년 2월 김 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정부는 남북한 화해협력정책인 햇볕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 6월에는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남북한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을 계기로 남북 사이의 정부와 민간 차원의 다양한 교류가 활발히 일어났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2002년 10월 북한의 NPT 탈퇴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으나 남북한 사이에는 전쟁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2003년 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등장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기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는 이를 평화번영정책이라 칭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8월 6자회담이 시작되었다. 6자회담에는 남북한 미국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고 있다. 2006년에는 북한이 군사적 실험을 강하하여 6월에는 동해안 미사일 발사로, 10월에는 핵실험으로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드높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인적, 물적 교류는 계속되었고 특히 개성공단을 비롯하여 경제협력사업이 확대되었다.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대통령의 방북으로 평양에서 2차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렸고 10월17일의 남북정상선언이 채택되었다.
  요약하자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남북한 기본관계에서는 대화와 협력정책에 바탕을 둔 인적 물적 교류의 확대정책을 지향하였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원칙으로 관련국들의 대화를 중시하여 6자회담이라는 틀을 마련하여 유지하였다.

2) 북핵문제의 전개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핵문제는 논의의 핵심이므로  2002년 10월의 이른바 2차 북핵 위기 발생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해결노력 과정을 요약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 2차 북핵위기 발생 후 관련국들은 6자회담을 설치하였고, 2006년 가을에는 북한의 핵폐기 공약을 명시적으로 담은 9.19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9.19 공동성명 직후 BDA 금융제재 문제가 돌출하자 북한은 핵실험 강행으로 맞섰고, 이로 인해 다시 위기가 발생했다. 6자회담 당사자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2007년 초,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인 2.13 합의를 채택했다. 여기서는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과 BDA 금융제재 해제가 핵심이었다.
 - 2007년 가을에는 핵폐기를 위한 2단계 조치를 담은 10.3 합의를 도출했다. 여기에는 2007년 말까지 북한이 핵시설들을 불능화하고 핵계획을 신고하면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삭제, 적성국무역법 적용종식 등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 북한이 핵신고 시한을 넘겼지만 북미간 집중 협상으로(4.8 싱가포르 합의) UEP, 시리아 핵협력 문제를 우회적으로 돌파했다.
 - 북한의 핵신고 및 미국의 적성국 교역법 배제 /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 통보(2008. 6.26)로 2단계 조치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갔다.
 -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지 거의 6년만에 9.19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 포기”를 위한 3단계 진입의 토대를 마련했다.

 

(2) 미국과 북한
  여기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관련하여 중요한 독립변수가 되고 있는 미국의 역할을 살펴보자. 미국과 남한의 대북한 정책은 1990년대 이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으나 1990년대 초부터 방향이 엇갈리는 경우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1990년대 전반 1차 북핵 위기 때 클린턴 행정부와 한국의 김 영삼 대통령 정부 사이에 대북정책의 차이가 나타났다. 미국은 대북 유화책을 쓰고자 하는데 반해 남한 정부는 강경책을 구사하고자 하였다. 1994년 1차 북핵위기가 발발했을 때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하고 핵사찰을 받으며, 그 대신 미국은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준다는 것이 합의내용이었다.
   1998년 초 김 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후 클린턴 정부와 한국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보조를 같이하게 되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리 프로세스를 진행시켰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간이 방북했다. 이로써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는 북한과 미국이 수교 직전의 상태까지 갔다. 그러나 미국에 조지 부시 2세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자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다른 두 나라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고, 북한도 미국에 대해 강격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2002년 10월 북한이 핵개발을 재개했다는 의혹이 재개되면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북한에 핵을 먼저 포기하라고 요구한 반면, 북한은 미국과 북한이 불가침조약을 맺은 후에야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참여정부는 미국을 대북화해정책으로 이끌고자 했으나 양국의 정책에서 일정한 차이가 생겼다.
  최근 오바마 정부는 북한을 향해 대화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북한은 아직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국 간에는 아직 상호불신이 극복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전향적인 정책을 받아들여야 하며, 동북아평화 확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과 같은 문화적 교류의 확대, 여성들의 상호방문과 교류 등은 정치적 대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의 남북관계

 

1)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대북 정책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 남북문제에서 실용적인 정책을 쓸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다시 말해 기존의 남북대화정책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이 명박 대통령은 대북관계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취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북정책 방향 : 비핵, 개방, 3000
 - 비핵: 북핵 폐기 우선. 북핵문제의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입장.
 - 개방 :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요구하며 상호주의 강조
 - 3000 : 북한의 국민소득 3000불 달성 지원

이는 기본적으로 ‘상호주의’원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지원은 ‘북핵연계’ ‘인권개선’ ‘한미공조’을 전제로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인도적 지원도 중단하였다. 이 명박 대통령 정부는 남북경제협력도 비핵화와 개방 정도에 맞춰 진행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2) 남북관계의 경색과 새로운 조짐
6.15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남쪽 정부의 실천 약속이 없자 북한은 사실상 ‘통미봉남’의 길로 들어가 대화를 중단하고 있으며, 2008년 여름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관광이 중단되고 민간교류도 중단되었다. 북한은 두 선언의 불이행을 이유로 들어 개성관광까지 중단했고, 개성공단 유지 전망에 대해서도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남쪽과 미국의 반응이 없자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한 근로자와 북한에 관해 취재하려던 미국 여기자 두 명을 각기 체포하여 구금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의 중요 변수인 북핵문제는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직후인 5월 25일에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 전대통령이 방북하여 억류되었던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귀국했으며, 한국측에서는 현대아산의 현정은 회장이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여 억류근로자와 함께 귀국했다. 더욱이 김대중 전대통령이 서거한 것을 계기로 북한은 고위인사로 구성된 정식 조문사절단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주역이었던 김 전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의 심리가 남북관계를 푸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돌이켜 보면 남북한 관계의 유지와 발전은 북핵문제 악화를 막아내는 안전판이면서 동시에 북핵문제 진전에 기여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다.  6자회담이 대결국면을 지속할 때 그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를 완화시키고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비교적 원만한 남북관계였다. 6자회담이 협상국면에 진입할 때 북한과 미국의 타협을 더욱 가능하게 하고 북한의 건설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었던 것도 남북관계 덕분이었다. 현재의 남북관계 아래에서는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정세변화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4) 미국의 역할에 대한 제안

북핵문제에 대해 미국은 행정부에 때라 강경대응, 온건대응을 번갈아 보여왔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전제 아래 북한에 대해 핵불능화에 대해 확실한 검증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유엔에서 국제사회 전체의 핵군축과 관련한 논의가 있을 때 핵군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한국의 참여연대가 유엔총회에 회부된 핵군축 결의안에 대한 각국의 표결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유엔 총회에서 지난 6년간 (2003년~2008년/58차 회기~63차 회기) 제출된 핵군축과 비확산 이슈를 둘러싼 각각의 결의안과 결정문에 대해, 모든 핵군축 결의안에 미국은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다른 핵무기 보유국가인 러시아, 영국, 프랑스도 미국과 비슷하게 반대 또는 기권의 입장을 취함. 중국을 제외한 핵무기 보유국들은 대체로 핵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 사용 금지를 비롯한 핵군축 스케줄의 필요성을 적시한 핵무기 사용금지 협약에 반대(미국, 영국, 프랑스) 혹은 기권(러시아) 입장을 취하면서 앞으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미국이 자국의 핵무기에 대해 기본적으로 현상유지의 입당을 취하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은 비대칭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이 가장 큰 원칙상의 문제라면, 더 나아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비로 미국과 북한은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격렬하게 교전했던 교전 당사자들이라는 점이다. 양국은 상호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양자의 신뢰구축을 위한 전진적 결정이 필요하다.
  2009년 8월 미국의 클린턴 전대통령의 방북은 미국 여기자의 석방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한국인들은 2009년 가을 보즈워스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새로운 성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평화를 확립하려면 이 같은 긍정적 변화의 분위기를 잘 활용하여야 한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연락사무소 개설, 예술가, 문화인들의 상호교류, 미국과 북한의 상호대화를 위한 미국여성들의 협력 등은 평화 수립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의 길로 더 나아감으로써 동북아에서 평화의 수립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물론 북한측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5) 남북한 관계 긴장과 동북아

  한반도 긴장은 당연히 동북아 평화정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군사적 긴장고조는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하는 하나의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 재무장은 중국의 군비강화를 더욱 촉진하고 이는 미국과 러시아를 긴장시킨다. 즉 한반도 긴장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시기를 연상케 하는 대립구도를 가져올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6자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이를 확대 발전시켜 다자간 안보기구의 수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6자회담은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이를 다시 활성화시켜 동북아 평화기구로 발전시켜가야 한다.
   일본에 민주당 정부가 등장하여 동북아 국제관계에서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토야마 정부가 전진적인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6) 우리의 기대
이렇듯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노력이 긍정적인 반향들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확립을 향한 길로 이어지게 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6자회담이 재개되어 원래의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육자회담에 복귀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북한에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의 육자회담복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교류 또한 분위기의 완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2. 한국의 여성 평화운동

 

(1) 개관

  10년간 꾸준히 이어진 지속적인 남북여성교류 활동을 통해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북한을 같은 민족의 일원이자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직 통일운동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내에서 30% 여성할당제가 제도화되어 있다.
  또한 진보적인 여성운동단체들은 남북여성교류, 북한 여성 및 어린이 지원사업, 한반도 및 국제 평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 통일· 외교정책에 여성의 참여 확대, 평화교육 및 평화문화 확산 등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한국 여성들의 활동내용을 다음과 같이 개관할 수 있다.

1) 남북여성교류활동

○ ‘아시아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1991년-1993년/동경, 서울, 평양, 동경에서 개최)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여성연대(1993- )
  - 정대협 주최 제 3차 종군위안부아시아연대회에 북한 참가(1995)
  -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여성인권에 관한 남·북·일 여성의 3자회담(1998)
  - 종군위안부 문제 남·북·일 토론회(평양, 2002)

○ 대북지원 여성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통한 남북여성협력(1997년- )
  - 밥나누기 사랑나누기 운동 :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 26톤 보냄(1997)
  - 북한 어린이 내복보내기 운동(2001)
  - 북녘 룡천돕기 모금운동(2004)
  - 북한 수재민 돕기 모금운동(2006)

○ 교류활동
  - 6.15 및 8.15 민족공동행사 시 남북여성상봉모임 및 토론회 개최(2001년-2008년)
  -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 여성본부 결성
  - 2002 남북여성통일대회(금강산),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2005)
  - 남북여성대표자회의(2006년,2008년 / 금강산)

2) 평화만들기 활동

 ○ 반전평화운동 전개
  -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2004- )
  -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진상규명 및 대책활동(2002)

 ○ 평화교육, 평화문화 확산(수시로)
  - 갈등중재교육 강사양성 및 교육 확산
  - 평화교육 아카데미를 통한 평화교육 지도자 양성
  - 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 아동극 제작 및 순회공연
 
3) 통일 관련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참여 확대 요구

 ○ 통일, 국방, 외교 관련 정부 위원회에 여성 50% 참여 요구
 ○ 통일부 산하 여성정책전담부서 설치 요구
 ○ 통일, 외교, 국방정책의 성별영향평가 실시 요구(유엔 안보리 1325조항 실천 요구)

 

(2) 동북아 여성6자회담 개최
  
한국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은 남북대화를 지원하고 북한 여성들과의 대화를 위한 지속적 기구의 마련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동북아 여성평화회의의 개최는 이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일부이다. 여기서 여성 6자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정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여성6자회담을 추진한 동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형성 및 동북아 평화실현 과정에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 : ‘한국의 여성평화활동가들은 평화협상 및 평화합의 이행과정에서 여성 참여를 요구한 ‘UN안보리 결의안 1325’ ‘평화와 갈등의 금지?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에서 여성들이 확실하게 개입하는 것이 평화와 안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중심영역 E: 여성과 무장갈등)이라고 강조한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  행동강령의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동북아시아 평화 실현을 논의하기 위해 6개국(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북한) 여성이 함께 모여 평화를 논의해야 한다.‘

2) 동아시아 여성들의 만남의 장 마련 :  ‘동북아시아 여성들은 식민지 경험, 냉전이후 진영 간 대립이라는 역사 속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 소통의 부재를 겪어왔다. 여성6자회담은 식민지와 냉전의 경험, 그리고 체제?문화의 차이로 인한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완화하고, 상호이해와 신뢰형성을 추진하기 위한 여성들의 만남의 장(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한반도/동북아 평화형성을 위한 여성의 비전과 그 실현방법을 모색하는 장(場) : ‘여성6자회담은 참가국 여성들이 갈등에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며, 평화지대를 확대하고, 평화 능력을 향상해 적대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는 비전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나아가 여성6자회담은 여성들의 광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동북 아시아 평화정착이라는 과제를 추구함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국제평화를 위한 노력에서 여성 사이의 소통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고 여성의 글로벌 리더쉽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리라고 기대되었다.
   여성6자회담 준비작업을 위하여 2007년 <한국여성평화방문단>이 조직되었다. 여성국회의원과 여성단체 대표들, 평화운동가들로 구성된 방문단은 2007년 8월에서 10월에 걸쳐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4개국을 방문하였다. 망분단은 여성지도자들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 동북아평화, 각국 관계정상화를 위한 화해/협력/평화형성자로서의 여성의 역할 강조, 남북여성교류 지지와 연대 요청, 동북아여성 평화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방문단의 각국 방문활동을 통해 여성6자회담 개최에 대한 관련국 여성지도자들의 공감대를 확인한 후 여성평화운동가들은 “동북아여성평화회의-여성6자회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기구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여성위원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등 다양한 여성단체 관련자들이 포함되었다.
   2008년 9월 1일, 서울에서 ‘동북아여성평화회의(Northeast Asian Women's Peace Conference)가 열렸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미국 다섯 나라의 여성 대표가 참가했다. 불참한 북측을 대신해 3일 개성에서 폐막행사도 가졌다. 이 모임은  동북아 여성 평화 의제를 중심으로 한 첫 자리로서, 동북아 냉전과 북핵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는 장이었다. 참가국 여성대표들은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북핵 불능화가 장벽에 부딪친 상황에서 여성들의 평화노력이 하나의 돌파구를 열어줄 것을 기대하였다. 참가자들은 공동선언도 채택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다.
  
    1) 유엔 안보리 1325 결의안을 즉각 이행하라.
    2) 동북아시아의 비핵화를 추진하라.
    3)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노력하라.
    4) 북한에 대한 시급한 인도주의적 요구에 즉각 대응하라.

이 평화회의에 대해서는 연합 뉴스와 여성신문, 국민일보를 비롯한 언론도 개최 전부터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였다. 언론에 보도된 외국 참가자들의 반응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전쟁·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돌봄의 주체인 여성은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 ..... 평화를 이루려면 여성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대다수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의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 동북아 문제에서 미국인은 아웃사이더다. 그러나 오늘 DMZ를 넘으며 이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앞으로도 남북 화해를 돕는 역할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 미국인들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어떤 조직과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구체적 행동지침을 만들어 전달할 것이다. 동북아여성평화회의가 세계 여성들을 묶는 네트워크가 될 수 있도록 적극 행동하겠다.
- 한반도 분단문제 해결은 6개국 여성 모두의 책임이자 과제다.  일본과 북측이 자유 왕래하는 날이 올 때까지 역할을 다하겠다. 
- 민간 여성들도 교류를 통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특히 『여성신문』은 다음 인용 기사에서 보듯, 기자가 개성까지 동행취재하면서 회의의 의의를 호의적으로 평가하였다.
“6자회담 개최국 여성들의 개성 방문은 그 자체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간교류와 국제연대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참가자들 자신의  평가와는 별도로,  이 회의에는 보완해야 할 점도 없지 않았다고 본다. 이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 평화와 안보는 이분법적으로 대칭되는 문제가 아니며, 전통주의의 입장을 벗어나면 상호침투적인 개념이 되고 있다. 평화만의 강조는 대중들에게 ‘관념적 논의’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현재 한국 평화운동에서는 ‘대안적 안보’ 개념의 확산이 중요하다.
- 한국의 평화운동가들이 평화운동, 통일 운동을 위한 국제연대활동에서 연대의 상대로 미국, 일본 인사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시야를 넓혀서 중국, 러시아 인사들과도 연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북핵문제는 한반도 평화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한반도 평화가 동북아 평화의 핵심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질서재편이 이루어지는 전환기에 각국의 이해가 표출되는 상징적 문제라는 점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동북아 차원의 인식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


나오며 :  한국 평화운동의 과제와 여성의 역할

 

  10년을 이어온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12일부터 중단된 상태고, 통일부는 민간단체의 평양 방문을 잇달아 불허하고 있다. 통일부는 “금강산 총격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남쪽 인사들이 대규모로 방북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남북 간 대화도 끊긴 상태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민간교류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나아가 동북아 정체의 평화 확립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경색이 내치나 정권운용, 대외 신인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념적 접근이 아닌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널리 인식시키고 기조전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북한은 1990년대 이후 탈북자 문제와 인권, 비핵화 문제로 국제 사회의 문제로 부각되었을 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역사와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관심의 영역으로 간주됨. 북한사회를 보편적 가치 위에서 변화시켜 동북아 평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 사회 내에서 진보세력과 중도 및 합리적 보수와의 제휴 및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서 평화를 향한 여성들의 지향성을 대화의 발판으로 삼아 여성들 간의 교류와 대화를 강화하고 이것이 현실정치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들은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인도적 지원이 중단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최근에는 남북관계를 둘러싼 담론에서 ‘평화’ 혹은 ‘평화체제’라는 용어조차 사라졌다. 실용주의·보편주의·상호주의가 의미를 가지려면 평화체제나 평화 프로세스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같은 노력에서 여성 평화 운동측은  한편으로는 정책 담당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여성평화운동가들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여성이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안하고 있다.  

  

 1) 남북여성교류의 대중적 확산 및 남남, 남북 여성간의 통일문제 인식차이 해소 노력
 2) 통일, 국방, 외교정책 과정에서의 여성참여 확대 및 젠더관점 도입 요구

 3)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여성연대 구축
 4) 통일·평화교육, 평화문화 확산 
 5) 여성, 평화 NGO의 역할 확산과 역량 강화
 

(사)평화를만드는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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