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자의 삶과 운동 2


비폭력의 사상과 실천에 관하여

박성준 │움직이는 학교 대표, 성공회대겸임교수, 평화학


이 세상에는 간디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간디가 직접 저술한 글은 많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그 드문 글들 가운데 그의 /자서전/과 더불어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글 한편이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힌두 스와라지/(안찬수 옮김, 출판사 강)/가 바로 그 글이다. 나는 오늘 /비폭력의 사상과 실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이 강연에서 ꡒ힌두 스와라지ꡓ에 나타난 간디의 비폭력의 사상과 행동양식을 살펴보는 데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힌두 스와라지/는 간디가 1909년 12월 남아프리카 트란스발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투쟁을 대표하는 주간 신문 /인디언 어피니언/지에 구자라트어로 발표한 글이다. 1904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이 신문은 당시 남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인도인의 주장을 대변하는 매체였는데 간디는 공식적인 발행인은 아니었지만 이 신문을 재정적으로 꾸준히 지원했고 그가 기고한 논설을 통해 /사티아그라하/에 관한 해설을 실었다. 이와 관련해 간디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매주 마다 나는 신문의 기고난에다 심혈을 기울였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사티아그라하/의 원리와 실천에 관해서 해설을 했다. 10년 동안, 그러니까 1914년까지 내가 감옥에서 억지로 쉬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내 논설을 싣지 않고 발행된 /인디언 오피니언/은 한 호도 없었다.ꡓ(/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제4부 13장 /인디언 오피니언/, 간디, 함석헌 역)

또 /힌두 스와라지/의 서문에서는, ꡒ /인디언 오피니언’의 독자들에게 제시하려고 인도의 자치라는 주제를 놓고 몇 장으로 이루어진 글을 썼다. 스스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쓴 글들이었다.ꡓ 라고 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쓴/ 글들이기에 간디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진솔하게 표출되어있다. /쓰지않고는 견딜 수 없어/ 라는 말은 간디의 방식을 잘 드러낸 표현이라고 한다. /간디의 방식/이란 다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내면의 요구가 있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스와라지(Swaraj)

/힌두 스와라지/의 /스와라지/는 /자치/를 뜻하는 힌두어로, 간디 사상의 한 핵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swa=self; raj=govern, 따라서 self-government, self-rule 등으로 영역된다. 간디는 /민족적 자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적 자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점은 간디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전개할 때 그 주체는 계급이나 계층 또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개인인 나 자신이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견딜 수가 없어 그 소리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고 하는 이 점을 주목하고 가장 높게 평가한다. 따라서 개인은 집단의 한 구성인자로서가 아니라 /사고와 행동의 능동적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혼의 힘(atmabal)

간디는 /힌두 스와라지/의 제10장에서 /폭력/의 문제에 언급한다. 그 장의 구자라트어 제목은 /darugolo/인데, 이 단어는 4장에서는 /무기와 탄약/으로, 15장에서는 /총/으로 번역되었다. 간디는 이 말 대신에 /육체의 힘/ /총의 힘/ /무기의 힘/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간디는 이런 말들로 /혼의 힘/(atmabal)을 사용하는 것과 /폭력=무기의 힘/(darugolo)을 사용하는 것을 날카롭게 대비시키려 했다.

/사티아그라하/(satyagraha)(:sat=truth, agraha=firmness), /진리파지/, /비폭력적(또는 수동적) 저항/ /시민적 불복종/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이 말은 고통을 견뎌내면서 오로지 /혼의 힘/으로 자기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는 방법을 말한다. 수동적 저항의 목적은 /무기의 힘, ladaibal/을 사용할 때의 목적과는 정반대다. 간디의 말은 들어보자.

ꡒ어떤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을 거부할 때),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혼의 힘/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내게 적용 가능한 어떤 법률로 판결을 내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만약 폭력을 사용해 정부로 하여금 그 법률을 폐지하도록 강제한다면 /육체의 힘/이라고 부를 만한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법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벌을 받는다면, 나는 /혼의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희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희생이 다른 사람의 희생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ꡓ

ꡒ폭력을 사용하는 것, 즉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수동적 저항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적대자에게, 우리는 바라지만 적대자는 바라지 않는 바를, 힘으로 강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설혹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폭력을 사용한 것처럼 그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틀림없이 정당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코 합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ꡓ

간디는 /혼의 힘/을 사용하여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혼의 힘의 모태라 할 /종교/가 소중함을 말한다. /힌두 스와라지/에서 /종교/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같은 각각의 체계화된 종교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모든 종교를 떠받히고 있는 종교, 곧 /참된 지식/ 또는 종교의 /윤리적 근거/를 의미한다.

ꡒ내게 종교는 소중합니다.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인도가 점점 더 비종교적(다르마가 없는 dharma-bhrast) 상태로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힌두교나 이슬람교나 조로아스터교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떠받치고 있는 종교/ ... 우리는 종교적 야망을 향해야 합니다.ꡓ

간디는 옥중에서 톨스토이와 ,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책들과 함께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현대의 문명이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육신적인 복지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 도덕이나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면서 (서양)문명 속에는 도덕으로 이끄는 것이 없다고 갈파한다.

ꡒ...어린이라 할지라도 내가 위에서 묘사한 문명 속에는 도덕으로 이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문명은 비종교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명이 유럽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기에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쯤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 이런 문명이 영국 국민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ꡓ

아힘사(ahimsa): 불살생, nonviolence

-아힘사의 바탕에는 /모든 생명의 통일성/이 놓여 있다-

간디의 고향 구자라트에는 자이나교가 성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모든 분야에서 그 영향을 느낄 수 있었다. 간디에게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 레이찬드가 자이나교도였고, 유학길에 오를 때 격려해준 마브지다베도 자이나교도였다.

자이나교(Jainism)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초기 힌두교에 대한 일종의 종교개혁이었다. 자이나교에서는, 세계를 생명체를 이루는 /명아'(命我, jiva)와 생명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비명아/(非命我, ajiva)의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하는 이원론적 체계가 있는데,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과 다른 생명들의 명아를 발현시키고 완전하게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어떤 생명체도 해치지 않는 /아힘사, ahimsa/를 원칙으로 삼았다.

간디는 10장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에서 ꡒ모든 힌두교도가 /아힘사/를 믿고 있는가?ꡓ라고 묻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ꡒ문제의 근원을 따져 들어가 볼 때, 우리는 생명을 죽이고 있고, 그렇기에 이 종교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을 쉽게 죽이는 경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이런 종교를 추구한다고들 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힌두교도들이 고기를 먹고 있으므로 /아힘사/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ꡓ

/힌두교도들이 고기를 먹으니 아힘사를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이 말은 간디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자서전/4부, /정신적 딜레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ꡒ아힘사는 포괄적 진리다. 우리는 /힘사, himsa, 殺生/의 불길 속에서 무력한 존재다. 생명은 생명으로 산다는 말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살생을 범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사실 그 자체, 즉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그것이, 비록 매우 작을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어떤 /힘사/, 곧 생명의 파괴를 저지르게 한다. 그러므로 아힘사의 신자는 그의 모든 행동의 원천에 자비심을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하여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라도 살해하지 않고 구해주려고 노력한다면 제 신앙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요 또한 부단히 자제와 자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완전히 외적인 /힘사, 살생/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뿐 아니라 아힘사의 바탕에는 /모든 생명의 통일성/이 놓여 있으므로, 하나의 잘못은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온갖 사회적 존재가 연루된 살생에 참여 안 할 수가 없다. 두 국가가 싸울 때 아힘사의 신자의 의무는 전쟁을 중지시키는 일이다. ... 전력을 다하여 그 자신과, 그 나라와, 전 세계를 전쟁에서 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ꡓ

수단과 방법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 할지라도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이 간디의 생각이다. 목적이 옳고 좋으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도 옳고 좋아야 한다. 간디는 16장에서 수단과 목적은 서로 관련되어있다고 하면서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씨앗과 나무의 관계에 비유한다. 나쁜 씨앗(수단)에서 나쁜 나무가 자라지 좋은 나무(목적)가 자라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ꡒ수단과 목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 수단은 씨앗에, 목적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씨앗과 나무의 관계가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관계이듯이 수단과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에게 예배를 드릴 때 사탄의 수단으로 예배를 드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둡니다.ꡓ

ꡒ...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도둑을 쫓아내야 한다는 당신의 의견에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만일 도둑이 허약한 사람이라면 힘 있는 도둑에게 취할 수단과는 다른 수단을 사용할 것입니다. 도둑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무장하고 있다면 나는 단지 조용히 있겠습니다. ... 또한 도둑이 내 아버지거나 무장 괴한이라면 자는 척하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ꡓ

ꡒ...사랑과 연민의 힘이 무기의 힘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곳에는 악이 존재하지만 연민이 있는 곳에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무기의 힘은 사랑의 힘이나 혼의 힘과 싸울 때에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ꡓ

ꡒ사랑과 연민의 힘이 무기의 힘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ꡓ는 간디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랑의 힘이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척결하고 근본적 변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은 우리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 세계를 변혁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힘있는 수단/이 필요한데, 간디가 말하는 /사티아그라하/ 곧 수동적, 비폭력적 저항은 현실 속에서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약하고 무력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가 간디에 관해서 가장 큰 오해가 일어나는 대목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간디는, ꡒ나는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비폭력 저항을 믿지 않는다.ꡓ 고 말했다. 즉 그는 /사티아그라하/를 현실과 세계를 변혁하는 가장 힘있는 수단으로서 제시했던 것이다. 비폭력적 저항을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말했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적 대안/(a realistic alternative)으로 얘기했던 것다. 심지어 최근에는 간디가 /사티아그라하/를 군사적 언어(military terms)로 얘기했다고 말하는 해설가들(/A Force More Powerful/의 저자 Peter Ackerman과 Jack Duvall 같은 이들)도 나오고 있다. 실로 간디는 ꡒ비굴한 굴복 보다는 차라리 폭력에 호소하는 편이 낫다ꡓ고까지 했다.

비폭력적 사회변혁의 길

간디의 방법 /사티아그라하/는 과연 현실적으로 힘있고 효과적인 사회변혁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지난 30 여 년 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변혁을 위해 싸워왔던 사람들치고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변혁에는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때로는 폭력을 동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자명하게 받아들여 왔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폭력보다 더 강력한/(A force more powerful) 수단과 방법이 있다는 소문들에 접하게 되었다. Peter Ackerman & Jack Duvall, A FORCE MORE POWERFUL-A century of nonviolent conflict, 2000, St. Martin's Press가 그 중의 하나이다. 아래에 좀 길게 인용해 보겠다.

- 21세기의 마지막 10년에 바웬사는 해마다 9월에 유엔 총회 개회식에 참석하는 많은 다른 국가원수들의 반열에 자리를 같이했다. 그 남녀 지도자들의 대다수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들과 수상들이었다. 만일 그런 회의가 100년 전에 열렸더라면 몇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폭력으로 권력을 잡았거나 왕조의 세습에 의해 권좌에 오른 왕들과 황제들과 장군들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20세기가 이룩한 가장 중대한 정치적 변화인데, 그러나 이것은 무력에 의하지 않고 비폭력적 힘에 의해 압제자들과 맞서 싸운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 비폭력적 투쟁의 방법으로는 탄원, 행진, 파업, 시위 등의 저항적 행동이 운동에 대한 시민대중의 지지를 불러일으키는데 사용되었다. 스트라이크, 보이콧, 사직, 시민적 불복종 등과 같은 비협력의 형태들은 정부의 기능을 정지시키는데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연좌농성, 비폭력적 사보타지, 바리케이드 쌓기 등은 인민들을 복종시키려는 통치자들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 그러한 투쟁의 역사적 결과는 거대하였다. 폭군들은 타도되었고 정부들은 전복되었으며 점령군은 패주하였고 인권을 억압하던 정치제도는 분쇄되었다. 인민들의 비폭력적 저항에 의해 적대자들의 사태를 조종하는 능력이 파괴당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급격히 또는 점진적으로 변혁되었다.

또 하나의 소문은 최근 미국의 퀘이커 친우들이 내게 보내준 /치유하는 칼/(The Sword that Heals)이라는 매우 상징적인 제목의 팜플렛이다. 이 글은 세계를 변혁하는 평화로운 수단과 전략에 대해 매우 설득력있는 주장과 해설을 담고 있다. 저자 /죠오지 레이키/(George Lakey)는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사회변혁을 위한 훈련 센터/(Training for Change) 의 소장이며 사회운동과 평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헌신적인 활동가이다. 올해 65세인 그는 일찍이 /사회변화를 위한 마틴 루터 킹 학교/의 교사로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룹들과 단체들과 협력해 왔다. 운동의 방법과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지구촌 5개 대륙을 누비고 다니며 사회변화를 위한 각종 웍샵 둥을 지도하기를 무려 1,000회 이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중 몇 가지 만 들어보면, 탄광 노동자들, 노숙자들, 교도소 재소자들, 러시아의 레스비안과 게이들, 스리랑카의 스님들, 버마의 게릴라 병사들, 파업중인 철강 노동자들, 남아프리카의 사회활동가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등등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힘있는 평화 만들기//Powerful Peacemaking/에 붙여진 /살아있는 혁명을 위한 전략/(A Strategy for a Living Revolution)이라는 부제는 우리들의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죠오지 레이키는 그의 에세이의 제목 /치유하는 칼/은 마틴 루터 킹의 글 가운데 ꡒ비폭력적 행동은 상처를 치유하는 칼ꡓ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불의와 압제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진정한 혁명을 아룩하기 위한 비폭력의 전략과 만신창이가 된 지구와 거기 몸 붙이고 살아가는 짓밟힌 민중들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아물게 할 /힘의 원천/(sources of power)에 대한 지혜를 이 한편의 에세이 속에 정리해 담아놓았다.

그는 먼저 자신의 논적(論敵)인 워드 처칠(Ward Churchill) 교수와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는 몇 가지 점을 밝힌 다음, 그 교수의 책 /평화주의라는 이름의 병리학/(Pacifism as Pathology) 속의 몇 가지 논점에 도전하는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는 점들:

- 이 세계는 불의와 착취가 만연하고 있고 상처 입은 지구는 마지막 단말마의 신음을 토하고 있다.
-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피라밋식 권위주의적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범죄적 살인을 일삼는 미합중국에 대해서도 아무런 환상을 갖지 않는다.
- 세계도처에서 군사적 개입을 계속 자행하고 있는 미제국(the U.S. Empire)은 오늘 지구촌 제1의 깡패(killer)다.
- 폭력과 비폭력을 유효 적절히 배합하는 전술 구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무장투쟁(armed struggle)에 대한 고려를 교조적으로(dogmatically) 배제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 경직된 사고는 /전략의 창조/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죠오지 레이키는 위와 같이 자신의 논적 워드 쳐칠 교수와 의견이 일치되는 점들을 짚은 다음에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ꡒ나는 투쟁에 대하여 사고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실용주의적으로(pragmatically)/ 사고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워드 쳐칠과 생각이 같다. 즉, 고통을 줄이고 정의를 증대시키며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최선의 기회를 장악하려면 어떤 수단이 가장 유효적절한가? 라는 것이다.ꡓ

그렇게 묻는 것이 실용적으로 묻는 것이고 대답도 실용적인 대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가 될 것이다. /실용적으로/에 반대되는 것은 /교조적으로(dogmatically)/이겠고.
사회변혁을 위한 /비폭력적 전략/에 관한 그의 에세이 ꡒ치유하는 칼ꡓ은 그러므로 /실용성/(pragmatics)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분명히 전제해놓고 들어간다.

첫째 물음: ꡒ미국에서 폭력 혁명을 위한 전략은 필요한가?ꡓ

워드 쳐칠 교수는 자신의 목표는 ꡒ평화주의(pacifism)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 도덕적 우월감의 콧대를 꺾어놓는 것ꡓ이라고 한다. 그는 결코 자신이 미국을 위한 /무장투쟁/의 문제를 명백히 하자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죠오지 레이키는,
ꡒ/폭력 혁명/과 /비폭력 혁명/은 실제로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어느 쪽도 미국 혁명을 위한 비장의 해법이라곤 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장투쟁 지지자들과 비폭력 투쟁 지지자들 사이에서 철두철미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를 하는 것이다.ꡓ
라고 응수하고, 과거 60년대 후반 미국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폭력혁명이 뻔질나게 논의되었었지만 한번도 그 문제를 /전략의 수립/과 연결시키지 못했다고 술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ꡒ말만 무성한 혁명가가 아니라 진정으로 변혁을 염원하는 활동가라면 지금 꼭 해야 할 일은 무장투쟁 방법을 사용한 혁명의 전략을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전략은 아직 나온 바 없다.ꡓ
ꡒ어떤 전략을 세우는가 하는 것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가정(assumptions)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가정들을 비교해 보는 것은 유익하다. 헌데, 가정들에 관해 아무리 많은 논쟁을 한들 그것이 /전략을 창조하는 일/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ꡓ

둘째 물음: ꡒ평화주의는 과연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자명한 공리/(axiomatic)가 되어버렸는가?ꡓ

워드 쳐칠 교수는 문제의 저서 ꡒPacifism As Pathologyꡓ에서, ꡒ평화주의는 비폭력적 정치행동의 이데올로기이며 그것은 북미의 주류사회(mainstream North America)의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진부한 덕담이 되었다.ꡓ고 했는데, 만일 그 말이 /비폭력적 행동/이라는 것이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사회변혁을 위한 전국적 캠페인을 계획하는데서 이미 자명한 전술이 되었다 라는 뜻이라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죠오지 레이키는 말한다.

그가 전국적 규모의 운동을 기획하는 지도자들을 향한 강연에서 던졌던 첫번째 질문은 ꡒ당신네들의 전국연합에는 /반역의 에너지/(the revel energy)가 살아 있는가?ꡓ 라는 것이었다. 침묵이 뒤따랐고, 그는 이어서 말했다.
ꡒ반역의 에너지가 소진했군요. /반역의 에너지/ 없이는 /강력한 비폭력적 직접 행동/(powerful nonviolent direct action)은 불러일으켜지지 않지요.ꡓ
전국연합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도자들이 행하고 있는 주된 투쟁방법은, 선거 캠페인, 로비, 법적 소송, 탄원, 편지보내기, 항의전화 걸기, 선전과 홍보 등등이 고작이고, 어디에서도 /비폭력적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단다. 심지어 19세기의 무장투쟁의 전통에서 태어난 노동운동마저 오늘날엔 파업보다는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 캠페인 따위를 더 선호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ꡒ/비폭력/, 또는 내가 즐겨 쓰는 말로는 /비폭력적 행동/은, 풀뿌리 대중 운동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즉 풀뿌리 민중이 어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의 열기를 필요로 할 때에 이 방법이 동원된다. 데모와 연좌시위, 파업, 보이코트 등등 /비폭력적 행동/의 방법들은 무궁무진하다. 풀뿌리 대중이 이것들을 선호하는 것은 이 방법들이 로비나 탄원 같은 방법보다 더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전국 규모의 전문적 운동조직들은 /비폭력 직접행동/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풀뿌리 대중 운동의 활동가들은 그 효험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유색인종들(people of color), 근로계급의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과 젊은 세대의 사람들, 공동체운동이나 대안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비폭력적 직접행동/을 즐겨 사용한다.ꡓ

한편, /평화주의/는 하나의 주의주장(ideology)이자 신념체계(belief system)이기도 하다. 그 주장하는 바는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사람(들)을 살상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평화주의자들은 좋은 목적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원인과 결과 곧 인과관계를 이해하기를, 좋은 결과는 좋은 수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비유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는 좋은 씨앗에서 자라나고, 좋은 과자는 좋은 재료에서 빚어진다. 평화주의자들은 도덕성과 건전한 상식은 둘 다 ꡓ우리들이 눈앞에 보기를 원하는 바로 그 변화를 실제로 살아주기를(live the change we want to see)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믿는다.

흔히 사람들은 /평화주의자/라고 하면 쉽게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터 킹을 떠올릴 것이고 미국인이라면 전국농업노동자연합(the United Farmworkers)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씨저 샤베즈(Cesar Chavez)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실은 미국에서 비폭력적 행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신의 켐페인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참여했던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African American: 흑인을 말함)은 평화주의 신봉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서 비폭력적 행동을 전술적으로 구사했던 것이다. 또한 비폭력적 행동에 비록 드물게일망정 나섰던 수많은 평화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리 행진을 하고 파업이나 시민적 불복종을 했다.

이렇게 보면 반드시 평화주의자들만이 /비폭력적 행동/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워드 쳐칠 교수처럼 /평화주의/와 /비폭력/을 혼동해 마구 뒤섞어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비폭력적 행동/과 /비폭력 혁명/을 혼동하는 것은 더더구나 문제꺼리다.

죠오지 레이키는 그의 저서 /비폭력혁명 선언/(The Manifesto for Nonviolent Revolution)에서 이 문제를 더 깊게 천착하는데, 이 책의 입장은 /비폭력적 행동/을 채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거개의 평화주의자들보다도 훨씬 더 래디컬하다. /선언/은 /회사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의 종언을 요구하고, 국민국가 시스템의 해체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환경파괴를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선언/은 또 가부장제와 인종주의, 사회적 억압의 제도들을 철폐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선언/은 그러한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질서를 비전으로 제시한다. 그 새 질서 안에서는 자유가 꽃피어나고 경제와 기업은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인간은 자연과 조화롭게, 지구와 평화스럽게 살아간다. 맑스-레닌주의보다 훨씬 더 래디컬한 이 /혁명적 선언/은 좌익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면서 미래를 향한 새롭고 창조적인 접근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물음: ꡒ홀로코스트(Holocaust)에서 대학살을 당했던 유태인들은 /비폭력적/이었던가?

워드 쳐칠 교수는 유태인들이 대학살에 직면하여 피동적(passive)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겁을 먹고 침묵해 버렸으며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직면하지 않고 오히려 비폭력적인 행동을 취했다고 비난한다. 이것은 그러나 그가 대학살에 저항하고 맛서 싸웠던 용감한 유태인들을 망각해 버린 소치다.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에 종사해본 적이 있는 우리 모두는 행동과 피동성(passivity) 사이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1930년대에 간디는 나치 독일의 행태에 대해 우려하면서 베를린의 한 유태인 지도자인 랍비에게 저항을 조직하고 나치의 위협에 맛서 싸울 되도록 많은 유태인들과 유태인 동조세력을 동원하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썼다. 간디는 불의한 상황에서의 피동성을 볼 때 마다 적극적이고 행동적인 비폭력적 저항이 피동성과 대체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기를 잊지 않았다. 사실, 간디는 어찌나 피동성을 싫어하고 반대했던지 이렇게 충고할 정도였다.

ꡒ만일 악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한 대응방법이 오직 피동적 방관 아니면 폭력적 행동 밖에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폭력을 선택해야 한다.ꡓ
물론 실생활 속에서는 언제나 두개 이상의 선택이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효과적인 비폭력적 행동을 창조해 내야 한다.

넷째 물음: 정부는 원하기만 하면 어떠한 비폭력이라도 짓부수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비폭력적 행동에 의해 전복된 군사 독재정권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소비치는 2000년에 압도적인 군사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비폭력 운동에 의해 맥없이 부너져 버렸다.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도 그랬다. 동독이 그랬고 항가리와 첵코가 그랬고 1989년에는 폴랜드의 독재 정권이 뒤를 따랐다. 이란의 샤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가장 강력한 군대와 그 잔인성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비밀경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1977~79년 사이에 비폭력의 방법에 의해 무너졌다. 이렇게 예를 들어가자면 한참 이어질 것이다.

워드 쳐칠 교수의 주장 가운데 가장 사회운동가들이 보기에 어이없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인민대중의 힘(People power)을 과소평가하는 점이다. 실은 그 /피플 파워/야 말로 우리들이 근거해야 할 주된 힘(the main power)인데 말이다.

풀뿌리 운동가들이 정부의 돈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또 우리가 정부의 폭력과 겨뤄 볼 수도 없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은 피플 파워/뿐이다. 그 힘을 얕잡아 보는 것은 절망을 자초하는 길이다.

워드 쳐칠 교수의 주장의 근저에는 폭력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이라는 가설이 깔려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우익들과 죄익들, 그리고 중간계층마저가 공유하고 있는 인습적 지혜다. 그것은 한 때 널리 받아들여졌던 지구가 납작하다는 옛 주장 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풀뿌리 운동가들은 구체적 실천과 사례를 통해서 폭력의 무력함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그 한 고전적 예는 1944년 한 무장봉기가 독재자 헤르만데스 마티네를 타도하는 데 실패했던 엘살바도르의 경우다. 정부는 무장투쟁을 격퇴할 만큼 풍분히 강했다. 그 때 학생들이 나서서 비폭력 봉기를 주도했다. 그들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마티네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피플 파워가 폭력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웃 나라 과테말라는 엘살바도르로부터 하도 감명을 받은 나머지, 카리비아 해의 철의 독재자 죠르게 우비코에 대항하는 비폭력 봉기를 일으켜 성공을 거뒀다.

오늘날, 제3세계에서는 과거 무장투쟁노선을 걷던 많은 해방운동들이 무장에 의한 방법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돌아섰다. 치아파의 자파티스타들은 바로 이런 현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례다. 1980년대 초에 아프리카 국민회의(Africa National Congress)는 자신의 무장투쟁이 실패의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흑백분리주의를 격파하기에는 턱없이 무력했다. 그것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행동할 열의을 가지고 있던 도시의 시민 대중들을 영입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래서 국민회의는 비폭력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 방법은 스트라이크, 보이콧, 다양한 종류의 시위 등이었다. 테러 조직에 버금가는 경찰력으로 잘 무장된 국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분리주의의 종언(終焉)이었다.

운동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 만큼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pragmatic)일 때, 폭력으로부터 떠날 수 있고 '재산 파괴'(property destruction)에서도 손을 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폴랜드의 연대 노조운동은 크게 보아 공산당 독재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청년 운동이었다. 운동의 초기에 그들은 파업과 점거농성에 약간의 재산파괴를 곁들이곤 했다. 운동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을 때, 그들은 재산파괴가 독재자에게 강경 진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과 자기편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놓쳐버려 동맹세력의 수를 격감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재산파괴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운동의 외연을 차츰 넓혀 승리를 향해 나아갔다. 물론 군국주의 정부는 그들을 분쇄하려 들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피플 파워/가 /밀리터리 파워/보다 더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통념적인 지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기에 나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는가 놀라워했다. 이에 대해 남부지역 대학생 비폭력 조정위원회의 간사인 버나드 라파이예트(Bernard Lafayette)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사회란 집과 같은데, 그 집의 기초는 대중의 지지와 동의로서 이루어진다. 지붕은 국가와 그 억압적 기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일 기초가 사라지면 그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내게 물었다. 이어서 물었다. ꡒ지붕 위에다 탱크와 중무기 등을 잔뜩 쌓아놓는다고 해 보십시요. 그것이 사태를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요? 기초가 없어질 때 그 집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ꡓ

답은 집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이란의 샤(the Shah of Iran ) 정권에게 일어났었다. 국왕 샤는 세계에서도 가장 큰 군대와 무자비한 비밀경찰을 갖고 있었고, 무엇보다 미국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이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은 완전히 /비폭력 전략/을 채택했고 그것이 주효했다. 샤의 집의 기초는 국민들의 동의였다. 그 기초가 무너지자 집은 폭삭 내려 앉아버렸다.

정치적 지배(political rule)의 기초는 국민의 동의와 지지이지 폭력이 아니라는 것,오늘 날 사회운동가들이 알아야 할 사항 가운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피플 파워는 그 어떤 폭력 보다 더 힘이 세다. 우리들이 한시바삐 이런 지식 위에서 행동한다면 미 제국(the U.S. Empire)의 붕괴도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다섯 번째 질문: ꡒ비폭력 혁명ꡓ(Nonviolent Revolution)은 용어 그 자체가 모순인가?
워드 쳐칠 교수는 어떤 한 사람이 /혁명적/이면서 동시에 /비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 반대한다. 그가 믿기로는, 비폭력은 본질적으로 개량주의적이고, 반면에 혁명은 폭력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 사회 통념과 일치하는 생각이긴 하다. /혁명/ 하면 대뜸 /폭력/을 연상할 만큼 우리는 그러한 통념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생각이 옳은가? /폭력 혁명/ 아닌 /혁명/은 없는가?
1968년 봄 프랑스에서는 정부를 거의 쓰러뜨릴 정도의 거대한 대중의 혁명적 봉기가 일어났었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그것은 /비폭력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 사례로서 연구하고 교훈을 얻기에 적절하다.

5월에 빠리의 대학생들은 교육개혁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대학 캠퍼스를 점거하고 거리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잔인하게 대응했다. 학생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소문이 재빨리 퍼져갔다. 프랑스 노동조합은 학생들에 동조하여 파업에 들어가기로 을 결정했다. 순식간에 8백만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고 그 중 많은 조합들은 작업장을 점거했다. 점거는 당시 흔히 사용되던 전술이었다. 자동차 제조업 노동자들은 대자동차 공장을, 묘지 노동자들은 공동묘지를, 무희들은 /폴리 베르게르/ 국립무용소를 점거하는 그런 식이었다.

투쟁은 깊어갔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내건 구호는 개혁에서부터 혁명까지 다양했다. 어떤 도시에서는 중앙정부와 관계를 단절하고 그들 자신의 화폐를 인쇄했다.

드골 대통령은 당시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군대의 장군들이 병력을 이끌고 프랑스로 귀환해 사태를 바로잡아 줄 것을 기대하며 그들과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내몰렸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 국내의 군대가 혁명에 가담하지 않으리라고 신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프랑스 사회 양극화의 이쪽 편에 있었고 부유층은 그들의 반대쪽에 있었다. 문제는 중간층의 향배였다. 그들이 어느 쪽으로 선회할 것인가? 그들 중 다수는 학생들의 학부모들이었고 친지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경찰의 잔인성에 분노하고 있었고 학생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국영 TV는 학생들의 /재산파괴/(property destruction) 장면을 되풀이 또 되풀이 해서 방영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주거지의 자동차를 거리로 끌고가 불을 지르고 그 잔해로 바리케이드를 쌓는 장면 같은 것을 계속 내보냈다. /강력한 메시지/가 자산계급인 중간층들에게 만이 아니라 자동차를 사기 위해 저축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전달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간층들이 직면한 허망함은 학생들의 시위에서 어떤 대안이나 비전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가령 국가가 전복된다 치자. 그 다음에 올 사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새 사회 안에 자신들의 자리는 있는 것인가? 아무도 이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혁명진영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선언이나 강령 조차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간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려움을 품은 채 앉아서 TV의 화염을 바라보고 있는 것 뿐이었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다. 학생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몇가지 개혁이 이뤄지긴했지만, 국가와 대기업은 승리했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왜 학생들은 승리에 필수적인 그들의 동맹세력을 멀리 쫓아버린 것일까?
가장 크고 절실한 실패의 요인으로는, 첫째로 학생들이 ꡒ혁명=폭력ꡓ이라는 기존의 전통과 도식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혁명을 원했고 그래서 혁명과 폭력을 한 묶음으로(as a package)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혁명의 수단과 방법에 관한 기술혁신(innovation)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로, 학생들은 프랑스의 /집/(=정치사회의 질서)의 기초는 대중의 동의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 했다. 만일 그들이 대중의 비폭력적 비협력(people's nonviolent noncooperation)을 얻어내는 전술을 고조시켰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1968년의 그들은 이란의 샤의 몰락이나 필리핀의 마르코스의 예나 동유럽의 독재정권들의 붕괴 사례 등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무장 투쟁 보다 더 강력한 것이 /피플 파워/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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