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경제 변화와 한반도 평화 이 글의 많은 부분은 필자가 최근 쓴 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필자의 게으름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순성 ꠾ 동국대 교수, 북한학 (2002.11.14)



1. 평화와 경제

가. 과연 경제는 사회의 평화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우선, 상업과 사회질서의 상관관계에 대한 두 가지 대립적 관점
- 전통적 관점 : 인간의 도덕심을 붕괴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경제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근대적 관점 : 인간 심성을 부드럽게 하고 사회 내부의, 사회들 사이의 질서를 가져오는 경제 - 스미스, 토크빌

※ 참고 : K. 폴라니, 시장경제 또는 악마의 맷돌 ; F. 브로델,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 경제와 사회질서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대립적 관점
- 경제는 삶의 물적 기초를 만드는 행위이면서, 다른 모든 사회활동을 규정하는 행위; 따라서 경제발전은 인류 문명의 기초; 심지어 경제발전은 민주주의의 기초 - 스미스, 맑스, 헌팅턴
- 경제는 삶의 물적 기초를 만드는 행위임에 분명하지만, 경제 자체가 인류 문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제도가 경제활동의 결과를 나아가 인류 문명의 성격을 결정한다 - 롤즈, 센

※ 참고 : 센 -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식량 감소만으로 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근은 경제 재난이지 단지 식량 위기는 아니다(여기에서 경제재난이라는 말은 정치·사회적 제도의 결함, 정책의 실패를 의미); 칸트 - 만약 정의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인간이 지구상에 살 가치가 없다; 롤즈 - 만약 인간이 매우 무도덕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인간들이 이 지구에 살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 현대문명은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상업제일주의, 경제제일주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립적인 두 관점 사이에서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 무엇보다도 우리는 경제가 적절한 지위를 찾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 당연히 현대사회에서 경제와 평화의 관계는 복잡하다.
- 경제는 평화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경제는 평화를 깨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개인의 경우, 사회의 경우 등등

○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론가로서 갈퉁을 참조.
-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
- 구조적 폭력의 원인들
- 적극적 평화를 위한 조건과 경제

나. 북한 경제와 한반도 평화

○ 분단관리의 불안정한 평화와 통일을 향한 평화
- 군비경쟁이 벌어지는 불안정한 세력균형상태 하에서 달성되는 민족번영(비유하자면, 분단과 정전상태라는 구조적 폭력 하에서 달성되는 소극적 평화)
-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능동적 평화(비유하자면, 분단구조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얻어지는 적극적 평화)

○ 한반도 평화·통일의 이상적 전망과 북한 경제 문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바람직한 과정은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안정과 번영을 달성하고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에서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여 궁극적으로 단일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분단과 전쟁, 갈등과 긴장의 민족현대사를 20세기 후반 세계정치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주의 상실은 민족의 분단사를 이해하는 주요한 단서이다. 당연히 평화‧통일에 대한 이상적 전망은 자주를 우리 민족의 존재론적 가치이자 전략적 가치로서 요구한다. 그런데 남북이 힘을 합쳐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상호이해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현재 남북의 통일방안인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갖는 공통성을 인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상호인정에서 출발하여, 남북은 인도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을 통해 화해하고,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신뢰를 다지고,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상적 전망으로부터 가치와 방안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추진해야 할 과제가 도출된다.
역사와 현실에 닿아 있는 이상적 전망이 화해‧협력과 안정‧번영을 강조할 때, 북한 경제는 핵심적인 관심사항 중의 하나이다. 위기의 북한 경제는 북한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경제력의 엄청난 격차와 장기화된 북한 경제의 위기는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남북 최고지도자의 공동선언 속 이상적 목표에 반영되어 있다. 북한 경제의 위기적 상황은 남북관계의 진전과 관련하여, 또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과정에서, 조심스럽지만 반드시 다루어야 할 최대의 공동관심사이다. 남북 사이의 모든 논의는 ‘북한 경제’라는 관문을 어떤 식으로든 통과해야만 합의에 이를 수 있다.

○ 통일비용에 대한 논의에서 북한 경제 변화에 대한 논의로
북한 경제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독일이 동독의 붕괴로 급격한 흡수통일을 이루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반 남한 사회 내에서 통일 관련 논의의 한 축은 독일식 흡수통일의 가능성이었다. 독일 통일비용의 규모가 알려지면서 남한이 주도할 수도 있는 흡수통일의 비용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통일비용과 관련한 논의에서 북한의 경제규모와 산업구조는 중요하면서도 추정하기 어려운 변수였다. 북한 경제의 양적 실체가 연구의 대상으로 부각된 것이다. 통일비용에 대한 논의가 뚜렷한 성과를 내어놓지 못하고 흡수통일의 비현실성과 부작용이 거론되면서,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에 대한 관심은 점차 개방‧개혁의 가능성으로 모아졌다.

최근 북한의 경제정책 방향과 체제변화의 가능성, 남한의 대북정책으로 옮겨가면, 연구자들의 의견은 양분되어 있다. 왜곡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순화시켜 보면, ‘북한불변론’이라고 할 만한 관점과 ‘북한변화론’이라고 할 만한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논의의 내적 일관성을 고려하여, 불변론과 변화론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표에서 보듯이 두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대조적이지만, 특히 불변론은 전통적인 대남전략의 유지를, 변화론은 경제정책의 변화를 강조한다.


<표 1> 북한불변론과 북한변화론
쟁점
북한불변론
북한변화론
북한은 2002년 현재 경제위기를 벗어났는가
1990년대 말 최저점을 통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말 최저점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빈곤의 늪에 빠져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정책은 무엇이었나
개방정책의 포기 또는 체제강화 및 군사화
제한적 개방정책의 소극적이지만 지속적인 추진
현재 북한지도부가 취하고 있는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사회주의경제체제의 재건과 양적 동원체제에 기초한 경제성장
계획기구의 정비와 산업구조&#8231;기술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
북한지도부 내부에는 정책갈등이 있는가
김정일 중심의 단일한 정책결정구조
최고정책결정권자 김정일 아래에 관료적 정책대결 존재
북한지도부는 개방&#8231;개혁으로 가려고 하는가
개방의 통제, 사회주의경제체제의 강화
개방&#8231;개혁의 확대 추진
현단계 북한의 대남정책은 무엇인가
전통적 대남전략 또는 적화통일전략의 기본 노선 유지
수세적 대남전략 또는 공존전략
남한의 대북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변하지 않은 북한 체제의 실체에 대응한 안보중심의 대북정책
대북포용정책과 경제교류협력의 적극적 확대


단순화시킨 두 관점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북한의 현실이 외부로 내어 보내는 제한된 정보는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실제로 제시하는 북한 경제에 대한 관점은 극단적인 두 관점보다는 유보적이거나 절충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대부분의 사회과학적 논의와 마찬가지로 북한 경제에 대한 논의도 연구자의 이념과 정책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결과 논의의 과정에서 유보나 절충보다는 대립적 관점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이 발생한다. 북한 경제의 향방이 대북정책 결정과 남북관계 전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이러한 경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여전히 사실의 판단을 넘어 해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경제의 향방에 대한 판단이 중요한 만큼, 대립적 관점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현실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형성하는 일은 우리 내부의 다양한 통일 관련 견해들이 수렴되도록 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관점들보다는 공유하는 견해의 폭이 넓은 관점들이 유통될 때, 통일문제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공론의 장은 활성화되고 생산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2. 2002년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

가. 북한 경제의 현실 : 일상화된 경제위기, 절대빈곤, ‘빈곤의 늪’

북한이 2001년 5월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국민총생산은 1993년 991달러에서 1998년 457달러로 하락하였다. 5년 사이에 국민소득이 절반 이하로 하락한 것이다. 이러한 1인당국민소득은 대략 남한의 8~9% 수준이며, 유엔개발계획이 평가한 인간개발하위국의 1인당실질국내총생산의 가중평균치(1997년도 기준, 982 PPP$)에도 미치지 못한다. 1인당GNI와 PPP(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평가지수, 1 미달러로 미국 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의 양과 같거나 유사한 것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화폐가치; 유엔개발계획 한국대표부, 1998, 234쪽)로 평가한 1인당실질GDP는 평가방식의 차이 때문에 정확한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개략적인 비교로는 이용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은행이 추정한 남한의 1997년 1인당GNI는 10,307 US$이며, UNDP가 평가한 1997년 남한의 1인당실질GDP는 13,590 PPP$(1인당GNI의 약 1.32배)이다.
아울러 북한의 보고서는 평균수명(1999년 66.8세), 유아사망률(1999년 천명당 22.5명), 5세미만사망률(1999년 천명당 48명), 예방접종률(1997년 50%), 안전한 식수공급률(1996년 53%) 등에서도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신체적 조건에서 1950년대 중반 남한 주민들과 비슷하며, 북한 청소년들이 평균신장에서 남한 청소년들보다 10-15㎝ 정도 작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구나 TV화면에서 굶주림에 표정을 잃어버린 북한 어린이들을 보는 데도 익숙해 있으며, 이제는 1990년대 중반 북한 주민 수백만이 기아에 허덕였으며 그 중 상당수가 사망하였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은 절대빈곤의 상태에 놓여 있는 나라이며, 우리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의 절대빈곤은 무엇보다도 1990년대 북한 경제의 붕괴로 설명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기준)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하였으며, 국내총생산은 약 30% 정도 감소하였다. 1997년 말 경제위기를 경험한 남한의 경우 1998년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기준)은 -6.7%를 기록하였다. 한 해 동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남한 경제에 가져왔던 파탄에 비추어볼 때, 만 9 년에 걸친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북한 경제에 가져왔을 결과는 붕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주요 산업생산량을 평가하면, 곡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산량이 1990년에 비해 1998년에는 약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원유도입량, 철광석생산량, 강철생산량은 거의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북한 경제의 붕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북한 경제는 자체의 힘만으로는 회복되기 힘든 상태에 빠져있다.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국가재정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특별히 높았던 북한의 경우(약 75-85%),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재정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북한의 재정규모는 1994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2000년의 경우 예산은 과거의 절반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산업은 전반적으로 붕괴하였으며, 국가기구조차도 산업의 회생을 위한 투자여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국가재정의 감소는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계획부문의 생산활동이 저하되었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경제는 실질 투자가 확대재생산은 말할 것도 없이 단순재생산조차도 보장하기 힘든 ‘빈곤의 늪’에 빠졌던 것으로 보이며, 아직도 그러한 상태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경제에서 외부로부터 자본의 유입은 경제성장을 위한 유일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둘째, 북한 경제의 붕괴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기능장애와 무기력의 상태에 빠뜨렸다. 명령과 계획의 지배를 받는 북한 경제는 국가기구가 자원의 공급과 배분을 제대로 해주지 못함에 따라, 순환구조의 마비에 직면하였다. 자연히 인민경제의 계획부분은 축소되고, 주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비공식부문 또는 불법행위에 의지하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반 주민들뿐만 아니라 당과 국가의 중간 이하 관료들조차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일탈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당국도 체제의 유지를 위해 이러한 행위들을 일정 정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념과 통제에 기초해 있던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는 사회적 신뢰와 통합기제를 상실한 일종의 ‘사회적 공동화’ 현상에 직면하였다. 통치권력은 권력의 정당성을 상실하고, 대부분의 관료는 사적 이익의 확보를 위해 부패와 타협하기에 이른다. 주민들은 공식이념의 허위성과 국가기구의 무능을 깨닫지만, 체제 차원의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탈진한 상태에서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머무르고 만다.
빈곤의 늪에 빠진 북한 경제와 공동화 현상에 봉착한 북한 사회, 이 두 사태는 한편으로는 북한 체제가 위기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체제가 장기화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식민지배, 전쟁, 공산지배를 거치면서 근대적 정치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시민사회가 발전하지 못한 북한 사회에서, 주민들은 일상화된 경제위기에 ‘순응’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한 ‘고난의 행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때로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대규모 또는 체제거부적 ‘탈출’로 이어지지 못한다. ‘비판’의 행위와 결합되지 못한 이탈은 일시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나. 최근 변화와 관련한 논의

새로운 경제정책 기조, &#65378;7·1 경제관리 개선조치&#65379;,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치 : 북한 지도부는 김정일체제의 시작(1998년)과 함께 헌법 개정(1998. 9), &#65378;인민경제계획법&#65379; 제정(1999. 4) 등 다양한 조치를 통해 붕괴된 관료적 조정기구와 계획경제체제를 재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계획경제의 정비와 재건을 강조하던 북한 지도부는 2001년 초부터 사상·사고의 혁신과 인민경제의 기술적 개건 및 관리체계 개선을 강조하고, &#65378;가공무역법&#65379;을 제정(2001. 4)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볼 때, 북한 지도부는 2001년 초부터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새로운 경제정책기조를 채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에서 2002년 7월 1일의 경제관리제도 개선·강화 조치, 9월 12일 신의주특별행정구 설치가 나타났다. 여기에서는 논란이 많은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대해서, 특히 가격·배급제도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자.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기본 의도 : 북한 지도부가 밝힌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기본 목표는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는’ 것이다. 개선·강화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북한은 새로운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의 본성적 요구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스스로 자신들의 조치가 획기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은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경제정책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변화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어야만 하는 지도부의 고민을 담고 있다. 위기에 처한 북한의 경제현실은 체제안정을 위한 사회주의이데올로기의 강화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사업의 혁신적 변화를 지도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가격·배급제도와 관련한 내용 : 현재 외부세계에 알려진 북한의 &#65378;7.1 경제관리 개선조치&#65379; 중 가격·배급제도와 관련된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쌀가격을 포함한 물가의 전반적 조정이 이루어졌다. kg당 8 전이던 쌀가격을 44 원으로 인상하였고, 쌀가격 인상과 함께 모든 생산물을 ‘제 가치대로 계산하기’로 결정하였다. 교통비 등 국가서비스 부문의 가격을 인상하고, 심지어 주택비도 상승시켰다. 둘째, 임금을 조정된 물가에 맞춰 20 배 정도 인상하였다. 또한 ‘로력일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번 수입에 의한 평가’에 따른 임금지불을 결정하였다. 셋째,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물가조정 및 임금상승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배급제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도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책임진다’는 시책을 고수하기 위해, 북한은 쌀에 대한 배급표제도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표 2> 최근 북한의 가격 및 임금인상 주요내용
(단위 : 북한원)
구분
품목/계층
단위
국정가격 조정
시장가격과의 격차
조정전
(A)
조정후
(B)
인상폭
(B/A,배)
농민시장
가격(C)
조정전
(C/A,배)
조정후
(C/B,배)
가격

1kg
0.08
44
538
49
612.5
1.1
옥수수알
1kg
0.07
33
471
33.6
480
1.0
디젤油
1kl
1
38
38



전력
1kWh
0.035
2.1
60



전차요금
1회
0.1
1
10



지하철요금
1구간
0.1
2
20



침대차요금
평성(평북)~
남양(함북)구간
50
3,000
60



유원지입장료
송도 해수욕장
3
50
17



집세
평양지역기준
수입의
0.03%
1㎡당
월 2원
-



임금
생산노동자

110
2,000
18



탄부


6,000
-




주: 농민시장가격은 2001년말 전국평균 기준
출처: 한국은행 조사국 북한경제팀, &#43092;최근 북한 경제조치의 의미와 향후 전망&#43093;, 2002. 8.
원자료: KOTRA, 조선신보, 연합뉴스, Economist 등 종합

개선조치의 기대효과 : 먼저, 북한은 가격조정을 통해 모든 물가를 현실화함으로써 붕괴된 관료적 조정기구의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1999년 &#65378;인민경제계획법&#65379; 제정을 통해 계획기구의 정상화를 도모하였던 북한 지도부는 쌀의 국정가격을 거의 농민시장가격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곡물과 관련한 수급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곡물에 대한 이러한 조치는 다른 품목들에 대한 가격인상조치와 결합됨으로써 암시장의 전반적인 규모를 축소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다. 아울러 화폐의 실질가치 하락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암거래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화폐를 흡수함으로써 통화량의 실질적인 축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임금 상승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봉급생활자들(특히 하급 관료와 군인, 국영공장·기업소 노동자 등)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줌으로써 김정일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일정 정도 무마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평균주의가 아닌 성과에 따른 차별화된 임금지불은 노동의욕을 상승시킬 것이다. 끝으로, 배급제와 사회보장제도의 유지는 전반적으로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기초한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보장하고 경제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경제조치에 따른 주민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개선조치로부터 기대하는 효과는 전체적으로 붕괴된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의 정상화 또는 복원이라고 판단된다.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 : 일차적으로 물가조정의 결과, 주민들은 농민시장의 가격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쌀의 경우)는 판단과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부도 엄청난 가격의 상승으로 돈으로 사야만 하는 상품이 되었다(전력, 주택 등의 경우, 위의 <표 2> 참조)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 당국이 시장기구를 수용하였으며, 경제의 모든 부분이 ‘상품화’ 또는 ‘화폐화’되었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유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은 주민들의 생활향상과 함께 주민들 사이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물가조정과 결합하여 인플레이션현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배급제의 경우에도 곡물가격의 현실화와 사회보장제도에 속하는 여러 서비스들의 가격상승으로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핵심 부분인 가격·배급제도의 변화는 사회주의원칙을 고수한다는 정책의도에도 불구하고 시장기구의 도입 또는 시장경제화라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대한 세 가지 해석

<표 3> 세 가지 해석의 비교

기본 관점
개선조치의 핵심적 기대효과
계획경제 정상화
ㅇ경제전략 및 정책의도 중시
ㅇ단기적 정책변화 강조
ㅇ비공식부문 흡수
ㅇ노동인센티브 제고
계획경제 개혁
ㅇ비교사회주의적 관점
ㅇ체제전환의 단계론적 접근
ㅇ가격정상화 및 원·부자재 시장 개설
ㅇ독립채산제 및 분권화 강화
시장경제화
ㅇ체제전환의 내부 동학 강조
ㅇ장기적 체제변화 과정 중시
ㅇ가격기구 도입 및 국가서비스의 상품화
ㅇ시장 범위 확대 및 지배인의 권한 강화



시장중심의 가격결정방식 : 북한은 사회주의경제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쌀, 임금뿐만 아니라 자재와 설비를 포함한 전반적인 물가가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장과 기업소에서 과학적인 생산계획을 세우고 실질적인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제 가치대로 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덧붙여, 북한은 중앙과 지방행정단위들이 가격을 조절하는 체계가 세워져 있으며 시장의 원리가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가격조정은 물량동학에 기초한 자원배분체계에서 가격동학에 기초한 자원배분체계로 경제체계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쌀가격의 현실화와 관련하여 내세운 생산원가, 국제가격, 수요공급법칙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가격결정기구가 단순히 국정가격원칙에 따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수요와 공급에 맞춰 결정되는 암시장의 쌀가격에 맞춰 가격을 현실화하였으며 모든 가격을 ‘제 가치대로 계산’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따른다면, 국가의 가격제정권한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가격을 국정가격의 조정을 통해 추인하는 기능밖에 없는 명목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북한은 국가의 가격제정·통제 기능을 표명하면서도, 수요공급법칙에 기초한 가격기구의 도입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범위 확대와 물가 변동 : 가격기구의 도입과 함께, 경제체제의 전환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은 시장의 범위와 물가의 변화이다. 북한은 원·부자재에 대한 시장을 도입하였으며, 이는 시장경제가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할 것이다. 이러한 생산재시장의 규모는 소비재시장에 해당하는 기존의 국영시장이나 농민시장의 규모를 능가할 것이며, 자연히 북한 경제 전체를 시장경제로 재편하는 주요한 견인차가 될 것이다. 한편 물가의 변화는 가격기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명목상으로 국정가격체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농민시장(암시장 포함)의 가격 변동은 국정가격의 변동을 예측하게 하는 선행지표의 의미를 갖는다. 농민시장의 가격과 국정가격의 지나친 괴리는 결국 국정가격의 재조정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체제 전환의 두 방식과 북한의 가격조정 : 사회주의경제의 체제전환에서 핵심적인 두 현상은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자원배분메커니즘의 시장화이다. 흔히 말하는 급진적 전환과 점진적 전환의 차이는 사유화와 시장화의 도입방식에서 나타난다. 중국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진적 체제전환의 경우, 사유화와 시장화는 경제관리방식의 개선을 통해 공급제약이 해소되면서 추진된다. 북한의 경우, 사유화는 추진되지 않고 있지만, 가격조정을 통해 가격기구가 도입되고 시장의 범위가 확대됨으로써 시장화는 급속히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시장화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상승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확대정책의 실질적인 성과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쌀가격 상승과 축적체제의 변화 : 쌀가격의 상승은 농민 소득의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공업부문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국내에서 동원되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국가가 곡물판매를 통해 얻는 수입이 증대할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당분간 주민생활보장을 위해 인상된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대부분 다시 지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농민들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생활필수품용 공산품을 구입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에 대한 세금제도의 부활을 통해 국가재정을 확충하는 방법도 당분간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산업부문간 소득분배의 차이는 정부가 투자자원을 외부로부터 들여올 수밖에 없다(개방화의 압력)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취해온 자력갱생형 축적체제가 대외의존형 축적체제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농민의 소득증대를 지속시키기 위해 농민들의 농업분야 투자를 유도해야 하며, 이는 자연히 협동농장의 관리방식과 소유제도를 사적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꾸게 만들 것이다. 결국 농업과 공업 부문 사이의 상대가격의 변화는 축적체제의 변화를 통해 경제관리와 관련한 미시적 차원의 변화와 함께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제도의 변화라는 체제원리와 관련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자원배분원리의 변화 또는 경제성장전략의 변화 : 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 국가의 가격결정·통제 권한이 명목상 보장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경제성장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을 통한 생산재의 거래·배분, 가격기구의 작동에 기초한 산업부문간 소득분배, 독립채산제와 분권화의 강화 등은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전략이 수정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북한 지도부는 국가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직접적인 자원분배자의 기능을 포기하여야 한다. 대외개방을 통한 외자 유치, 물량 통제가 아닌 가격조정(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가격왜곡)을 통한 자원배분 조정, 사회간접자본 건설, 투자환경 개선 노력, 민간경제행위자와 국가의 협의체 구성을 통한 경제정책 결정, 성과에 따른 자원배분규율 등이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경제정책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자립적 민족경제건설노선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외개방이 시급하지만, 동시에 중공업우선노선과 경제건설·국방건설병진노선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정책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는 공급제약의 해소를 통해 거시적 차원의 경제안정화를 달성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주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원배분원리와 경제성장전략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개별 경제단위들, 그 중에서도 기업소의 행동원리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경제의 ‘화폐화’ :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실질적인 화폐개혁이라고 할 만한 가격조정을 실시하였으며, 지금까지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배급하던 재화와 서비스가 ‘제 가치대로 계산’된 가격에 따라 판매되도록 만들었다. 이는 자연히 경제의 ‘화폐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경제난으로 주민들이 경제생활에서 농민시장에 의존하는 비중이 증가해 있는 상황에서, 가격조정은 주민들에게 경제작동원리의 근본적 변화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은 경제분야에서 자신들이 경험했던 국가의 무능력을 확인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국가가 ‘시장기구에 적응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공표하였다고 판단할 것이다.

배급제의 실질적 폐지 : 북한 경제체제의 상품경제화 또는 화폐경제화와 관련하여 주요한 평가지표가 될 쌀 배급제의 유지는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항 중의 하나다. 현재 주민들은 자신들이 받은 배급표가 표시하는 만큼의 쌀을 구입할 수 있다. 이러한 쌀 배급제가 의미를 상실할 경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장차 곡물의 공급이 증대하여 농민시장의 곡물가격이 하락할 경우이며, 이 때 주민들은 배급표에 의존하지 않고 농민시장에서 곡물을 구입할 것이다(경우 1). 다른 하나는 곡물의 공급이 극도로 감소하여 과거와 같이 배급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쌀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이며, 이 때 배급표는 무용지물이 되고 주민들은 농민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곡물을 사야 한다(경우 2). 이에 덧붙여 곡물의 공급이 극도로 감소하지는 않더라도 농민시장에 나오는 쌀의 품질이 하락하여 웃돈을 주고라도 국가가 배급하는 쌀을 사야할 경우(경우 3)와 배급된 쌀을 팔아서 다른 싼 곡물을 사서 소비해야 할 경우(경우 4)도 예상할 수 있다. 이 두 경우 부유한 주민은 국가가 공급하는 질이 좋은 쌀을 사기 위해, 가난한 주민은 좀더 많은 곡물을 얻기 위해 배급표로 산 쌀을 팔거나 배급표를 실질적으로 팔거나 할 것이다(배급표의 유가증권화 가능성 발생). 1, 3, 4의 경우 쌀의 국정가격을 낮추고 충분한 배급표를 주어야만, 주민들의 복지를 보장한다는 배급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2의 경우에는 국정가격의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며, 배급제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쌀가격의 상승폭만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결국 쌀가격의 현실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배급표가 쌀을 충분히 구매할 정도로 주어진다면(생활의 보장) 그리고 쌀의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배급제 자체는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쌀의 정상적 공급과 적당한 양의 배급표가 주어진다면(이것이 배급제가 추구하는 목표상태이다), 쌀가격 현실화와 배급제는 모순관계에 놓인다. 쌀가격 현실화―이는 자연히 공급의 정상화를 의미할 것이라는 전제하에―는 배급제를 무의미하게 하고, 배급제는 쌀가격의 현실화―임금의 현실화를 동반한―를 무의미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배급제는 북한 경제의 정상화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소득격차의 발생과 새로운 사회통합원리의 요구 : 수익에 따른 배분과 새로운 가격체계는 기업의 성과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상대가격의 변화에 따라 공장노동자와 농민 사이에 소득격차를 발생시킨다. 소득격차가 야기됨에 따라 그동안 북한 주민들 사이에 유지되었던 동질성은 파괴되고,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분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사회통합을 위한 새로운 원리를 요구하게 된다. 자연히 평등이라는 이념에 기초한 사회주의경제체제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사실 1990년대의 어려운 시기를 거친 북한에서 사회주의이데올로기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는 더 이상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새로운 경제인의 형성 : 주민들은 조정된 가격에 맞춰 인상된 임금을 받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인상된 임금으로 새로운 가격체계에 맞춘 자신들의 지출구조를 짜서 경제생활을 운영해야만 한다. 이러한 요구는 북한 주민들의 경제에 대한 기본 인식을 바꾸어 버린다. 일종의 가계차원의 경성예산제약은 가격기구의 작동과 시장경제 영역의 확대에 따라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자기이익을 계산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경제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시장경제에 맞춘 경제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상되는 북한 경제의 변화 :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특별행정구 설치라는 획기적인 정책변화를 고려할 때, 북한 경제정책과 경제체제가 앞으로 점증주의적으로 변화해 갈 것이라는 전망을 일단 배제할 수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전망이 가능하다. 긍정적 전망은 개혁·개방의 성과가 나타나면서, 북한 경제의 시장화와 개방화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자연히 경제안정화와 경제성장이 동시에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북한 체제는 점진적인 체제전환의 과정으로 접어들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경제성장과 체제전환이 점진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제성장형 체제전환의 과정이 북한에서 나타날 것이다. 부정적 전망은 시장화와 개방화가 경제침체의 탈피에 실패하면서 경제위기가 다시 심화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 체제의 불안정은 심화되고, 북한은 체제 전체의 위기에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북한 지도부의 체제안정 또는 체제보수를 위한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표 5>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경제체제 변화에 대한 낙관적 전망

개선조치
예상효과
경제제도
가격기구 도입
시장경제 영역 확대
경제행위자
화폐화
합리적 경제인 탄생
경제성장전략
상대가격체계 변화
자립노선 폐기
대외경제정책
개방화
해외 자본과 기술 유입
경제체제 변화
개방·개혁프로그램
경제안정화와 경제성장



3.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와 한반도 정세

가. 북한 경제정책 변화와 대외관계

<그림 1> 한반도 관계발전의 정책적 순환고리




개방 추진
개방 성과




포용정책효과
지지 여론
남 북 관 계
관계
개선
포용
정책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
개방
관계
개선



북&#8231;미관계가 2000년 초부터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놓여 있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개방&#8231;개혁과 남북 경제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순환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남한의 대북포용정책, 북한의 개방정책, 남북관계 발전이라고 판단된다. 그 중에서도 남한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순환과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동적인 요소이다. 최근 남북관계 개선에서, 북한의 개방&#8231;개혁과 관련한 환경변화에서,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기조의 결정에서 남한 정부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다른 한편,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발전&#8231;안정화와 남북한 경제관계의 확대는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대북진출과 관련해서 필요조건이자 자극제라는 점도 중요하다.
두 개의 전망이 가능하다. 하나는 이상적 전망으로서, 순환고리들이 선순환을 하는 경우이다. 북한의 경제개방이 경제적 성과를 낳고 개방&#8231;개혁이 심화됨에 따라 남북한 경제관계가 확대되고 민족경제가 통일적&#8231;균형적으로 발전함으로써, 민족경제공동체가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상과 같은 선순환과정에서는 한반도 전체의 질서변화가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공존공영의 형태(소위 정합게임)를 띨 것이다. 남북한 각각의 내부 상황도 안정적일 것이며, 분단과 냉전의 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남북한의 통일을 가져오고 동북아지역의 협력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경제가 협력을 통한 발전으로 나아갈 때, 이는 세계적 차원에서 불안정과 불평등을 전파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과 동북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견제하는 주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반면 북한의 개방정책이 좌절되거나 포기될 때 그리고 현재와 같이 북&#8231;미관계가 긴장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때, 북한 경제의 위기는 심화되고 북한 체제 자체의 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악순환과정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를 긴장으로 몰아갈 것이다. 남한도 심각한 내부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민족경제의 발전과 한반도 경제권의 형성, 그리고 동북아지역 경제협력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성장과 협력의 잠재력이 높은 동북아지역 전체의 경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결국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 세계화는 가속화되고,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강화될 것이다.

나. 쟁점 1 : 대북포용정책과 북한 경제정책 변화
○ 기본 관점 : 대북포용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왔다.
○ 비판 1 :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오히려 대북압박정책과 북한 내부 위기의 결과이다.
○ 비판 2 :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이는 충분하지 못하며 아직 적절한 결과도 얻지 못했다.
○ 평화주의적 관점에 기초해서 평가; 과연 대안이 있는가?

다. 쟁점 2 : 북한 경제정책 변화와 북한 지도부의 정책수행 능력
○ 기본 관점 : 북한 지도부는 개혁·개방을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
○ 비판 1 : 북한 지도부는 체제유지를 위해 소극적 전략을 취할 뿐이다.
○ 비판 2 : 최근 신의주 특별행정구와 관련하여 북한이 보여준 태도는 정책의 결정·수행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 비판의 적절함을 인정하고, 북한 지도부에 대한 우리의 역할을 강조
- 위에서 보여준 선순환
- 동시에 북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라. 쟁점 3 : 북한 경제정책 변화와 남북경제공동체
○ 기본 관점 : 북한 경제정책 변화를 통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동시에 남북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 비판 1 : 남북한 경제체제의 차이를 고려할 때, 성급한 경제공동체 형성은 비현실적이다.
○ 비판 2 : 북한 지도부는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에 부정적이다. 특히 남한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일본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 비판 3 : 북한 경제정책이 성공을 거두기보다는 실패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 비판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적절한 대북정책은 남북공동체형성의 실마리를 지금부터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4. 한반도 평화와 북한 경제

가.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과 관련한 몇 가지 논의

일반적으로 공동체라는 개념은 ‘구성원으로서의 개인’과 ‘전체로서의 집단’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사회형태를 가리킨다. 사회적 존재형태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개인의 존재 자체가 인식되지 않거나, 공동체 자체의 특징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러한 공동체는 근대시민사회의 형성과 함께 분화하기 시작한다.
공동체의 분화는 두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은 집단적 존재형태인 사회 자체와 분리되면서 자신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를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대립하는 경우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의 차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공동체가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경우와 사회질서 형성을 매개로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는 경우를 구분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활동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개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직접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적 영역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근대시민사회에서 공동체는 이중의 장벽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자체가 근대시민사회에서 본래의 형태대로 존재하기 힘든 상태에서, 민족공동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가 통일의 단계와 관련하여 사회&#8231;문화공동체, 경제공동체, 정치공동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고 할 때, 이는 분명 근대시민사회에서 존재하기 힘든 전근대적 사회형태로서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공동체란 사회구성원들의 전근대적 존재형태의 속성을 가리키는 ‘공동체성’보다는 정치&#8231;경제&#8231;사회&#8231;문화 전 영역에 걸쳐 민족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존재하던 생활방식 또는 생활공간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민족이라는 단위가 정치, 경제, 사회&#8231;문화 영역에서 하나의 생활방식이나 생활공간을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실질적 내용은 각 영역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정치공동체의 경우에는 민족이 하나의 정치체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요구하지만, 사회&#8231;문화공동체의 경우에는 사태가 좀더 복잡하다. 우선, 사회&#8231;문화적 단일성을 공동체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문화다원주의의 관점은 분명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회&#8231;문화적 소통의 자유와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만으로 공동체를 규정할 수도 없다. 동질성과 이질성의 긴장 속에서도 ‘공동체’라는 용어에 걸맞은 특징이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경제공동체의 경우에는 민족이 반드시 하나의 경제체제, 하나의 국민경제를 형성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경제협력체를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점에서 경제공동체란 정치공동체와 달리 완전한 통합 상태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통합을 향한 경향성이나 의식적 노력이 존재하는 과도적 상태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경제공동체는 엄격한 의미의 ‘공동체’나 ‘경제통합’을 의미하지 않으면서, ‘이익의 공존’ 또는 ‘분화된 이익의 결합’에 기초한 경제활동체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남북한이 현재 서로 분리된 경제단위를 유지하면서 점차 경제교류&#8231;협력을 증대시켜 하나로 통합해 가는 상태를 경제공동체의 통상적 의미로 파악한다면, 남북경제공동체란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제도화하여 경제통합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이후부터 완전한 경제통합을 이루기 이전까지의 기간 동안에 협력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서 개념의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평화적 통일과정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민족경제공동체라는 개념이 연상시킬지도 모르는 한 가지 문제를 미리 정리해 두자. 일반적으로 민족경제공동체는 민족경제생활권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남북의 경제생활권이 완전히 통합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로 연결될 때, 우리는 남북한 경제가 경제공동체로서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경제생활권이 완전히 민족적인 경제주체에 의해 장악될 필요는 없다. 흔히 남북한 각각에서 제기되었던 민족경제론은 자주적인 또는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상정하고 있다. 당연히 민족경제공동체는 이러한 민족경제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특히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민족경제, 심지어 국민경제 자체의 존재가치가 부정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민족경제공동체는 자립적 민족경제론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지만 민족경제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다면, 민족경제공동체라는 개념 자체의 기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독립된 하나의 근대국민경제를 형성한 경험이 없으면서 지역경제통합을 구상해야만 하는 남북한에게, 민족경제공동체는 일정 기간 동안 목표로서 추구하면서 동시에 극복해야만 하는 한시적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민족경제공동체는 지역경제협력과 함께 사고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는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형성과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과제를 세 가지 정도 살펴보자. 첫째, 남북한은 경제력 격차의 해소에 주력해야 할 것이며, 이는 무엇보다도 북한 경제의 회복을 요구한다.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형성 또는 경제협력의 심화는 남북한 경제력의 격차를 자동적으로 해소시켜 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경제력 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경제공동체 형성 또는 경제통합은 남북 전체에 이익이 될 것이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크기의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경제공동체 형성이 본격화되기 전에 경제력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둘째, 남북한은 북한 경제의 개방&#8231;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정치&#8231;사회적 조건을 공동으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 경제개방&#8231;개혁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정권의 안정을 북한지도부에 보장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정치&#8231;경제적으로 북한지도부가 체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남한이며, 남한은 이러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경제적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외교적 차원의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셋째,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형성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동북아 지역협력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북한이 흡수통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동북아지역 경제협력, 예를 들면 두만강지역협력사업 추진 등은 북한이 좀더 적극적으로 남북교류&#8231;협력과 공동체 형성에 나오도록 할 것이다. 또한 남북한 경제공동체 형성과정에서 남북한만이 아니라 주변국과 국제기구가 동시에 참여하는 컨소시움을 형성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의 내부 논란을 볼 때, 더 시급한 질문이 있다. 어떠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논의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지원과 관련한 논쟁은 대북지원이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부정적일 것이라는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분단비용을 고려할 때, 대북지원은 분단비용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전환해서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남북이 한반도 남북에 억압을 강요하는 분단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북한 경제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대북지원은 단기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투자(평화비용)이며, 장기적으로는 민족의 자주와 자유를 위한 투자(통일비용)이다. 더구나 경제가 단순히 삶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의식조차 좌우한다면, 대북지원은 민족화해의 주요한 행동방식의 하나가 될 것이며, 나아가 남한의 시민사회가 경제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주요한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경제위기 상황의 북한에 대한 지원이 갖는 역설적 의미, 분단체제 하에서 북을 돕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라는 의미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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