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23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평화여성회 주최 - 전문가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입니다.

발제자 : 황학수 변호사(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군인의 전화를 통해 본 사병 인권의 현실>

천주교인권위원회 황학수 변호사


들어가며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부터 군인의전화를 운영해오고 있다. 군인의전화는 군조직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군인(주로 사병, 전·의경 등 전환 복무자 포함)들을 여러 유형의 폭력과 인권유린으로부터 보호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인권의 신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군내 사망사고 및 폭력사고의 예방, 피해자 및 가족들에 대한 구조작업, 관련제도개선을 위한 활동 등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군인의전화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피해자들의 가족들이다. 현역 복무중인 피해자들의 경우, 아무래도 후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행동거지 또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피해 사건들의 대부분은 조기에 접수되기보다는 사안이 상당히 심각해지고 나서, 또는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접수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피해자와 가족들을 일종의 불감증으로 몰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2003년 9월 4일 현재 군인의전화에는 신규 37건의 사건이 접수되었다. 세부 통계를 보면 사망사고 20건, 구타사건 11건, 의료문제 2건, 신체검사제도 불합리로 인한 피해 2건, 기타 상담 2건 등이다. 군인의전화 접수 사건의 추이를 보면 지난 7월에만 총 11건이 접수가 됐는데, 이는 7월 들어 온 사회가 일련의 전·의경 구타·사망사건, 군내 성폭력 사건 등으로 인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관련 피해자나 피해 가족들이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은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군 조직이나 경찰 조직은 믿지 못하겠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실정법상 조사권한이 없어 사실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고, 결국 돌고돌아 물어물어 오는 곳이 군인의전화라는 얘기다.

여기서는 군인의전화에 접수된 사건 가운데, 사망사고를 제외한 대표적인 인권침해유형 3건을 언급하고자 한다.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 언급할 자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아래 3건에 대한 사례발표로 군조직이나 경찰조직을 통째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나름대로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 3가지 유형의 인권침해사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비단 아래 언급된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더욱이 이같은 인권침해사례는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인권침해유형은 군과 경찰에 별 차이가 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사례 1.

(가)부대에서 전경으로 근무하던 A 이경은 부대에 배치된 후 상습적인 구타를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타를 당하다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갔으며(3월18일), 이후 (나)부대로 전출을 갔다(4월 2일). 그러나 A 이경은 (나)부대로 간 지 2주가 못 되어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7월말까지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나)부대에서는 A 이경이 전입을 온 후, 특별관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빠른 적응을 위해 선임대원 B 수경을 붙였으며,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일과에서 열외되는 대기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A 이경은 (나)부대에 와서도 구타를 당했으며, 집단따돌림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고참들이 "아침부터 널 보니 소화가 안 된다" "밥맛이 떨어진다"는 등의 말을 했고, 여러 고참들이 자기 잔반을 덜어주며 억지로 먹기를 강요해서 속이 쓰려 못 먹겠다고 하자 숟가락으로 퍼서 억지로 먹였으며, 한 고참은 "너 자꾸 미친 척 하면 다른 자대로 보내 버린다"고 말했고, 훈련 중 머리와 가슴이 너무 아파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니, B 수경이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고 발로 차며 이래도 아프냐면서 책을 얼굴에 던지고, 팔굽혀펴기와 피티체조를 시키고, 운동장 50바퀴를 돌게 했으며,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자살해 버리지 왜 사냐, 제대하고 사회 나가 널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부대측에서는 구타나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B 수경은 꾀병을 부리는 것 같아 몇 번 쥐어박은 적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을 보면 놀라고, 타인의 손이 몸 주변으로 갈라치면 방어자세를 취하고, 기억력 감퇴와 말을 더듬는 증세를 보이던 A 이경은 현재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 그러나 제복을 입은 사람을 보거나, 부대 이야기만 나와도 스트레스를 받는 등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다. A 이경의 어머니는 A 이경을 부대로 다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세가 나빠질 것에 대한 염려다. 그러나 현 제도하에서 A 이경은 부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의가사제대는 요건이 되지 않아 불가능한 상태다.

문제는 부대로 복귀하더라도, A 이경을 돌 볼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정상적인 일과를 진행하기에도 벅찬 일선 부대에서 A 이경은 사실상 '골칫거리'이며, '부담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나)부대 지휘관들의 진술에 의하면 A 이경이 특별관리(일과 중 열외)를 받고, 상대적으로 편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다른 대원들의 공공연한 불만이 잠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힘든 일과 속에서 '약자'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속에서는 돌발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 이경처럼 구타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대부분이 '전환장애' 판정을 받는다. '꾀병'인지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꾀병' 여부를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당국자들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A 이경 같은 피해자들의 재활과 정상적인 사회복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급한 것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당국자들의 인식전환과 구타 후유증을 겪는 피해자들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공상처리와 관련해서, 피해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관련 제도의 개선 필요성이다. 현재는 공상처리가 되더라도, 피해자들은 의무적으로 군(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그 치료비에 대해 군(경찰)이 책임지지 않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경찰)병원의 현실은 열악한 수준이다. 사병들 사이에는 군(경찰)병원에서는 '칼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내려오고 있고, 심한 경우 군(경찰)병원에서 수술 받는 사람은 '실습용'이라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굳이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군(경찰)은 적어도 위독하거나 장기간의 후유증이 예상되는 민감한 병세의 환자의 경우, '권위자'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하는 피해자 및 가족들의 심정을 고려했으면 한다.


사례 2

강원도 (가)부대에 근무 중이던 A 이병은 지난 3월 투신자살을 기도했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다리와 척추에 중상을 입고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A 이병의 진술에 의하면, 투신자살을 기도하게 된 배경은 B 병장 등으로부터 당한 구타와 가혹행위였다. 주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난 1월, 100일 휴가를 나왔다. 그러나 휴가를 나오기 전 고참인 B 병장으로부터 "밖에 나가면 '나이트 온라인'이라는 인터넷 게임에 내 계정을 만들고 레벨을 30까지 올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때문에 휴가의 대부분을 게임을 하는데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B 병장과 줄곧 경계근무를 나갔다. 한 번은 초소에서 B 병장이 태권도 시범을 이유로 폭행을 가했다.
점호시간에도 한 고참으로부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적이 있다. 또 PX에서 '킹 오브 파이터스'라는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을 이기지 못한다고 얻어맞았다.
B 병장은 "내 앞에서는 항상 목소리를 크게, 동작은 빠르게 하라"면서, 점수제를 실시한다고 했다. 기본점수 80점에, 잘하면 점수를 주고, 못하면 점수를 깎는 식이었다. 70점 이하로 내려갈 경우 알아서 하라고 했다.
B 병장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동전이 있냐고 물었다. 지갑을 꺼내 보여주었다. "왜 이렇게 동전이 많냐, 지갑 무겁지 않냐, 내게 좀 덜어줄게"하며 3,000원 상당의 동전을 빼앗아 갔다.
훈련을 나가기 전, B 병장은 돈이 얼마 있느냐고 물었다. 훈련 중 간간히 먹을 음식을 사려고 한다면서 회비를 내라고 했다. 5,000원 정도를 냈다. 나중에 들으니 회비는 모든 분대원에게 걷었는데, 실제 사온 것을 보면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A 이병은 이런 이유 등으로 대대장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후환이 두려워 구타와 가혹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못하고 가족 때문에 조기전역을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대장은 이튿날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도록 지시했고, 정신과 군의관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전역은 안 된다고 말했다. 진료실을 나온 A 이병은 B 병장의 얼굴이 떠올랐고 순간적으로 스트레스가 치밀어 올랐다며 병원건물 4층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다.

이에 대해 헌병대 측에서는 "B 병장이 휴가 중에 인터넷 게임을 하라고 한 것은 지시라기보다는 권유였다. 가혹행위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시 B 병장은 A 이병 등 2명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다. 둘 중 한 사병은 B 병장의 말을 따르지 않았지만 부대 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A 이병 소속 부대의 한 지휘관은 "A 이병은 원래 부대에서 게임을 잘 하기로 유명했다. 인터넷 게임 초보자인 B 병장이 A 이병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 뿐이다. 내성적인 성격의 A 이병이 B 병장의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 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신종 가혹행위라고 부르는 것은 좀 어색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유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입 온 지 얼마 안 된 A 이병이 B 병장의 언행들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병들은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자대 생활을 시작한다. 신병들에게 있어서 말년 병장은 실상 '하늘같은'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말년 병장의 권유는 신참 이병에게 명령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A 이병이 이런 명령 등으로 인해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면 명백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다른 사람과의 단순 비교는 무의미한 것이다. 아무개가 유독 나약해서,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남들 다 견디는 것을 혼자 못 견뎌서… 하는 식의 사고로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이르지 못한다. 군에서 발생하는 구타 및 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계자들의 인권의식 제고와 함께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자세로 전환이 절실하다. 현재 A 이병은 의가사제대 결정이 난 상태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판례가 하나 있다. 지난 1999년 8월12일 천안경찰서 근무 중 구타 및 가혹행위를 참다 못해 자살한 A 이경 사건(사건번호 2002가합424 손해배상)에 대한 판례이다.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민사부(재판장 손차준)의 판결에 따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소외 망인으로서도 피고 B, C, D 등의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하여 지휘관 등에게 보고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성적 성격으로 인하여 이를 숨겼을 뿐만 아니라…(부분 인용)

바로 '책임의 제한' 부분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위 이유 등으로 인해, A 이경의 과실비율은 80%로 잡혔고, 피고(가해자)들의 책임은 20%로 제한되었다.

이는 군인 인권 현실에 대한 사회의 불감증, 나아가 사법부의 무지를 보여주는 일단의 사례라고 보여진다. 이런 판례를 접하다 보면, 과연 재판부가 고도의 위계질서 사회인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았는지, 조직자체의 구타 방지 및 구조 시스템의 현실성을 고려해 보았는지, 나아가 사병의 입장에서 '병영생활'을 직접 경험해 보았는지, 아니면 이에 대해 면밀한 연구라도 해 보았는지 묻고 싶어진다.


사례 3

A 훈병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지난 2월 17일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그러던 중 3월 15일 오른쪽 다리 비골 골절의 상해를 입어 귀가조치 됐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가던 중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해서 바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A 훈병과 같이 훈련을 받았던 다른 훈병들의 진술에 의하면, A 훈병은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이래 소대장 B와 C, 중대장 D, 조교 E로부터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동료 훈병들로부터 집단적인 따돌림과 구타, 가혹행위를 당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나타난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아래와 같다.

소대장 B의 경우,

A 훈병뿐만 아니라 평소 훈련병들을 무시하고 구타를 했으며, A 훈병의 경우는 입소한 당일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구타했으며, 거의 매일 1∼2대씩 구타를 했다. 기합을 주면서 허벅지나 정강이 등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급소부위 등을 때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20km 행군이 있던 날(A 훈병의 정강이가 부러진 날), A 훈병이 다리가 아프다면서 쓰러지자, 발로 차면서 연기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으며, 억지로 걷게 하면서 나무로 툭툭 치고 발로 걷어찼다. 그러다가 정강이를 걷어차인 A 훈병이 쓰러졌다.

소대장 C의 경우,

피티 체조를 하던 날, A 훈병을 부르더니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멀리서 돌멩이를 던졌다. 또 지휘봉으로 머리와 엉덩이를 몇 차례 구타를 했다. 돌을 던지는 모습을 5차례 보았으며, A 훈병이 그 돌에 맞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행군이 있던 날 행군 도중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A 훈병에게 참고 가라고 소리를 쳤으며, 결국 넘어지자 다른 훈련병들이 보는 앞에서 엎드리게 한 후 발로 밟고 몽둥이를 휘둘러 엉덩이를 때렸다. 그 뒤로 A 훈병이 조금만 잘못을 해도 구타를 가했다.

현재 부대 측에서는 가족에게 A 훈병 사건에는 40여명의 가해자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7월 9일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가)사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 사건에 대해 들은 바도, 조사한 바도 없다는 것이었다(천주교인권위원회 공문에 대한 회신).

그러나 그 이전에 신병교육대 측에서는 만일을 대비, 사건에 대한 축소·은폐 작업을 해 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F와 G 두 사람의 진술에 의하면, 부대는 구타 및 가혹행위 가해자로 입소 전 전과기록이 있는 F와 G 두 훈련병만을 지목, 관련 서류 등을 구비해 두었다고 한다. 또 소대장 B는 F, G 뿐만 아니라 전 소대원들을 상대로 협박과 회유를 하며 입을 맞추었고, 애초부터 정신에 이상이 있었다는 식의 내용을 담은 진술서들을 강요해서 받아 놓았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A 훈병은 치료비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말의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헌병대 조사가 진행중이며, 가족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8월 8일 사건과 관련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다.

가족들이 분노하는 것은 부대의 무책임과 가족들에 대한 철저한 무시 때문이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까지 부대 관계자는 한 번도 병원에 와 본 일이 없으며, 병원에서 중대장의 방문을 요청했으나 묵살을 당한 사실까지 있었다고 한다. A 훈병의 아버지는 부대를 방문했다가,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폭언과 수모만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으니" 사람을 얕잡아본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A 훈병은 왼쪽 발목 부상과 관련해서는 '혈관이 끊어진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정밀검사마저 받지 못한 상태이며, 최근 들어 정신이상증세가 악화돼 가족의 면회마저 제한받고 있다.

A 훈병 사건은 군 부대의 전형적인 '보신주의'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안달하는 지휘관들에게 사병들의 인권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가족들에 대한 배려,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유사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은 뒤따르지 않는다. 이를, 군 전체의 문제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에 대신하여

1. 지난 8월 17일 육군은 "병사 계급은 상하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다"면서 병사 상호 간에 명령·지시·간섭을 금지시키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 또는 징계 처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사고 예방 종합대책'을 육군 예하 전 부대에 내려보냈다고 한다.

주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고참병이 후임병에 대한 '심부름시키기' '식기 세척 강요' '구타' '규정 외의 얼차려' 등의 행위가 전면 불허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형사 입건돼 1~5년의 징역형을 받거나 외출·외박을 제한받게 된다.
병영 내에서 흔히 사용되던 '고문관 같은 놈' 등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언어와 '밥풀(위관 계급장)' 등 인격 모독성 발언과 비속어의 사용이 금지되며, 이를 어기면 '모독죄'를 강력하게 적용해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도록 규정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갑론을박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입안자들을 제외하고는 '현실성 결여', '새로울 것 없는 조치', '군 기강 와해 우려' 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존심이 강한 N세대 장병의 인격 존중과 건전한 언어문화가 정착돼야 잇따르는 병영 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이나, 병사의 계급은 상하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고 복무기간과 직무를 표시하는 기준이며 의무복무를 수행하는 병사 상호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동반자 관계라고 규정하는 육군 측의 시각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입안자의 말대로 병영문화를 일대 개선시키는 '실험'이 '혁명'으로 전화될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육군의 '사고 예방 종합대책'이 충분한 여론의 수렴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자료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언론 등을 통해 표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사안으로 미루어 볼 때, '사고 예방 종합대책'에는 실상 사병, 그들만의 시각과 목소리가 빠져 있다. 영내 부조리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인 불합리한 '군기 확립' - 예를 들면 '각 잡기', '내무군기' 등 - 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돼 있다. 이러한 것들이 사병들의 인권환경이 개선되려면, 사병출신 국방부장관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상 군의 자정능력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들이 사회 곳곳에서 개진되고 있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은 '군의문사는 없다'는 국방부의 공식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국가기관의 재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해 달라는 취지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권·시민단체들은 군사법제도 개혁, 군인 인권법 제정, 국방감독관 제도 도입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문제가 신뢰의 문제로 이어진다.

작년의 포천 농협 총기강도 사건, 최근 일어난 경남 하동 총기 유실사건, 일련의 인권침해사건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진취적으로 책임을 지고 재발방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보신주의·조직이기주의 논쟁의 늪에 빠지곤 하는 것이 오늘날 군의 현주소일 것이다. 바야흐로 군은 군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고 있는 제반의 문제들을 시민사회와 함께 겸허한 마음으로 풀어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노력하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본다.


2. 중·장기적 개혁과제
군대는 더 이상 국가 속의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규율과 군기의 유지, 지휘권의 확보를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던 시대와는 이제 결별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군 지휘부는 물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군대 내에서 누군가가 죽거나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러한 죽음이 군대 내 가혹행위, 폭행, 구타로 인해 일어난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욱 절망하게 된다. 우리의 군 조직이 여전히 사람을 때려서 가르친다는 낡은 전통에서 매어있는 한 민주주의사회에 걸 맞는 군은 존재할 수 없다.
"민주주의적 군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대도 민주주의 사회 안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군은 명령·복종을 그 기본적 속성으로 하므로 다수결원칙, 아래로부터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 조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군이 민주주의 사회의 제 원리를 부정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병사 한 사람, 초급장교 한 사람 한사람의 생명과 인격, 인권을 지켜줄 수 있을 때 군은 최고의 전투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군 지휘부는 물론 우리사회가 합의할 시점이 되었다. 그 합의를 출발점으로 하여 구체적인 제도개혁방안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제기해 본 개혁방안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가. 군인의 법적 지위 및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이제까지 군인은 법적으로 볼 때 무에 가까운 존재였다.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장병들은 물론 직업군인들도 이러한 처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는 법원에 의해서도 부정되고 있는 이른바 '특별권력관계론'에 근거하여 상급자(지휘관 등)는 명령권과 징계권을 마음껏 행사해왔다. 그 결과 군인의 지위,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도 컸다.
이제는 이들 폐해를 줄이면서, 동시에 전투력과 동원력을 갖춘 군대를 만들어 내야 한다. 현대전에 걸 맞는 용병술을 채택해야 한다. 지휘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권을 아울러 중요시하고, 이 양 요소를 적절히 비교 형량(衡量)하고 고려할 때 군대도 살고 군인도 살 수 있다. 어떠한 명령에도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군인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개별전사'들이 모여 동료애로 뭉친 군대를 만들어 낼 때 군대는 그 전투력·동원력을 최대화할 수 있다. 그러한 군인 그러한 군대를 만드는 데 법과 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국방부 측에서 계획하고 있듯이 국군기본법도 만들어야 하지만 그와 함께 군인법(군인기본법, 군인권법)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나. 권리가 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권리는 실제로 보장될 수 있다. 본문에서 우리는 징계항고권이 군인사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권리란 주장하는 자가 늘어날수록 보장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군인법과 같은 법률이 만들어져서 군인의 지위와 이익이 법적으로 보호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익들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장치들이 없다면 군인의 권리는 '종이 위의 권리'에 머무르고 만다. 따라서 군인의 권리실현을 위한 법제정비는 그 권리실현을 위한 실효적 제도가 동시에 마련될 때 비로소 완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제도의 하나로 본문에서는 '군 옴부즈만제도'와 하급자들의 의사를 상급자의 결정과정에 전달하는 통로로 채택되고 있는 '중개위원제도'를 소개하였다. 이들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다. 일반 장병들의 군 생활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위법행위, 일탈행위들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들을 보다 공식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른바 병 상호간 5대 금지사항은 국방부의 훈령 및 각 군 내부의 훈령 혹은 지침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이들 훈령 혹은 지침은 대외비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알기도 어렵거니와, 그 내용의 적정성, 타당성에 대해 외부적 심사(국회, 법원, 국가인권위원회 등)를 하기도 곤란하다.
앞으로는 이른바 5대 금지사항의 내용을 명시한 법률을 제정하여 금지행위의 규범력과 명확성을 높여야 한다. 다만 이른바 5대 금지사항 위반을 형벌로 처벌할 정도의 범법행위로 볼 것인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즉 5대 금지사항을 법률로 정하되, 그에 대한 처벌은 형벌이 아니라 질서벌로 다스리는 것이 옳다. 즉 군대의 특성과 지휘권확립이라는 목적을 감안하여 5대 금지사항 등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되, 그 제재는 적정하고, 필요한 범위로 한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행 군형법을 한편으로는 일반형법으로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질서위반법(가칭)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 군 사법제도 및 군 수사기구의 개선방안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지휘권과 인권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본문에서는 군 사법제도를 민간법원형, 절충형, 특별군사법원형 등 대략 3가지 모델로 분류하였다. 이들 모델들의 장단점을 우리 실정에 비추어 적절히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고려하여 준전시(準戰時)를 전제로 구성되어 있는 현행 군 사법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평시, 국내 군사범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민간수사기구 및 민간법원이 담당하는 체제로 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냉전이후 군민전환(軍民轉換)시스템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등을 고려할 때 큰 방향은 민간수사기구 및 민간법원에 대해 평시, 국내 군사범죄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야할 것으로 본다.

3. 당면한 실천과제들
이상 지적한 부분들이 중·장기적인 개혁과제들이라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개혁방안도 있다. '지휘권 강화'라는 논리에 휘둘려 2000년 6월에 사단급 부대에 보통군사법원을 재차 설치하게 한 명령은 하루빨리 해제하여야 한다. 나아가 평시 보통군사법원의 설치는 고등군사법원의 경우처럼 법률로 명시하되, 전시에 한해서 국방부장관에게 보통군사법원의 설치보류 및 설치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해야할 것으로 본다.
군 검찰, 군 수사기구(헌병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며 이들 기구에 대한 외부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개혁방안들도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군 사법제도 및 군 수사기구 개혁을 논의하는 방법, 군인인권보호제도를 마련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 국회 국방위원회 등이 협력하여 한국 주재 외국대사관 무관들에게 각국의 군 사법제도 중 군 수사기구의 실태에 대해 보고하게 하는 국제청문회를 실시하여 그 청문회를 통해 얻은 구체적인 자료를 제도개선방안연구에 활용한다.
나. 국회 국방위원회 등이 주도하여 한국 주재 외국대사관 무관들에게 각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군인인권보호제도(독일의 군 옴부즈만 등)를 구체적으로 보고하게 하는 국제청문회를 실시하여 그 청문회를 통해 얻은 구체적인 자료를 제도개선방안연구에 활용한다.
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의 법제 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군인인권보호방안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군인인권보호를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개정안을 제시하는 등 보완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라. 국방부는 이 장에서 제기한 쟁점들을 다루는 논의들에 대해 예전에 보였던 소극적인 태도 혹은 비밀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 논의들은 결국 21세기 한국 군대의 새로운 모델형성이라는 보다 큰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끝)
<참조자료>
1. 천주교인권위원회 접수 의문사 현황 (2003년 4월 24일 현재)

1) 접수 사건 유형별 통계(접수만 하고 진정서는 제출하지 않은 사건 통계)


2) 진정 사건 유형별 통계

기타(통계에 넣지 않은 진정 사건) : 공익근무요원 투신자살 1건, 동원예비군 변사 1건.

3) 진정 사건 사고 발생 시기별 통계


4) 진정 사건 최근 5년간 통계(발생년도 기준)


5) 진정 사건 자살처리 유형
- 총기자살 : 35건(44%)
- 의 사 : 19건(24%)
- 추 락 사 : 14건(17%)
- 기타(수류탄자폭, 동맥절단, 익사, 질식사, 가스중독) : 12건(15%)

2. 군인의전화 운영 접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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