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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

북한 여성의 사회적 활동

김귀옥 Ⅰ 경남대 북한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북한에서는 일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다 일한다는 게 상식이다. 우선 그들이 일하고 있는 분야와 분포를 표 1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표 1> 1993년 말 노동력 직업 분포와 여성 노동력 비율

출저 : 림금숙, 1999. 북한의 식량위기와 북한 여성의 경제활동." 『북한의 식량위기와 여성』
12월 10일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제7차 통일문제학술세미나 발표문.
원자료 : 북한이 UN에 보내는 자료.


북한에서 일하는 여성의 규모는 1993년말 현재 약 5백 4십 4만 여명이다. 전체 경제활동참여율(사실상 취업률)의 49%에 달하며, 여성 전체에서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은 약 70%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된 것은 북한의 '여성노동계급화정책'에 기인한다. 북한은 여성해방, 남녀평등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생산력 발전을 위한 경제건설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을 점차적으로 생산현장에 참여케 하는 여성 노동계급화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여성 노동계급화정책은 1958년 '인민경제 각 부문에 여성을 더욱 인입시킬 데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며 1960, 70년대의 경제계획에 따라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1970년대 3대 기술혁명의 추진은 여성 노동력의 수요를 절실하게 요구하였다. 1978년 4월에 발표된 '사회주의 로동법'은 여성 근로자들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보장하고 직장에 나가지 못하는 가정부인들과 가두여성들에게는 가내작업반과 가내협동조합을 통해 일할 수 있게 하였다.
전체 북한 여성들이 일하는 분야는 농업에서부터 공업, 건설·지질, 교육·문화보건 등 다양하다. 특히 남성과 비교하면 여성들은 교육, 상업보건부문과 상업 및 유통, 경공업분야에서 많이 종사하고 있다.
1998년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남한의 직종별 종사자는 전문기술·행정관리직, (준)전문가와 기술공(9.6%)/사무직(15.4%)/판매직·서비스직(37.4%)/농림수산업(17.2%)/단순생산직(20.4%)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전문기술·행정관리직, (준)전문가, 기술공 분야나 사무직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각 업종에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북한 직업 대분류의 성격상 교직이나 의료직, 공무직 등은 이러한 분야에 해당된다.
남북의 분류 기준이 달라 남북을 단순 비교하는데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대략적인 비교를 시도해 보자. 노동부의 1998년 자료와 이 표를 토대로 비교하면, 얼핏 보아 남한 여성 노동력에 비해 북한 여성은 농, 공업 분야에 압도적으로 많이 종사하고 있다. 반면 남한의 판매직·서비스직에 해당하는 상업 및 유통 분야 종사자는 낮다. 이는 북한 경제와 남한 경제의 차이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는 북한만을 놓고 보면 여성들의 상업 유통 부문 종사율이 높지만 자본주의 경제와 비교하면 이 부문의 비중이 낮은 사회주의 경제의 특성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남북 모두 여성의 교직 및 보건 부문 종사자의 비율이 높은 편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측의 이 부문 종사자들의 비율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남측은 교직이나 보건 부문이 기타 전문/반전문직, 관리/준관리, 기술/준기술직에 포함되어 9.6%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여성 임금에 대해 살펴보자. 직종별 임금 체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표 2> 1990년대 직종별 임금 (단위: 북한 원)


출전 : 통일부. 2000. 『북한이해』. 통일부: 411쪽 재구성.
* 농민 소득은 안동일의 북한방문기에 기초하여 한 농장원 당 연간 분배액은 3,400원을 12개월로 나눈 것.
(안동일. "북한의 협동농장 방문기." 『사회와 사상』. 1989. 10월호: 102쪽)

북에서는 46년에 제정된 이래로 사회주의로동법에 기초하여 '동일 노동·동일 임금'제에 따라 같은 부문, 같은 직급이면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표 1과 표 2를 교차시켜 보면, 북한 여성들이 대략 70%정도 일하는 경공업 노동자나 80%정도가 일하고 있는 인민학교 교원의 경우, 중공업부문이나 대학 교원의 임금보다 낮은 편이다. 다시 말해 남녀간에는 일정한 정도의 수평적 분업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떠받치고 있는 것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빼놓고 경제 활동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은 인민민주주의의 일환인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시기에 여성과 관련한 몇 가지 정책을 폈다. 1936년 5월 5일 '조국광복회 10대강령'과 1946년 '20개조 정강'에서 제시한 남녀평등사상에 기초하여, 1946년 3월 한 달만에 전격적으로 시행된 토지개혁에서 18∼50세 성인 여성에게 성인 남성과 동일한 점수를 부여하여 일정 면적의 토지를 나누어주었다. 또한 1946년 6월 24일 제정한 '북조선로동자 및 사무원에 대한 로동법령에 대한 결정서'의 여성 관련 조문 6개조 5개항, 1946년 7월 30일 북조선임시위원회 결정 제54호로 공포된 '북조선의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 9개조 등에서 근대적 의미의 경제적 남녀평등권, 예를 들면 '동일노동·동일임금'제도나 공, 사창제도를 일소하는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북조선 남녀평등권에 대한 시행세칙'(1946. 9. 14)에서 부부의 재산관계, 자유결혼, 이혼의 자유 등을 규정하여 가정 내 여성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당시 이혼의 자유의 의미는 흔히 소련의 볼셰비키혁명 초기 이혼의 자유 규정을 도입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이보다는 과거 축첩제 및 각종 봉건제적 인습으로 인해 가족관계에 묶여 있던 여성들을 해방시키려는 성격이 강했다. 또한 1948년 헌법에서도 4개조에 걸쳐 남녀평등권을 보장하였다. 1972년 '사회주의 헌법'과 1978년 '사회주의 노동법'에서는 앞선 시기의 남녀평등권을 탁아소나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같은 보다 구체화된 사회정책으로 시행하여 남녀평등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보다 실질적으로 남녀평등을 이룩하기 위해 '가사노동의 사회화'정책을 실시해왔다.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3대 기술혁명의 하나로서 '여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과제를 제기하였고, 이러한 과제는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62조로 명문화되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중 가장 중시했던 일은 탁아소의 건설이다. 1947년 탁아소 설립에 대한 규칙이 제정된 이래 탁아소 및 유치원은 꾸준히 증설되어 1976년경에는 6만여 개 시설에 350만여 명이 수용됨으로써 대상 어린이들을 대부분 포괄하게 되었다. 또한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식료공업을 발전시키고, 옷공장과 공동세탁소를 설치하고, 가정용 냉동고와 전기가마 등의 부엌세간을 공급하고, 농촌수도화를 건설해 나갔다. 또한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국공장, 밥공장, 공동식당 등을 설치·운영하여 여성 노동력을 확보하고 이중노동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조치들은 국가 예산에서 마련되므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 이 제도들이 얼마나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이다. 아직 구체적인 자료를 접할 수 없지만 1990년대 북한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장마당에서 봇짐장수로 나섰고 심지어 월경을 일삼았다고 한다. 즉 극한 상황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보장하던 장치들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짜피 모든 가사노동을 사회화시킨다는 생각은 가족이 존재하는 한 불가능할 지 모른다. 북한이 기존의 제도를 최대한 보장하더라도 이미 가사 노동의 남녀 협업 운동이 벌어져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싶다. 남북 맞벌이 부부들의 가사 노동 협업 경연대회를 열어보자고 제안해 봄직하지 않은가?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소식지, <평화를만드는여성들> 2001년 여름호 통권 제1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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