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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및 보도자료

5월 27일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는 흰색 옷과 색색의 조각보 스카프를 두른 무리들이 모였다. 이들은 ‘전쟁 없는 한반도’를 외치며 천천히 평화누리길(민통선 남측 철조망길)을 걸었다. 한쪽에서는 시민들이 함께하는 평화 플래시몹, 경기여성평화합창단 공연 등도 펼쳐졌다. 평화와 군축을 위해 세계 여성의 날 기념으로 열린 ‘2017 여성평화걷기’ 행사였다.

이 여성평화걷기 행사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세계 16개국 여성 평화운동가 30명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무장지대를 종단하는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2015 위민크로스 DMZ 한국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를 주관한 단체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평화여성회)다.

2015년 행사에서 북한 정부는 이를 승인, 국제대표단은 걸어서 도라산역 앞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남한 정부와 UN사의 책임 미루기로 결국 승용차를 타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걷기행사였지만, 꽁꽁 얼어 있던 남북 긴장 상황에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안김정애 공동대표(58)는 이렇게 시작된 이 행사에 3년째 매달리고 있다. 

“여성의 힘을 모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실천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1997년 3월 28일 고 이우정 선생을 비롯한 기독교 여성운동가들이 창립했다. 평화통일에 대한 연구·교육·사업·국내외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3년째 비무장지대 ‘국제여성평화걷기’  

안김정애 대표는 분단의 실제적 원인을 군대와 이로 인한 전쟁에서 찾고 있다. 이 바탕에는 가부장적 남성주의가 뿌리박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가 체험적으로 체득한 것이었다. 해병대 3기로 임관해 6·25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부친의 ‘끝없는 전쟁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육사 강의 체험과 국방군사연구소 근무 경험 등 때문이다. 그는 여성이지만 누구보다 ‘군’의 생리에 대해 잘 안다.

2015년 국제여성평화걷기 행사가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역시 우리 분단에 내재한 군대 때문이었다. 잠정적인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현 상황에서 유엔군사령부가 여전히 DMZ를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주한 미대사관, 심지어 유엔에까지 청원했지만 유엔사는 ‘절대 걸어 넘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면서 “우리나라의 분단 처지가 이렇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평화여성회가 요구하는 유엔 안전보장회의 1325호 결정 준수는 무엇인가.

“2000년 10월 유엔 안보리 결의사항이다. 원래 이 결의는 분쟁지역에서의 여성의 성폭력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안보·전쟁정책 결정라인에 여성을 많이 기용하라는 결의로 발전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안보정책 결정과정에 여성의 역할을 증대하겠다는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까지 만들어 2014년 5월 유엔에 보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문서로만 존재하고 국민도 모른다. 우리는 국방부 장관,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에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장도 여성이 해야 하는데…(하~하~) 이번 여성 외교부 장관 임명은 이런 맥락에서 성과다. 내각의 50%는 여성에게 할당해야 한다.” 

그는 세계적으로 여성 국방장관이 많다고 말한다. 프랑스도 여성 국방장관이고 가까운 일본도 그렇다. 그는 “안보라는 개념은 더 이상 군사적 개념에 머물러선 안된다”면서 “요즘에는 시민안보 개념이 나오고 더 발전해 여성안보 개념으로 발달하고 있다, 분단 극복을 위해선 여성주의 패러다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주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3단계다. 먼저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랬구나’라고 (일단) 공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럼 우리는 뭘 할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먼저 북한의 핵개발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야 한다. 그들이 ‘체제 생존이다’라고 말하면 ‘수십 배의 군비를 쓰는 남한과 북한이 군비경쟁이 되겠나, 그렇구나’라고 이해하고, 다음에 ‘그럼 우리는 뭘 할까’를 얘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김정은 참수작전 얘기부터 나온다. 이건 아니다.” 

“정경분리의 2개 트랙으로 가야 한다” 
그가 말하는 여성 패러다임의 통일관은 어찌 보면 자상한 어머니, 아니 보통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상식일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르포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히틀러에 대항해 소녀 100만명이 참전한 다큐멘터리 기록이다. 

굳이 과거 사례를 들추지 않고 당장 시리아 내전의 참혹상을 보면서도 ‘북핵 타격’을 외치는 전쟁주의자를 주변에서 자주 목격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에 북핵 타격 논의가 나오며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안된다’고 말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참여정부 대북정책을 이어 대북교류 중단조치인 5·24조치를 폐기하고, 6·15, 10·4 남북정상회담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대북제재를 따라만 가선 안되고 민간교류와 정부 측 대응을 분리하는 정경분리의 2개 트랙으로 가야 한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사일 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 23일 북한 개성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여성들의 모임’에서 안김정애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평화여성회 제공

2015년 12월 23일 북한 개성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여성들의 모임’에서 안김정애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평화여성회 제공

-북한과 접촉만 해도 2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던 통일부가 오늘(5월 22일) 남북교류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단과 통일이라는 민족적 문제를 이렇게 조변석개하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 올해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그 소식을 듣고 지금이라도 다시 북한으로 걸어 넘어갈까 생각해봤다.(하~하~) 이미 계획되고 공지까지 해 바꾸긴 어렵다. 그러나 내년은 단정 수립 70주년이다. 내년에는 국제 실행위(WCD)와 함께 개성까지 걷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평화여성회는 걷기행사에 앞선 25일 ‘2017 여성평화심포지엄’을 열었다. ‘전쟁 없는 한반도와 동북아를 위한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세부적으로 ▲분단과 전쟁의 한반도, 여성의 삶과 희망(김귀옥 한성대 교수) ▲평화와 종교 그리고 여성(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왜 평화담론의 확산이 시급한가(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 ▲마음의 38선 없애는 문화 소통의 지속가능한 교류방안(최인숙 문화세상이프토피아 대표)이 발제됐고, 그도 ‘DMZ 내 남북여성 평화생태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안김정애 대표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뒤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인하대에서 미국의 주한군사고문단 연구(1945~1950)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이 군사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이채롭다.(이런 평가조차 가부장적 시각일 수 있다) 육사에서 교환강의를 하고, 1995년부터 국방군사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국방군사연구소는 주로 전쟁사를 연구·편찬하는 국방부 직할기관이다. 그는 민간인 출신에 유일한 여성이었다.

기지촌 여성 국가배상 부분승소 이끌어 

그는 군에서 여성의 존재를 극명하게 목격했다. 여군 헌병이 짧은 치마를 입고 차를 나르는 것은 일상적 모습이었다. 그는 “내가 여군장교에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스스럼 없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도 “한 번은 연구소장이 옆에 앉아 술을 따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여군을 보내라’는 지시에 전투복을 입은 여군을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에는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군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0년 육군 소장 출신의 연구소장 공금횡령에 대해 민간연구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를 포함해 민간연구원 모두가 해직됐다. 그는 “행정심판 등 법적 대응을 다했지만 모두 패소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는데도 ‘민간인들이 너무 시끄럽다’는 한마디에 끝났다”고 말했다.

국방군사연구소에서 해직된 그는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설치된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다시 군과 맞닥뜨렸다. 조사2과장으로 참여한 그는 “기무사(보안사)를 통해 12·12사건과 5·18 관련자료들 대부분을 확보했다”면서 “특히 신군부가 거사 직후 적나라하게 자신들의 행위를 기록한 <5공전사>에는 분명히 나온다, 만약 전두환 측이 문제삼을 경우 문서 전체를 공개 요구하겠다.” 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 측의 집요한 반대를 무릅쓰고 실미도 사건 진상을 규명했다.

“유해 발굴 전 파란색 수의를 입은 남자 둘이 침대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꿈을 꿨다. 당시 시신을 지게로 날라 벽제 무연고자 묘역에 묻은 노인을 찾았다. 그 노인과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지적한 지점을 파자마자 유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해 대부분은 총격으로 참혹한 상태였고 특히 수류탄이 터져 서로 엉켜 있는 유해도 나왔다. 두개골이 온전한 유해는 딱 1구뿐이었다.”

유해는 DNA검사를 통해 가족에게 인계했다. 그동안 실미도 북파공작원 가족들은 사라진 아들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북한공작원이라는 오명까지 썼는데, 그 한을 푼 것이다. 실미도에서 훈련받은 북파공작원들은 모두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지만 이 사건으로 죽은 북파공작원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총기를 탈취하고 국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사살됐기 때문이다.

그는 또 2012년부터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 전쟁과 분단문제에 천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군대로 인한 성폭력 피해자로 이어졌다. 그는 “군대로 인한 성폭력 피해자는 전시 성폭력이 낳은 것으로 국가 공권력의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당시 ‘기지촌정화대책’이라는 정부 공식문서를 첨부해 2014년 6월 25일 국가배상을 신청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20일 일명 ‘몽키하우스’에 불법구금당한 여성 52명에게 500만원씩 지급하라는 부분승소 판결을 얻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이 끝나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계획”이라며 “이 재판은 미국 <뉴욕타임스>가 보도했고, 미 육군 <성조지>에서도 이 사건의 추이를 관심 있게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여성으로서 시작한 남성의 가부장적 문제는 군대문제로 이어지고, 나아가 전쟁과 분단문제까지 온 것이다. 그는 남성이 만든 이런 폭력성 고리를 끊는 일은 여성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분단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면서 “이제 분단의 칼춤을 걷어치워라,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271338011&code=940100#csidx734f69274f67b7da4c1ba2ec0358f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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