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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및 성명서 Speeches & Statements

핵 없는 세계와 동북아 여성의 삶

 

 

지영선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행동’ 공동대표

 

 

1. 들어가는 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가 잊고 있던 많은 사실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첫째, 동북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핵문제와 남북한 간의 불안정한 체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우리가 상시적으로 핵발전소라는 엄청난 위험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입니다. 또한 원전이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한반도는 21기에 달하는 한국내의 원전 뿐 아니라 중국 동해안에 들어서 있는 원전들과 일본 서해안의 원전들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둘째, 후쿠시마 핵사고는 안전하다고 선전해온 원전이 얼마나 쉽게 사고가 날 수 있는지, 그리고 사고가 나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초래되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면서 공기와 물과 땅,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치명적인 방사능으로 오염된다는 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입니까. 그 땅에서 사람이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도 축산물도 먹을 수 없다는 것, 오염된 바닷물이 전세계로 퍼져 먹이사슬을 따라 온갖 물고기의 몸에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다는 걸 상상해 보십시오.

 

 

셋째, 이런 무시무시한 사실들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쳐왔던,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은폐되어 왔던 핵발전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해 주었습니다. 값싸고, 안전하고,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청정에너지라고 홍보해왔던 핵발전이 사실은 현세대의 편의와 탐욕을 위해 다음 세대에게 끔찍한 위험과 부담을 떠넘기는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핵에너지는 핵사고의 처리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닐뿐더러, 설사 사고가 나지 않는다 해도 사용후 핵연료라는, 과학기술이 아직 처리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다음세대에 물려주는 위험하고 더러운 에너지입니다.

 

 

넷째, 핵발전은 미래세대에게 감당키 힘든 부담을 지울 뿐 아니라, 현세대에게도 지극히 비민주적인 산업입니다. 원전사고의 천문학적 처리비용은 발전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사실이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사용후 핵원료등 폐기물처리비용과 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폐기하는 비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대다수 국민의 고통과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모두 공개하면,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핵에 대한 정보와 의사결정은 정치인 관료 자본가 학자 언론인등 이해관계로 뭉친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들을 ‘원전 마피아’라고 부를까요. 한편 어느 나라나 핵발전소는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에 세워집니다. 지원금을 앞세워 위험 기피시설인 핵발전소를 벽지에 세우는 겁니다. 지역발전을 내세우곤 하지만 지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폭위험이 따르는 위험한 임시직 노동이 고작입니다. 그렇게 생산된 전기는 초고압선으로 송전되어 대도시와 기업에서 사용됩니다. 경제적 약자들의 희생 위에서 생산한 전기를 기득권층이 낭비하고 원전마피아들이 돈을 버는 것입니다.

 

 

다섯째, 핵발전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로 포장된 핵발전이 실은 핵무기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핵발전의 원리가 핵폭탄과 동일할 뿐 아니라, 핵발전소를 가동하므로서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북한과 이란의 우라늄농축을 문제 삼는 것도 그런 까닭이거니와, 일본과 한국도 핵발전소에 집착하는 근저에 핵무기 생산의 가능성을 열어 두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또한 핵발전소 자체가 평화의 위협을 키웁니다. 핵발전소에 대한 군사적 공격 또는 테러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핵과 관련한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깨닫게 해준 후쿠시마 사고 1주년에 즈음해 서울에서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해서 우리는 경악과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와 핵발전을 온존시킨 채 그것들을 테러리스트로부터 보호한다고 해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핵무기의 위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핵발전소의 존재 자체가 엄청난 위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핵무기 보유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의 핵무기 감축을 논의해야 합니다. 핵발전소의 안전규제 뿐 아니라 핵발전 자체를 줄여 나가는 논의를 해야 합니다. 더구나 후쿠시마 핵사고에서 교훈을 얻기는 커녕, 핵안전정상회의 개최를 핵발전소 수출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후쿠시마의 교훈은 동북아의 시민, 특히 일본과 한국의 깨어 있는 시민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탈핵운동에 나서게 했습니다. 일본 국민의 70% 이상이 원전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지난 1월 요코하마에서는 탈핵국제대회가 열려 30개국에서 온 시민들이 연대를 다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70여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연대해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탈핵’의 외침 가운데 가장 절실한 목소리는 여성들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방사능은 태아와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아이들의 어머니인 여성들이 가장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여성들은 위험을 호도하는 정부 대신, 직접 나서 방사능을 측정하는 등 핵의 위험으로부터 다음 세대를 보호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핵발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낭비적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데, 여성들은 스스로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면서 정책전환을 요구하는 활동도 활발하게 펴나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이 원전 폐기를 결정한 것과는 정반대로, 후쿠시마 사고의 직접 영향권인 일본 한국 중국 정부가 핵발전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악순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동북아에서의 핵의 위기를 평화와 생명의 고리로 바꾸는 일은 한중일 시민사회의 거역할 수 없는 임무로 떠올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원전지대인 한중일이 핵발전에서 탈피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 다른 후쿠시마 사고를 예방하고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끔찍한 핵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시민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특히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2. 동북아,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

 

1950년대 상업운전을 시작한 핵발전소는 현재 전 세계에서 441기가 가동 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새로운 원전건설이 중단되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에서는 핵발전소가 계속 늘어났습니다. 한국은 현재 가동중인 21기에 더해 7기를 건설중이며 6기의 추가 건설계획을 확정해 놓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가동중인 14기에 27기를 더 세울 계획입니다. 여기에 일본이 갖고 있는 54기의 핵발전소를 더하면, 동북아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핵발전소를 갖고 있는 원전의 지뢰밭이라 하겠습니다. 동북아의 시민들이 탈핵운동에 앞장 설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갖고 있는 나라는 104기를 갖고 있는 미국, 58기의 프랑스, 54기의 일본, 31기의 러시아, 그 다음으로 21기를 가동하고 있는 한국이 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 번의 커다란 원전 사고가 있었습니다.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원전사고,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리고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입니다. 세 번의 원전사고가 모두 이들 ‘원전 대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최고의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선진국에서 난 것입니다. 핵발전소가 많으면 사고가 날 위험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핵발전소의 수로는 세계 5위지만 단위 면적당 밀집도로는 세계 1위입니다. 현재 가동중인 고리(신고리 포함)와 월성(신월성 포함)의 10개 핵발전소로부터 20-30km 안에 는 부산과 울산 포항 등 인구가 밀집한 거대도시와 국가기간산업시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원전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만에 하나 이 지역에서 원전사고가 난다면 한국에겐 특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이 될 것입니다.

 

3. 핵사고의 끔찍한 실상

 

후쿠시마 핵사고는 원전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고 앞에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는데 얼마나 무력하고 기만적인지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20km는 강제피난지역, 30km 까지는 피난 권유지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방사능 물질이 미치는 거리는 270km, 지역적으로 도쿄도를 비롯해 후쿠시마 미야기 군마현 등 1도8현, 인구로는 4530만명, 일본 총인구의 1/3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고지역을 떠나 집단 피난생활을 하는 후쿠시마 사람들 외에도 많은 일본인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개별적으로 보다 안전한 간사이 지방 등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상사 연구자인 아부 사로(矢部史郞)씨는 이런 상황을 ‘일상’과 ‘생명’ 중 선택을 강요당하는 생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직장과 주택 등 재산과 사회적 관계를 지키기 위해 생명과 건강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사능 오염 지역에 살 것인가,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재산과 사회적 관계 등을 포기하고 떠날 것인가,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정부가 이런 피해에 얼마나 무책임하게 대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정부가 정확한 오염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나서 조사를 벌인 결과 피난지역 밖에서 허용치의 30~50배의 오염이 측정되었습니다. 대책요구가 거세지자 이들 지역 학교에 대한 정부의 방사능 측정 결과 75%가 기준치를 넘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부모들은 해당 학교의 어린이들만이라도 집단피난을 시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년간 1밀리시버트인 허용치를 20밀리시버트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4. 핵발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건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새삼 확인되었지만, 원전은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사용후 핵연료라는 매우 위험한 핵폐기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방사능을 내뿜는 이 핵폐기물이 위험이 없는 상태로 안정되기 까지는 수만에서 수십만년이 걸리는 데, 인류는 아직 이 사용후 핵연료라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영구처분장을 하나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일본의 반핵운동가 다카키 진자부로가 핵발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고 부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21기의 원전에서 나온 1만1370우라늄톤의 폐연료봉을 각 핵발전소의 수조 속에서 열을 식히며 임시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2016년이면 이 임시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의 폭발은 바로 이런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던 냉각수조의 물이 줄어들어 온도가 상승하면서 수소가 발생해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골치덩어리인 핵페기물을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 핵발전입니다. 그 자체가 거대한 고준위 핵폐기물인 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복잡한 문제입니다. 원자로 1기를 해체?폐기하는데 십년 이상의 시간과 약 7천억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 유럽감사원(European Court of Auditors)은 이 비용이 과소평가되었으며 실제로는 그 두 배가 필요하다는 특별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라늄의 채굴과 정련, 10년에 걸친 원전의 건설과정, 사고 위험, 그리고 핵폐기물의 처리와 폐로 비용을 생각하면 핵에너지는 위험할 뿐 아니라 깨끗하지도 싸지도 않은 에너지입니다.

 

 

5. 핵은 비민주적 에너지

 

 

이런 모든 문제점들을 사실대로 시민들에게 공개한다면, 원전은 애초에 세워지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체르노빌 사고 이후 서구에서는 새로운 원전이 거의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사고와 폐기물 처리비용 등을 계산하면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새로운 핵발전소를 지은 것은 한국 중국 일본 등 국가 차원에서 핵발전을 추진한 나라들이었습니다. 자본가 정치가 관료 학자 언론인 등 소수의 원전 마피아가 사실을 은폐한 홍보로 국민을 세뇌시키면서 결정권을 행사해온 것입니다. 핵은 본질적으로 비민주적인 에너지입니다. 핵전문가 뿐 아닌 사회 각분야 인사들로 구성된 ‘윤리위원회’에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수 십시간에 걸친 공개 토론을 거쳐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경우나 국민투표로 원전폐쇄를 결정한 이탈리아의 민주성이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원전폐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기 위한 1천만인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원금을 미끼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벽지에 원전을 세우고, 경제적 약자인 지역주민을 일상적인 피폭위험과 직접적인 피폭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위험한 작업의 하청노동자로 내모는 것도 핵발전의 또 다른 비민주적 측면입니다.

 

 

6. 핵발전과 핵폭탄은 동전의 양면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창하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핵’의 악마적 이미지는 ‘원자력’으로 이름을 바꿔 평화적 이미지로 탈바꿈합니다. 그러나 그 둘은 별개가 아닙니다. 한 동전의 양면입니다.

 

 

핵은 물질의 기초단위인 원자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그 핵이 ‘분열’한다는 것은 물질세계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으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핵을 억지로 분열시킬 때 커다란 에너지가 나오는데 이 핵분열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므로서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핵폭탄에서 볼 수 있는 그 엄청난 폭발력을 제어봉과 냉각장치로 조정하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핵발전입니다. 자칫 제어와 냉각에 실패하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원자로 자체가 핵폭탄이 됩니다.

 

 

본래 원자로는 우라늄 238을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239로 변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습니다. 그렇게 생성된 플루토늄을 분리해 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 ‘재처리’ 작업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에 지어진 원자로와 재처리공장에서 분리된 플루토늄으로 만든 핵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습니다. 실제로 ‘평화적 이용’으로 포장된 원자로에서도 핵폭탄은 만들어졌습니다. 인도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원자로를 가동해 거기서 생긴 플루토늄을 재처리해서 1974년 원자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54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자체적으로 재처리시설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원자로에서 생성된 플루토늄을 영국과 프랑스의 재처리공장에 보내 모두 45톤의 플루토늄을 추출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하면서 더 많은 플루토늄을 만들어낸다는 고속증식로 개발에 1조엔 이상의 엄청난 돈을 투입해 왔습니다. 현재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이렇게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부으며 원전 관련 산업에 집착하는 것은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원자력클러스터’사업 등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개발 등 일본의 길을 따르려 하고 있는 한국은 그런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7. ‘핵안보’가 아니라 핵없는 세상을

 

 

이달(2012년3월) 26-27일 서울에서 세계 50여개국의 정상과 유엔 등 4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가운데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립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1주년을 맞아 세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열리는 이 회의에 대해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 회의는 2009년4월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로 동유럽을 찾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에 따라 2010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회의입니다.

 

 

이번 회의의 핵심의제는 ①핵테러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 ②핵물질의 불법거래 방지 ③핵물질과 발전소 등 관련시설 방호입니다. 해결 불가능의 핵사고를 겪은 동북아에서 핵문제를 다루는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원전을 줄여갈 것인가를 의제로 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원전의 안전기준이나 방호문제 정도를 다루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위에서 보았듯 원전과 핵무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핵무기와 핵물질 자체를 줄이지 않는 한 핵테러와 핵확산은 계속될 것입니다. 미국을 필두로 한 핵무기보유국들이 자신들의 핵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핵 확산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북한에 대한 핵공격 옵션과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 정책을 유지하면서 북한에 핵포기를 요구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나 평화체제 구축은 요원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과 북미관계의 정상화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 국가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협상과 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를 후쿠시마 사고로 꺼져가는 이른바 ‘원전 르네상스’의 불씨를 되살릴 기회로 활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원전강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정상회의와 함께 세계의 원전업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원자력 인더스트리서밋이 바로 그것을 위한 자리입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8. 핵없는 세계와 동북아 여성들의 삶

 

 

일본과 한국의 정부가 원자력발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양국의 시민들은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14-1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는 ‘탈핵세계회의 2012 요코하마’가 열려 30여개국에서 1만1500여명이 참가해 다양한 행사를 벌였습니다. 전문가회의, 국회의원포럼, 시민실천가 워크숍, 부모모임과 어린이모임, 영화 상영, 공연, 전시 등이 이어졌습니다. 폐회식에서는 ①후쿠시마 피해자의 권리 ②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책임 ③주민의 피폭 최소화 ④세계적인 탈원전 공정표 만들기 ⑤일본의 정지된 원전 재가동 금지 ⑥개발도상국에 원전 수출금지 등을 규정한 ‘원전 없는 세상을 위한 요코하마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1년 동안 탈핵교수모임, 반핵의사회, 탈핵변호사모임 등 전문가 단체들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7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해 원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전기의 낭비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해 2014년까지 원전 1기를 줄이겠다는 발표를 한 서울시장을 비롯해 45개 지자체장이 ‘탈핵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민과 단체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30년 수명을 다한 후에도 수명을 연장해 가동중인 고리1호기와 금년 중 수명연장을 앞두고 있는 월성1호기 등 노후 원전 폐기입니다. 둘째는 현재 건설중인 7기와 계획 중인 6기에 더해 또 영덕과 삼척을 신규원전 부지로 선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점차 원전을 줄이고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늘려가는 ‘탈원전 시나리오’를 제시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이런 탈핵활동들의 밑바탕에 생명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활동이 있습니다. 일본의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전국네트워크’는 그러한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만든 수많은 모임의 연대기구입니다. ‘모자지원 네트워크’는 모유에 대한 방사능조사 등 방사능피해로부터 임신부와 아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그 모임의 대표인 우노 사에코 씨는 한국시민들과의 만남에서 “어느 정부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사회가 국경을 넘어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갑시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도 언론도 핵에 대해 계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어머니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동향과 정보를 수집해 공유하고, 직접 방사능 측정기를 사서 식품과 생활환경의 방사능을 조사하고 정부에 해결책을 요구하는 활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월계동에서 방사능이 섞인 아스팔트를 발견해 철거하게 한 것은 바로 이들 여성들이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핵 위험지대인 동북아에서 핵발전소를 줄여 궁극적으로 핵 없는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 중국 등 3국 시민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 나라의 원전정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국을 묶고 있는 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이러한 활동에서 여성들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핵 없는 세계를 만드는 길에 동북아 여성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따뜻한 연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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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개회사 (The Opening Remarks) [428] 평화여성회 2012.03.22 24716
63 제안서: 2012 동북아여성평화회의 평화여성회 2012.03.21 5564
62 Recommendations: To the Six-Party Talks and countries to attend the 2012 Seoul Nuclear Security Summit. [175] 평화여성회 2012.03.21 19688
61 Speech of Ms. Mavic Cabrera-Balleza on February 24th, 2011 [82] 평화여성회 2011.04.01 14448
60 Speech of Ms. Susan Braden on February 24, 2011 평화여성회 2011.04.01 7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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