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약동하는 이 봄, “여성의 힘으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고 나아가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를 만들어가자”라는 기치 아래 하나로 모인 여성들이 오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땅의 역사는 우리 여성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역사였다. 외세의 잦은 침략과 일제의 식민지배, 남북분단,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한국전쟁, 외국군대의 주둔, 군부독재로 이어진 불행한 역사는 이 나라에 환향녀, 군 위안부, 양공주, 관광기생이라는 비극적인 여성희생자들을 낳았다. 전쟁으로 자식을 잃거나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 전쟁과부,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여성들 또한 이 땅의 왜곡된 역사가 빚어낸 희생자들이다.
50여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남북분단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여성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마땅이 복지의 수혜를 누려야 할 여성노동자와 농민, 빈민여성들은 막대한 국방비 지출로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단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단이 낳은 극단의 냉전논리, 동포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상존하는 전쟁 위협은 평화와 생명을 옹호하고 지향하는 여성들의 삶과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분단현실은 북쪽의 형제자매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데도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비인도적 상황마저 연출하고 있다. 서구 여성들이 북한의 임산모와 수유모,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는 등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데도 정작 동포인 우리는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생명을 최우선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자 아픔이다.
이런 불행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가족과 동포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고 인도주의적 실천을 방해하는 분단은 명백한 불의며 분단이야말로 개인과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가장 근원적 요소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여성들은 반평화적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원폭피해자 돕기와 반전반핵운동, 군사비삭감운동, 전쟁반대운동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치 우리는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개최하며 남북여성교류라는 역사적 계기를 열기도 했다. 4차례의 교류를 통해 우리 남북의 여성들은 관점과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기본적인 신뢰와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깊은 열망과 의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여성들은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통일운동, 평화운동이야말로 오늘 우리 민족과 여성들에게 지워진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제라는 사실을 천명하며, 이 땅에 평화정신이 꽃을 피우고 군사안보 대신 지속적인 사회발전과 인간중심의 안보가 보장되는 통일복지사회가 이뤄지는 그날을 위해, 평화의 대행진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평화로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분단의 깊은 골을 메우고 남북간의 길을 내는 분쟁해결의 적극적인 주체로서, 갈라진 민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해가는 문화의 통합자로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민족의 화해자로서 힘차게 일해갈 것이다.
우리는 평화로운 민족공동체와 정의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평화정신을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확산시키고 사회 전반의 평화행위능력을 신장시키며 생명중심의 평화문화를 일구어 나갈 것이다.
또한 자주적 민족통일과 평화실현의 조건과 방법을 연구하여 평화정책을 제시하고 민족의 하나됨과 평화를 촉직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행동을 펴나갈 것이다.
또한 무력분쟁과 갈등해결에 여성의 평등한 참여를 촉진하고 평화를 위한 여성지도력을 증진시켜 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여성평화운동단체로서 국제 여성조직과 연대하고 평화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며 지속적으로 평화조직만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21세기에는 통일 한반도 안에서, 그리고 아시아와 전세계 안에서 긴장과 대결, 증오와 배척의 시대가 물러가고 정의와 사랑, 협동과 포용, 존중과 배려, 평화와 희망이 열매 맺도록 우리 여성들의 지혜와 평화적 감수성과 힘을 하나로 결집해 나갈 것이다.
1997.3.28.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창립총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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