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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여성이야기

20020729 북한여성이해코드

2009.09.03 14:13

평화여성회 조회 수:11506

<북한 여성,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북한 여성을 이해하는 코드 만들기


김귀옥 (경남대 북한전문대학원 객원교수)
freeox8@orgio.net



1. 내 안의 북한 사람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이나 사회, 문화, 사실에 대해서 접하게 되면 그저 '글세',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북한에 관한 한 많은 사람들은 한 마디 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한 마디씩 그럴듯하게 던지기 경향이다. 1999년 KBS가 1,500명에 대해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 북한이나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을 묻는 16가지 항목에 대한 결과, '모른다'는 응답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2000년 6월 13∼15일간의 남북정상회담 동안, 남한에는 소위 '김정일 신드롬'이 몰아닥쳤다. 김 국방위원장은 "구라파 사람들이 나를 은둔 생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면서 북한에 대한 서방 언론들의 왜곡된 이미지를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그때 남한의 청소년들에게 김 위원장은 마치 새로운 스타처럼 회자되곤 했다.
그간 북한 관련한 많은 책, 논문, 기사, 영상물, 소문들은 우리 사회에 넘쳐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내용은 북한 사회나 사람을 '비정상'적인 양 말해왔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로 양분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고 김일성 주석이나 김 국방위원장에 대한 절대자로서의 이미지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일그러진 초상화'. 특히 후자에 관련해 몇 가지 이미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즉 90년 이전까지는 '빨갱이' 이미지와 동물농장의 매맞으며 일하는 '소, 양' 이미지, 90년대의 '꽃제비' 이미지를 꼽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격'이 다른 비인간으로서 남한 사람들의 이미지에 자리매김되어 왔다. 또한 90년대 한국 사회에 북한 사람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시킨 사람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이다. 그들이 출연한 텔레비전 광고에서 그들은 대개 '촌스럽고', '무식하며', '바보스럽게' 태어났다.
'꽃제비'는 흡수통일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었다. 많은 남한 국민들이나 대부분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통일하면 '흡수통일비용'을 생각하고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니, 자연스레 통일을 기피하거나 무관심하게 될 수밖에 없어진다.
한편 기존의 '빨갱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 이미지에 고착되어 있는 사람이 과연 북한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 90년대 중반 김주석이 서거하고 북한이 몇 년 연거푸 극심한 홍수와 식량 위기를 겪은 데다가 설상가상 '붕괴론'에 기반을 둔 미국의 대북봉쇄정책이 극성을 부렸을 무렵, 남한에는 식량 지원을 둘러싸고 국론이 갈라지는 진통을 겪었다. 인도주의 정신으로 무조건 도와주자는 목소리와 식량을 지원해봤자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주어서는 안된다는 불신론이 극단을 달렸다. 필경은 북한 사람이 웃어도, 울어도 '거짓'일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미지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산물이지만, 거꾸로 이것은 남북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바로 내 안의 북한 이미지가 현실의 북한 사람을 그 자체로서 이해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북한 사람을 현실을 사람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2. 북한 여성을 이해하는 코드 만들기

지금 한창 부시 행정부가 패권 재구축을 위한 헤게모니 싸움을 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협의 주자들은 새봄을 맞아 활발하게 물밑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당국은 중국이나 소련 정부와 잇달아 협상을 열어, 경의선에 뒤이어 경원선을 잇고자 했던 숙원이 현실화되기에 멀지 않은 것 같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유럽 여행을 할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2000년까지 간헐적으로 열렸던 남북의 이벤트성 행사는 더 이상 남북 교류와 통일의 길을 앞당기기에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는 보다 다양한 층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고 텔레비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많이 만나서 얘기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이미 가득 차 있었고 심지어 경제력을 과신하여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 마저 보이고 있다. 이래가지고 어찌 북한 주민들과 함께 교류를 하고 통일을 논할 수 있겠는가? 또한 여성계에서는 북한 여성들과 교류의 문을 열기 위해 여러 가지의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여성들에게 보인다면 북한 여성과의 교류가 어찌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북한 여성에 대한 이해는 북한 사회나 북한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 사회를 우리와는 다르지만 하나의 사회로 인정하며 이해하려 할 때 북한 여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라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도 모순 그 자체이지만 적어도 일본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하나의 사회라는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북한 여성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들도 우리와 같은 욕구와 모순을 가진 인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그들의 욕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이기주의나 경쟁주의에 길들여진 우리의 그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행복해지고 싶고, 잘살고 싶으며, 사랑하고 받고 싶은 사람들임을 인정할 때 그들을 사람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집단주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한 사람들이 그들의 집단 체조나 카드섹션을 볼 때, 평양교예단의 교예, 청소년들의 공연을 볼 때, 얼마나 호되게 훈련을 받았으면 저럴 수 있을까하며 감탄과 탄식을 연발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사실 후문에 따르면 200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립 55주년 기념 행사를 위해 수많은 평양시민이 한달 넘게 동원되어 준비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연습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들의 얼굴에는 '억지로'한다는 표정이나 종교적 열정을 갖고 하는 표정은 없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러한 행위 자체가 그들의 삶의 연장으로 체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집단주의는 그저 강제적 이데올로기의 주입의 결과가 아니라 생산 양식에서부터 생활방식에 이르는 토대에서 빚어진 자연스런 삶의 결과이다. 그것은 탈북한 주민들이 남한사회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그러한 정치적·의식적 태도는 삶의 토대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조건이 바뀌면 그것도 따라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한의 개인주의가 태생적 요인의 산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에 대해 변화의 관점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 사람, 여성도 고정된 선입견으로 보거나 우리 중심으로 보는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적 태도를 그치려고 할 때 그들도 나와는 다르지만 엄연한 하나의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소식지, [평화를 만드는 여성들] 2001년 봄호 통권 제1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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