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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소식



2017년에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가 20살이 됩니다. 수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20주년을 맞아 평화를만드는여성회에서는 원로들을 만나 함께 역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로, 김윤옥 선생님을 만나뵈었습니다. 김윤옥 선생님은 이현숙 선생님, 정현백 선생님과 함께 평화를만드는여성회부대표를 역임하셨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1991-1993년 진행되었던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남측실행위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남북여성교류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미래를 전망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불안한 정세가 바뀌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남한사회에서 여성평화운동단체를 만들어서 남한사회의 비군사화문제나 평화운동전개에 힘을 쓰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남측실행위원회 이어 받아 1997328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가 창립된 것입니다.

김윤옥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북여성교류의 역사, 나아가 평화운동을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여성들의 힘으로 펼쳐 나가야 할지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인터뷰의 내용을 일부 나누고자 합니다.

 

 

북에는 언제 무슨 일로 가셨었나요?

(1991년부터 시작된 토론회는 동경, 서울을 거쳐 199293차 평양토론회 개최) 서울에서 남북여성이 함께 위안부문제로 토론회를 열고, 그 다음 토론회를 평양에서 하기로 했어요. 통일의 집에서 차 한잔 마시고 쉬었다가 1시간 가니까 개성이야. 2시간 걸렸어

 

판문점에서 평양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김일성 80세 기념 고속도로야. 판문점 넘어서 간 게 민간단체 중 처음이야. 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니까 양쪽에서 꽃다발 들고 서서 통일을 위해 오신 남한 여성 환영” “남한에서 통일을 위해 온 여성 대표들이라고 대 환영인거야.

 

평양 토론회는 궁전 같은 건물에서 했어. 150명이 의자에 앉았는데,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초등학교 친구를 본 것 같아. 촌 티나는 한복을 입고 얼굴 화장도 별로 안하고 성형 안했고(웃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당당해. 난 북한 사람들 보고 느낀 게 당당함을 느꼈어. 가운데 앉아서 토론회하고, 발표도 하고 그랬지.

 

근데 둘러보니까 여자들이 정말 많이 온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어.

왜 이렇게 여자가 많아요?”

그랬더니 해외 동포가 많이 온 거더라구요. 우리는 서울에서 할 때 북한, 일본, 우리(남한)만 했거든. 일본에서는 조총련도 오고, 베를린에서도 우리 동포가 온거야. 독일 동포도 오고, 미국 동포도 오고. 세계적으로 이 평양 토론회에 동포를 불러모은 거 더라구요.

 


그러면 그 이후에도, 정대협 활동 하시면서 북측과 같이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고 했던 건가요?

그 이후 북측하고 위안부 문제 갖고 계속 활동 했어요. 평양 토론회의 줄기가 내려온거고, 서울 토론회 할 때 김정수씨 양미강씨랑 함께 일을 했어. 그때부터 김정수씨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고.

 

평화를만드는여성회는 처음엔 부대표를 하다가 초대 대표이신 이우정선생님이 그만두시면서 정현백, 이현숙, 내가 공동대표가 됐어요.

 


평화를만드는여성회에서 이사장을 하신 건 언제쯤인가요?

이사장은 정대협을 그만두고 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연구소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이거는 내가 강해요. 없애버리면 안돼요. 연구원은 계속 있어야 해. 왜냐하면 평화운동은 이론과 실천이거든. 이론이 있어야해. 평화운동도 여러 갈래거든. 어느 갈래로 설거냐, 계속 공부해야해요. 나는 무기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웃음)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워낙 뭐가 많았어서 기억이 잘 안나. (웃음) 공동대표 때, 사람들이 목에 라디오를 하나씩 메고, 길을 메웠어. 서대문 하고 독립문 있는 쪽에서 방송을 들으면서 했던 생각이 나.

 

옛날에 보면은, 524일이 군축의 날이에요. 명동 성당 앞에서 군축의 날이라고 행동을 했었어요.

이 군축의 날에 행동하는 것은 온 세계 여성이 하잖아요. 모두가 함께 해야돼요. 이 활동을 한국에서 평화여성회가 시작을 한 거야. 우리의 운동이라고. 군축이라는 인식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요. 애가 있는 사람은 전쟁 날까봐 전전긍긍이야. 그렇지 않아도 전쟁은 무서운 거지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해요.

 

내가 히로시마에서 가서 보니까 원폭 피해가 정말 사람이 비참해지더라고. 사람이 피부가 다 벗겨지고...핵 전쟁은 안돼.

그래서 회원들을 위한 평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 세계 평화운동의 역사나 지금 현실을 볼 수 있는 것 같은 내용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 지금은 미국이 체스판처럼 펼쳐놓고 체스를 두고 있는 것이잖아.

 

다른 나라 여성들의 반전운동을 보면 여성들이 애기 기저귀를 독일 기지에 꽂았던 적이 있어. 무기를 망치를 가지고 막 때려 부셔. 미국이 퍼싱투라는 걸 독일에 갖다 놓으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거리로 나와서 고속도로를 메웠어. 러시아 대사관하고 미국 대사관을 인간 띠로 엮어서 묶기도 하고 정말 굉장한 평화운동을 해.

 

■ "평화를만드는여성회"에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평화여성회에 바라는거 없어요. 나는 느끼는게, 세대 차를 느껴. 문화가 달라.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한거고, 젊은 사람 젊은 사람 식대로 해야지. 뭘 알아야 바라지.(웃음)

 

그저 정말 부탁한다면, 인내하면서 끝까지. 평화운동은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끝까지 꼭 해야 하는 운동인 것 같아요. 평화운동은 시민운동 속에 꼭 있어야 해요. 여성 평화운동이기 때문에 래디컬 해야 할 것 같아요. 래디컬이 얼마나 매력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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