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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및 성명서 Speeches & Statements

미국 여성이 바라보는 동북아 평화 구축

 

Karin LEE

전미북한위원회 사무국장

 

 

제가 ‘동북아시아 여성 평화 회의-여성 6자 회의’에 참가할 수 있게 초대해주신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측에 감사 드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경란 소장님께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올 채비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소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약 10년 전이었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제가 한국에서 평화 구축에 힘쓰시는 분들의 시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늘 소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것입니다. 소장님의 업적과 헌신, 그리고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노고에 무한한 존경을 보냅니다.

 

저는 평화 구축에 대한 미국 여성의 관점을 연구하면서 "여성의 관점"을 정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고는 한번 더 놀랐습니다. 미국 외교 정책의 지난 10년을 살펴 보면 중요하지만 너무나 다른 역할을 한 여성이 두 명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지난 2000년 10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입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외교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방북에 관해 김 위원장과 논의하며, 메모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미사일 프로그램 기술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막힘 없이 답할 수 있었던 김 위원장의 우수한 머리와 유능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이 미국과 역내에 위협적인 요소라고 느꼈고 이러한 의견을 명확히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으로 북한 경제에서 미사일 판매가 차지하는 역할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미사일 확산 문제에 대비하였고, 조(북)·미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평화·안보 문제에 비군사적이고 외교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약 2년 후,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미 정부가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이라크전의 정당성 성립을 위해 선동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상이한 접근법을 택했습니다. 2002년 9월 8일, 라이스 장관은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손에 넣을지가 불확실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의 총구에서 초연(硝煙)이 나는 것이 확실한데 이 초연이 원자 구름으로 커지기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핵폭발에 따르는 버섯 구름 이미지는 거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이라크 핵 프로그램이 가하는 위협을 극적으로 상징하고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1년이 지나 이라크에 그 어떤 핵무기도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라이스 보좌관의 말은 부시 정권이 미국민의 이라크전 지지를 유도해내기 위해 사용했던 두려움 조장과 과장 전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성 지도자라고 해서 그들이 세우는 정책을 예측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여성들은 체험한 바나 견해를 실제에 적용하기는 하지만 성별에 따라 행동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당, 국제·지역 역학 관계, 기존 외교 협정 책무 내용 등에 의한 제한 및 요구 사항 역시 여성 자신의 신념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어떤 정부에서 재직하느냐 혹은 어떤 역사적 중대성을 지닌 기간에 재직하느냐에 따라 정부 내 여성 지도자들은 권력을 외교적 해법 증진에 사용하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이용하기도 합니다. 현재 미 국무부 장관으로 재임 중인 라이스 장관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라이스 장관은 부시 대통령 집권 1기 때와는 현저히 다른 새 대북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입니다.

 

집권 여성들은 자신의 정부를 대표하지만 각국 정부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우리가 설정한 이상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임무는 자국민의 인간 안보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매우 복잡하게 국민의 이익을 해석합니다. 때때로 정부는 우리 스스로가 내리는 우리 이익의 정의와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은 "미국 국익"이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해석이 되었는지를 두고 여전히 분노하고 있으며 "미국 국익"이라는 명분하에 사라져 간 생명에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구축하는 사람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이해를 같이하고 각국 정부가 "국익"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동북아 평화 구축에 민중과 시민 사회 차원에서 여성들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미국의 평화 단체인 ‘진정한 안보를 위해 활동하는 여성들(WGS)’이 내린 우리 공동 이익에 대한 멋진 정의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세상은 정의, 국경을 초월한 타인에 대한 존중, 사람 특히 여성과 아동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는 경제 계획이 기반이 되어 진정한 안보가 확립되는 곳입니다. 군사주의, 폭력, 각종 성착취가 없는 사회 창조와 공동체의 안전, 복지, 장기적 지속성을 지향하며 이를 향해 나아갑니다.

 

WGS는 군사주의가 미군 주둔국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해소하고자 두레방,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SAFE와 같은 한국 단체 및 아시아 국가에 소재한 단체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 관해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WGS는 미국 여성 단체로는 보기 드물게 아시아 외교 정책과 평화 분야에 집중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대부분의 여성 단체는 가정 폭력, 성폭력, 낙태, 비차별적 임금(임금 지불에서의 남녀 평등) 등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국내 사안에 주로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성 단체가 평화와 외교 정책에 관심을 가진다 해도 WGS를 제외하고는 아시아 문제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거나 자금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코드 핑크(Code Pink)’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하거나 고결하거나 선천적으로 보살피는 성향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남성들이 전쟁을 일으키는데 바쁘니 우리 여성이 평화에 앞장 서야 한다"라는 믿음 하에 여성들이 주도하여 발족한 단체입니다. 평화와 외교 정책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고 있는 여성 단체 코드 핑크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기념 주간’을 준수하기는 했으나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 문제보다는 주로 이라크전과 발발 가능성이 있는 이란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자유를 위한 여성 국제 연맹(The 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에서는 아시아에 다소 관심을 기울이기는 하나 먼저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사후 대응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단체에는 아시아 지역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으며 북핵 문제와 같은 위기 순간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대응하는 수준에 머무릅니다.

 

여성 지도자들이 반드시 동북아 평화를 이룩하리라는 믿음이 없고 미국 내 여성 평화 단체가 동북아 평화 구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에 제가 절망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3의 도구, 바로 인적 교류는 평화 구축에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이며 우리에게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이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와 일하던 1990년대, 저와 관계자 여러분들은 의무 군복무 기간 동안 다치거나 사망한 아들을 가진 대만과 한국의 어머니들이 가슴으로, 마음으로 만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누며 무관심한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을 보면서 저는 이것이 여성들에게는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유대감이 역내 평화 구축 과정에서 주안점이 될 것을 제안 드립니다. 교류는 새로운 이해 증진과, 외교 정책 결정에 주를 차지하는 "국익"을 대신하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단위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내와 미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결속하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위안부 운동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국경 초월과, 더욱 광범위한 국제 인권 기틀 마련을 위해 민족주의적 논쟁은 거부한다는 결단력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2000년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주도한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일본 네트워크 (the Violence Against Women in War-Network), 즉 바우넷 저팬 창립자 고 마쯔이 야요리 님을 잠시 추도하고자 합니다. 마쯔이 야요리 님은 일본 정부의 범죄와 준범죄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부단히 노력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분께서 국경을 뛰어넘는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훌륭한 성과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마쯔이 야요리 님은 미 하원 일본군 강제 위안부 규탄 결의안이 통과하여 121법안이 된 것을 보지 못한 채2003년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결의안에서 미 하원은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에게 성 노예 생활을 강요한 점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 사과하고 명백하게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시다시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합니다. 역내 협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태평양 전쟁과 세계2차 대전 기간에 발생한 내용을 역사적으로 통합 기술할 수 있게 공조 체계를 갖춘 것과 유사합니다. 가까운 예를 찾아 보자면 올림픽 성화가 서울을 통과할 때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한국인 시위단과 중국 학생 간 충돌이 있었고, 중국 학생들이 선동한 이 폭력 사태로 전 세계는 놀랐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큰 티베트 문제는 이 지역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독도 다케시마 영유권 분쟁으로 일본은 역사 교과서를 재편찬하고 이는 다시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꿩의 머리를 자르는 사태로 이어져 이로 인해 역내의 또 다른 논쟁거리에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사안에 대한 의견차는 매우 큽니다. 미국인인 제가 이러한 사안이 지니는 국가적·정서적 중요성을 알 수는 없지만 논란의 소지가 큰 사안을 이렇게 제기하는 이유는 분열을 조장하는 견해차가 어디에서 연유한지를 이해하는데 있어 평화 단체와 시민 단체가 기여한다면 우리 모두가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제 믿음을 여러분께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시민 단체가 힘을 모아 역내 여성들과 함께 사람 중심의 조사를 실시하고 역내 불화를 일으키는 사안을 들여다 봄이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첫 단계로 역내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단합하여 각기 다른 관점의 바탕에 대해 이야기하면 매우 좋을 것입니다. 그 핵심은 공동 협정 체결이 아닌, 각 국가가 서로의 신념을 상호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문서화하는 데 있습니다.

 

현단계에서 미국인이 관여한다 해도 그다지 소용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류 프로그램에는 미국의 참여가 유용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의 교류 프로그램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 대학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전문가 간의 교류는 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공동의 임무를 가진 전문가들이 만나면 그 임무를 기점으로 하여 평화와 이해가 형성됩니다. 특별한 의지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싹이 트는 것입니다. 여성 농부, 여성 사업가, 여성 은행가, 여의사, 여성 사학자, 여성 컴퓨터 엔지니어 등 직업 간 교차 훈련을 받는 동안 여성들은 국익을 초월하는 폭넓은 이해를 하게 됩니다.

 

우리도 북한을 잘 모르고 북한 역시 우리 국가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북한 전문가들과의 교류는 특히 더 중요합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나 기업인 교류 프로그램, 훈련 교류 프로그램 등 북한과 역내 국가 사이에는 교류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북한과의 전문가 교류는 미국이 점차 더 활발히 활동하는 분야로, 미국은 조(북)·미 관계가 나날이 개선됨에 따라 북한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과 긴밀하게 일하고 있는 제 동료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교류의 필요성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다. 북한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거나 왜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를 이해하라고 바랄 수는 없다."

 

남한이 북한과의 교류를 언제나 주최할 수는 없지만 비무장 지대를 사이에 둔 양 측의 사람들은 서로 만나는 데 종종 큰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제 3국에서 전문가 교류가 진행되면 남북한 측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여성들은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북한의 시각을 이해하려면 미국인은 코드 핑크의 미디 벤자민 공동 설립자가 공동 창설한 ‘글로벌 익스체인지(Global Exchange)’의 북한 "현실 투어" 참가를 고려해 봐야 합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가 개설한 방북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 북한 정부 관료와 조·미 관계를 논의할 수 있는 만남을 가지고 1일 농촌 체험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 1-온-1’에서 제공하는 정치 성향이 덜한, 일반적인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북한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교류에 주력하면 부수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6자 회담이 순풍을 타면 이에 박수를 보내면 됩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많은 장애물을 만나고 과정이 지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보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류는 정치적으로 교착 상태에 빠져도 여전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교류는 향후 정치 프로세스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조만간 한국에 캐서린 스티븐슨 신임 주한미대사가 부임할 것입니다. 스티븐슨 대사는 1970년대 중반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평화 봉사단 단원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15분 중 10분을 성(性) 하나만 보고 정부 관료의 행동을 예측할 때 저지르게 되는 실수에 대해 이야기한 관계로, 스티븐슨 대사가 남성 전임자들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평화를 구축할 것이다라고 결론을 짓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슨 대사는 30년 전 참가했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고 젊은 여성으로서 한국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이해를 주한대사로서 재임하는 동안 활용하는 데 전념을 다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도하는 교류가 미래에 이와 유사한 결실을 맺게 되리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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