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6 15:36
여성과 정전협정 60년 학술토론회 소감문
흥민통 청년위원회 ‘들꽃’ 김소정
# 장면 첫 번째
“이 곳 주민들은 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나요?..자연이나 삶의 터전이 망가져서요?”
“아니..그것도 있지만 기지가 건설되면 남자들이 많이 들어올텐데..여기 살고있는 여성들은 다 떠날 거야. 아무래도 위험하고 안 좋지...”
# 장면 두 번째
“2008년 촛불집회가 왜?”
“종북단체가 개입한 것이 아니면 왜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피켓이나 구호가 똑같겠어요.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갖는 것도 그렇고..종북 세력들이 이 사회에서 제일 위험한 존재같아요.”
2013년 7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7세 청년인 필자가 최근 두 달간 경험한 일이다. 첫 번째는 9박10일로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만난 강정마을의 한 할머니와의 대화. 두 번째는 군대에서 3박4일 휴가를 나온 아는 동생과의 대화.
군사안보 논리에 희생되는 여성들의 삶도, 군대를 통해 레드 컴플렉스(Red complex)의 트라우마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청년들의 모습도 정전체제 60년의 산물이다.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은 할아버지·할머니 세대나 전쟁이 휩쓸고 간 잔혹한 한반도를 살아온 아버지·어머니 세대,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 자녀인 우리들 모두 인지하지 못한 채 정전체제의 그늘아래 살아왔다.
정전협정 60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개최된 <여성! 정전협정 60년을 말하다> 학술토론회는 그래서 더 뜻깊다. 지난 1일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주최로 열린 이 토론회는 정전체제 하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미래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전쟁기 민간인집단학살 생존자와 기지촌 여성의 사례를 들어 군사적·경제적·성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삶을 조명한 안정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의 발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지촌 여성의 사례는 일본학을 전공한 입장으로서 위안부 사례와 비교돼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주한미군의 무차별적인 여성강간, 가정과 사회로부터의 낙인, 미군의 폭력과 한국 정부의 방관, 민간외교관 또는 정신대의 현대판. 기지촌 여성을 정의하는 수많은 설명들은 분단된 한반도를 살고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또렷이 자각하게 해 더욱 애잔하고 슬펐다.
특수한 사례뿐 아니라 한국사회 일반 여성들의 삶에 정전협정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국가안보 논리 속에 존재해온 징병제를 통해 여성 시민권이 어떻게 제한되고 왜곡됐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명이 필요하다는 권인숙 명지대 교수의 말씀도 유익했다.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의 지적처럼 여성 대중과 소수 엘리트 중심의 여성 평화운동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정전체제의 폐해를 일반 여성들이 이해하기 쉬운 삶 속의 익숙한 대상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 사례를 들어 남성중심의 대북정책, 역할 등의 비판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여성의 특수성에 입각해 여성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운영위원장의 문제 제기는 개인적으로 큰 깨달음을 줬다.
일제 식민지배 36년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상처투성이인 한반도에 언제쯤 새살이 돋아나고 평화의 꽃이 필까? 정전체제 하에 피해자 또는 수동적 존재였던 여성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통일을 이뤄가는 과정에 있어 능동적,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필자 또한 그러한 역사의 과정에 주체자로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의 참여가 가장 대중들 특히 청년들을 아우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전협정 60년. 다시 힘차게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야할 때다. 새 정부 들어 5개월이 지나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조차 하지 못한 채 남북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지만 좌절하기는 이르다. 여성, 시민사회, 청년들이 힘을 합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를 포함한 많은 여성단체들이 각계의 열망을 담아 한반도 평화통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