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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 평화교육 2014/1/2 (통권 제66호)  
통일교육, 다중적 정체성과 다문화사회 공존모델 포함시키자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부설 한국여성평화연구원장
 

평화교육과 통일교육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2002년 통일교육원에서 위탁받은 연구주제(국내외 평화교육 사례의 통일교육 적용방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성균관대 정현백 교수와 이화여대 김엘리 박사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 연구에서 필자는 주로 해외 분쟁지역의 평화교육 현황을 조사하여 그 내용과 방법론, 특징 등을 살펴보고 이것이 한국의 통일교육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방안을 모색하였다.

북아일랜드의 가톨릭 - 개신교 공동체의 상호이해교육(Education for Mutual Understanding), 미국의 갈등해결훈련(Conflict Resolution Program), 이스라엘 아랍평화센터의 공존훈련과 대면(Encounter Program)프로그램, 독일의 정치교육과 평화교육, 남아공의 민주화와 교육개혁 등을 살펴보았다.

해외 평화교육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 평화교육은 초기에는 국가주도형(Top - down)이라기보다는 지역의 시민·평화단체·학부모·교사들이 시도하고 그 효과성이 확인되면서 점차 지역정부(교육청), 이어서 중앙정부(교육부)의 프로그램으로 수용(Bottom - up)된다는 것, 둘째, 분쟁과 갈등지역의 평화교육은 학교교육을 넘어 시민교육, 계속교육, 평생교육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 셋째, 평화교육은 지식과 정보 전달이라기보다는 학습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훈련(Training)프로그램으로서 갈등과 분쟁을 경험하고, 폭력에 노출되고 희생된 사람들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치와 태도를 훈련하고 습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넷째, 따라서 평화교육의 중심 내용은 적대감을 줄이고 ‘다름과의 공존’, 즉 이질성의 수용을 통한 공생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단일 정체성보다는 다중적 정체성을 지향한다는 것, 다섯째, 해외의 평화교육은 갈등하는 당사자들이 만남(대면)을 통해 논쟁하면서도 어떻게 공동의 목표인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열린 대화를 나눈다는 것 등이었다. 

다름과의 공존, 이질성의 수용을 통한 공생

이런 특징을 가진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적용하는 데는 연구를 수행한 2002년이나 이후 10년도 훨씬 넘은 2014년 현재에도 비슷하게 여러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통일교육이 지닌 일반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통일교육은 매해 발간되는 『통일교육지침서』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역대정부의 대북정책을 홍보하는 차원의 국가주도형이라는 것, 따라서 참여형 교수·학습방법론을 다양하게 수용하지만 각 정부가 표방하는 대북정책의 필요성 설명, 남북관계, 북한현실 등에 대한 정보전달이 중심 내용이 된다는 점,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하는 자유 민주주의적 질서를 중심으로 한 통일을 지향하고 준비하도록 지도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진다는 점,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에서도 상호 만남과 이해를 통한 공감대 형성과 이를 통한 사회통합을 지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북한의 현실(실태·실상)에 대한 경험담을 들려주고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비판적 혹은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는 점 등이다.

이렇게 다른 특징에서 비롯된 평화교육과 통일교육의 만남이 여러 면에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던 이전 정부들에서는 평화지향적 통일교육을 시도하였다. 필자가 참여했던 연구작업도 이런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 우선 원칙을 내세우고 여기에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등이 맞물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통일교육은 남한 중심의 국가안보와 군사안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통일교육에서 안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평화교육이 ‘너무 이상적(Idealistic)’이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후 60년 이상 지속된 정전상태에서 남북의 군사대결이 엄존하고 북한의 남침 위협이 여전히 계속되며 더욱이 핵을 보유하고 도발하는 상황에서 화해나 협력, 용서와 공존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들의 꿈같은 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이러한 비판은 현존하는 힘의 논리를 인정한 정치적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비판이기도 하고, 또 북한에 대한 불신과 대결에서 승리해야 자유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번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결 중심의 안보교육이 계속되는 한 남북의 화해와 협력, 이를 바탕으로 한 신뢰 형성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60년이나 지난 분단은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운 국면에 도달할 가능성과 우려를 내포하는 것도 사실이다.

통일교육의 한계와 평화교육의 확장이 주는 의미

통일교육과 관련된 상황의 변화와는 다르게 지난 10년 동안 평화교육은 한국의 시민사회 영역에서 평생교육이나 시민교육 차원으로 확산되었다. 다양한 평화교육 방법론은 다양한 시민교육 분야 가운데도 가장 활발하게 시민단체, 지역단체, 학부모단체, 학교교육의 요청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활동하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갈등해결센터도 학교폭력예방과 해결을 위한 또래조정프로그램을 2012년에 이어 작년에도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비폭력 대화(Nonviolence Communication), AVP(Alternative to Violence Project),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서클 프로세스(Circle Process), 학교폭력 예방과 해결을 위한 또래조정/중조(Peer Mediation) 등은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적용가능한 방법론과 기술들로 채워져 있는 점이 교육방법론의 가장 큰 특징이다. 평화훈련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들도 교사(Teacher)라는 용어보다는 진행자(Facilitator)로 부르는, 어찌 보면 매우 기능적 혹은 실용적 훈련프로그램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회에서 평화교육과 평화역량 형성 프로그램들이 지난 10년 동안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요인인 동시에 향후 평생교육 차원에서 시민교육의 하나로서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이유다. 또한 시민교육/훈련 영역을 넘어 지역사회갈등이나 법원의 재판과정에 도입되기도 한다.

일례로 회복적 정의는 특히 폭력의 가해자 - 피해자의 사과 - 용서 - 책임 - 화해를 통해 관계의 회복을 지향하는 것으로 현재 서울, 수원, 의정부, 인천 등의 가정법원의 일부 소년사건의 화해권고프로그램으로 도입되기도 하였고, 또 갈등해결 방법론은 아파트 층간소음문제나 뉴타운문제 등 지역의 크고 작은 갈등해결을 위한 도구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시민사회의 평화교육은 이렇듯 확장일로에 있다. 그런데 평화교육을 통해 다양한 관계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기술과 방법, 태도를 익히는 사람들은 통일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현재 통일교육의 내용이나 전달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통일이나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낮아지는 상황에서 평화훈련을 받는 사람들은 평화교육의 가치나 방법론이 남남갈등이나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되거나 통일교육에 적용되어야 할 필요성에도 크게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 수요가 확산되는 평화훈련 프로그램들은 그 자체로 자기충족성을 가지고 있어서 통일교육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어쩌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교육은 절대적으로 평화교육을 필요로 한다. 통일교육에 평화교육의 가치와 철학, 방법론이 도입되어야만 전쟁과 분쟁을 예방하고 남북이 적대감을 줄이며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평화적 공존 기술이나 방법을 훈련하는 평화교육, 차이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주는 평화훈련방법론과 기술을 현재의 통일교육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보 통일교육은 평화교육으로 보완해야

그동안 평화교육과 통일교육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몇몇 시민단체에서 있어왔다. 남북의 사회문화교류와 대북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온 단체들은 남북관계가 어려워지고 후퇴한 지난 몇 년 동안에도 평화지향적 통일교육을 진행해왔다.

남북관계의 후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만남과 대화, 지원을 지속해온 단체들이 평화교육적 방법과 내용을 수용한 통일교육을 새롭게 시도하고 발전시켜왔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들 단체들은 최근에 강화되고 있는 안보 중시의 통일교육은 자칫하면 북한에 대한 대립과 불신을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평화교육적 내용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본다.

안보에 대한 우려와 불안은 인정하고 이해를 하되 군사력이나 국가안보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안보, 협력안보, 인간안보 같은 내용을 보완하는 것, 남북이 적대감을 줄이고 공존하기 위한 사회통합, 다름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감수성/공감 훈련이 보완되어야 하는 점, 그리고 평화감수성의 눈으로 북한 바라보기 등이 대표적 내용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제안의 근본적 동기는 남북이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정전상태를 종식하여 평화로운 미래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소망 때문이다.

또 우리의 남북 어린이들에게 부모세대가 겪어온 분단과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은 간절함도 포함된다. 따라서 통일교육은 평화교육과 결합되어 시민교육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 한국사회에서 그 수용성이 확장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통일교육에 다문화교육이나 국제이해교육에서 강조하는 다중적 정체성과 다문화 사회의 공존모델을 포함시킬 필요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적어도 남한사회는 더 이상 하나의 민족, 단일민족 정체성에 근거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문화사회로의 진입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미래의 남북통합과 통일을 생각할 때 다문화사회의 공존과 통합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통일은 사람의 통일이 기본이 되어야 하기에 통일교육은 성별, 이념, 종교, 문화, 민족/인종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과 훈련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웹진 '민족화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kcrc.or.kr/?doc=bbs/gnuboard.php&bo_table=z_column_2&wr_id=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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