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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란(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정책위원장)

 

 

지난 10월 19일, 한국정부는 임기 2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됐다. 유안 안보리는 유엔 기관 중 국제평화유지에 책임이 있고,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의 결정을 수용하고 이행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됨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보 유지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면서도 '과연 한국정부가 여성·평화·안보의 관점에서 비상임이사국으로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2000년 10월 31일 유엔 안보리는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아래 132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990년대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대두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르완다·서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 등 전쟁범죄가 빈발했다. 이에 따라 여성 인권 보호와 평화 안보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제여성단체의 로비 활동과 유엔여성개발기금(현재는 유엔여성으로 통합)의 지원은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채택에 크게 기여했다.

1325호는 평화·안보에 관한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 참여를 보장하고, 분쟁에서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며, 평화유지활동과 재건과정에서 성 인지적 관점을 통합할 것을 요구했다. 1325호 채택은 분쟁에서 여성의 경험을 단지 젠더(gender) 문제로 보는 대신에 안보 문제로서 인정한 것이며, 유엔 안보리가 분쟁지역 여성 보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여성을 항구적 평화 구축 및 전쟁 예방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 이 결의가 채택된 이후 유엔 안보리는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후속 결의로 1820호·1880호·1889호·1960호를 채택했다. 유엔 회원국들은 1325호 이행을 위해 국가행동계획을 채택하고 있다(2012년 10월 현재 37개국이 채택).

1325호 국가행동계획 채택과 여성의 기여

유엔 안보리는 2012년 10월 29일 1325호 채택 12주년을 기념해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에 대한 공개토론'을 뉴욕 소재 유엔 본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1325호 채택 후 안보리는 연례적으로 10월 말에 유엔 사무총장·회원국가·NGO가 참여하는 1325호에 대한 공개 토론을 개최해왔다. 올해의 주제는 '무력분쟁의 예방과 해결 그리고 평화구축에 기여하는 여성시민단체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해 유엔 본부가 폐쇄되면서 공개 토론은 연기됐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유엔의 공개 토론과 병행해 준비된 국제 단체의 패널 토론이 호텔·대사관·여성단체 사무실에서 열렸다.

무장갈등예방국제네트워크는 '분쟁예방과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로 공개토론을 조직했다. 나는 이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석해 한국사회의 1325호 이행 현황과 남북여성 교류를 소개했다.

국제여성평화형성자네트워크는 '시민사회 1325호 모니터링 결과 발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와 1820호 국가행동계획을 위한 다자적인 이해당사자의 재정지원 메커니즘'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와 1820호의 지방화' '부룬디와 네팔의 분쟁지역에서 성폭력' 등 다양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성, 새 역사 만들고 있었다

▲ 무장갈등예방국제네트워크 주최 '분쟁예방과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토론회 2012년 10월 30일 뉴욕 로저스미스호텔에서 '분쟁예방과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여성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무장갈등예방국제네트워크 주최의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필자. 허리케인으로 인해 장소를 호텔로 옮겼다.
ⓒ 정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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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토론과 모임을 통해 1325호 이행을 위한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1325호 이행 국가행동계획 채택의 배경에 여성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필리핀의 경우, 2007년 3명의 여성이 대학교에 모여 1325호의 홍보와 이행을 위해 활동하기로 결심하고 2007년 12월 처음으로 1325호 전국 워크숍을 조직했다. 그들은 정부가 국가행동계획 채택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토대로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1325호 국가행동계획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2010년 3월 필리핀 국가행동계획이 채택됐다. 국가행동계획 채택 후 필리핀 정부는 '1325호와 1820호를 위한 전국이행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여성들은 독자적으로 '1325호 여성행동'을 결성했다. 이 여성행동은 현재 필리핀 정부의 1325호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다.

조지아의 여성정보센터는 유엔여성과 협력해 1325호 홍보 활동을 했고, 2011년부터 정치적인 지원을 받게 돼 국회 성평등위원회·시민사회단체·정부가 함께 1325호 국가행동계획 작업그룹을 조직했다. 조지아는 2011년 국가행동계획을 채택했다. 국가행동계획 채택 이후 1325호 이행작업그룹에는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3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시에라리온·네팔·부룬디 등 국가행동계획을 채택한 국가에서는 여성단체들이 중앙차원의 논의뿐만 아니라 지방 차원에서도 1325호를 이행하기 위해 교육·홍보·지방정부와 협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1325호 이행을 위해 지역 차원에서 지역행동계획을 채택한 경우에도 여성단체의 활동은 두드러지고 있었다. 태평양 지역에서는 2012년 10월 18일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태평양지역행동계획(Pacific Regional Action Plan on Women, Peace and Security)'을 채택했다.

이 채택과정에서 펨링크태평양(femLINKPacific)을 비롯한 여성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간빌·파푸아 뉴기니아에서 내전이 발생하고, 피지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이 지역의 안보가 크게 위협받으며 태평양 도서 국가들 사이에서는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후 여성단체·태평양도서국포럼·유엔이 함께 작업해 태평양지역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여성들은 태평양지역행동계획이 평화·안보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고 각국의 국가행동계획 채택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는 1325호 이행과 국가행동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들과 만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 1325호를 제기한 최초의 여성 3인 중 한 명인 마빅 카브레라바레자(Mavic Cabrera-Balleza), 민다나오에서 평화협정에 관여하고 지방차원에서 1325호 이행을 지원하는 마리아, 조지아에서 1325호 국가행동계획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정보센터의 일레인, 네팔에서 1325호 국가행동계획 채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단체 사티의 반다라 라다, 태평양지역행동계획 개발에 참여한 펨링크태평양의 새론 등과 만남은 여성들이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했다.

여성·평화·안보 신장 움직임 없는 한국

▲ GPPAC 지역 젠더 담당자와 유엔인구기금 방문 2012년 10월 31일 GPPAC 지역 젠더 담당자들이 유엔인구기금을 방문하여 1325호 이행을 위한 협력방안을 모색한 후 찍은 사진
ⓒ 정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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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유엔 안보리·유엔여성·유엔 인구기금·유엔 평화유지국 등 다양한 유엔기구가 1325호 이행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GPPAC 젠더포컬포인트들과 함께 나는 뉴욕에 본부가 있는 유엔인구기금(UN Fund for Population and Development)을 방문해 젠더·인권·문화 파트 담당자들을 면담했다.

유엔 인구기금은 인구문제에 관한 사회적·경제적·인권적 측면의 인식을 높이고 개발도상국의 인구정책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1325호 이행과 성평등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엔 인구기금은 현재 분쟁·분쟁 이후·긴급 상황에서 여성과 여아가 성폭력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회원국과 함께 모든 여성과 여아가 위기 시에 안전하게 여성 건강과 재생산 건강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분쟁 이후 재건 단계에서 여성과 여아의 특별한 요구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여성 건강 보호·성폭력 예방·여성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한 한국은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를 지지하는 그룹(Friends of 1325)의 일원이며 유엔여성 집행이사국 의장국·유엔 평화유지분담금 기여 상위 10위 국가다.

그러나 1325호가 채택된 지 12년이 됐지만 한국정부는 1325호를 거의 이행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평화·통일·외교 영역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지극히 낮고, 이 영역에서 성 인지 예산 사용은 3% 미만이다. 게다가 정부 차원의 남북대화와 6자회담 등 평화관련 회담에서 여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성 격차 지수로 볼 때, 한국은 세계 135개국 중 108위에 불과하다. 한국 여성의 지위는 한국 남성에 비해 너무 낮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평화를만드는여성회·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동북아여성평화회의 개최와 6자회담 참가국에 제안서 발송·국회의원과 면담·정부에 1325호 이행 관련 질의서 발송 등을 통해 1325호 홍보활동을 해왔다. 이런 활동의 영향으로 2012년 2월 27일 국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에 따른 국가행동계획 수립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여성가족부도 제4차여성정책기본계획(안)에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이행 국가행동계획 수립을 포함했다.

18대 대선 후보 중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지난 10·4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유엔 안보리 1325호 여성참여추진자문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안철수 후보는 1325호 국가행동계획 수립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문 5개를 지지하고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된 현재,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루속히 1325호 이행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즉 평화·통일·외교 영역에서 성 인지적 관점을 통합하고 여성 참여를 촉진하며, 여성폭력 예방과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할 때 우리 여성들은 여성·평화·안보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11월 14일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01991&CMPT_CD=P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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