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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글쓰기
침실에서 협상회의실까지 여성들은 비폭력평화를 원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서 열린 ‘성인지적 비폭력훈련’ 프로그램 참가기
▲ 인도네시아 활동가와 함께 한 김정수(오른쪽) 대표. 그가 들고 있는 성폭력 반대 포스터에 “진짜 남자(real man)는 뇌를 사용하지, 페니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나는 4월 3~1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성인지적 비폭력훈련(GSANV)’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갈등 해결 프로그램이나 다른 평화 교육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를지 궁금증이 컸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지배와 폭력은 침실에서 국제회의장까지(from bedroom to boardroom) 관철된다.” 짐바브웨에서 온 비폭력 훈련 프로그램 진행자 네차이의 말이다. 여성들은 무력분쟁 현장에서 집단 강간을 당한다. 또 거리의 성폭력, 가장 은밀한 침실에서 남편에 의한 폭력까지 다양한 폭력을 경험한다. 여성들을 피해자에서 폭력 극복과 평화운동의 주체로 전환시키려면 성, 권력, 폭력의 연관성을 개인-가정-공동체-사회-국가-국제의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지적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머리)-느끼고(가슴)-변화를 위해 움직일 수 있도록(손·발) 참여 학습을 진행하는 데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시아의 여성뿐 아니라 남성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프로그램에 뿌리 깊은 남성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 성역할이나 남성성-여성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공동체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다양한 비폭력 실천 시나리오를 만드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슬람교와 힌두교 전통이 강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에서 온 남성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현실이나 문화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비롯해 화려한 영어를 구사하며 프로그램 내내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런데 정작 소그룹 활동에서는 소극적이거나 불평을 토로하거나 말만 늘어놓고 정리나 발표는 여성 활동가들에게 미루곤 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 남아시아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It is the way We South Asian Men Do!)”면서 놀리기 일쑤였다. 나는 이들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한편 “아, 남성들과 함께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구나. 이런 거부와 저항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야. 이런 긴장과 갈등 상황을 평화적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큰 도전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성인지적 비폭력 훈련은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유엔안보리 1325호’ 국가행동계획 이행을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아시아에서 1325 국가행동계획을 가장 먼저 채택한 필리핀은 이 프로그램으로 경찰관 같은 안보 영역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1325 국가행동계획이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평화와 안보 영역에 여성들을 참여시키고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성인지적 비폭력 훈련은 일종의 문화적·교육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 도중 자카르타 번화가에서 열린 성폭력 반대 캠페인을 참관했다.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이 인상적인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그 뜻이 뭐냐고 물어보니 “진짜 남자(real man)는 뇌를 사용하지, 페니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란다. 이렇게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들고 한국의 광화문 광장과 같이 가장 번화한 곳에서 성폭력 반대 캠페인을 당당하게 하던 자카르타 활동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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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
1235호 [오피니언] (201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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