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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글쓰기

 

“애달픔도 집착도 넘어 그대로 인정하며 지켜주는 평화”

 

 

                                                                                                        윤 수 경(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열도 좀 있는 것 같고 머리가 띵하니 아팠다. 무슨 큰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에 두서가 잡히지 않고 기분이 영 좋지 않더니 오후가 되자 뼈 마디마디가 쑤셨다. 저녁 때는 거의 녹초가 되었다. 그야말로 골수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할아버지 집에 놀러온 6살 남자 쌍둥이 손자들이 저희끼리 놀다가 무언가 서로 안 맞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작은 얘가 형에게 “치사해, 치사해” 라고 말하는 것을 얘들 엄마가 들었는데, 그걸 할아버지에게 말한 것으로 잘못 알고 따져 물었다. 그런데 입을 삐죽이던 작은 얘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아이가 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울지 말고 말을 해. 왜 너는 울기부터 하니?” 하면서 약간 짜증 섞인 말로 나무랐다. 작은 얘는 더 서럽게 울면서도, 제 딴은 울음을 그쳐보려고 연신 손으로, 옷깃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흐느꼈다. 얘들 아빠가 달려들어 작은 얘를 품에 안았지만 작은 놈의 흐느낌은 좀처럼 멈춰지지 않았다.

 

며느리는 시부모 앞에서 아이 울린 것을 민망해 하면서 우리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경혁이(작은 손자 이름)는 무엇을 잘못했을 때 그 이유를 묻기만 해도 저렇게 울기부터 해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릇이 작은가 봐요.”

 

그날 저녁, 우리는 서둘러 아들네 식구를 보냈다. 작은 손자는 울음은 겨우 그쳤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도 못 한 채 아들이 안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며느리는 유치원 선생이었다. 두 아이의 교육에 헌신적이다. 며느리의 교육방법은 두 아이의 의견을 자주 묻고, 아이들의 질문에 아주 성실하게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대답한다. 나는 그런 며느리가 믿음직스럽고 고맙다.

 

내가 하루종일 마음이 그토록 산란했던 것은 어제 저녁 울던 손자 모습 때문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울던 아이 모습이 가슴 속을 온통 차지해서 뼛속의 골수까지 저려왔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우리도 손자들을 사랑한다. 조부모의 손자녀 사랑은 하도 유명해서 누구든 손자녀 얘기를 꺼내면 상대방이 먼저 “손자, 손녀가 그렇게 이쁘다면서요?” 하고 아예 말을 끊어 버릴 정도이다. 오죽하면 손자녀 자랑을 하려면 돈을 내고 하라는 말이 생겼을까.

 

문제는 그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처럼 케케묵고 진부하고 싱겁고 웃기는 게 있을까 싶게,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많은 물음이었지만 아직도 진행형인 항목이 바로 이 질문이다. ‘사랑’의 정의는 사람 수만큼, 아니 한 사람 속에서도 시시때때로 바뀌니 무한대가 그 답이라면 답일 것이다.

 

이번에 나를 그토록 애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렇게 하루종일 전혀 평화스럽지 못했을까? 사랑하는 손자의 눈물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을까? 혹 손자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어쨌든 사랑은 증오만큼이나 불편했고 불행했다.

 

“증오와 갈등을 넘어, 대립과 긴장을 해소하며...” 평화를 만들어 가자고 우리는 말해왔다.

여기에 덧붙여야겠다. “애달픔도, 집착도 넘어 그냥 그대로 말없이 지켜주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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