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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글쓰기

개벽을 아시나요?

2009.12.23 18:59

평화여성회 조회 수:7896

 

개벽을 아시나요?

 

                                                     홍승희(평화여성회 웹진 편집장)


10여 년 전부터 한동안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도를 아느냐’고 물으며 특정 종교로 유인해 들이려던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도가 대체 무엇인지는 깊이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이비 종교라고 해서 말썽도 심심찮게 일었었다.

그런데 그들이 조종으로 삼은 강증산은 실상 100여 년 전에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 예언자였다.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 얘기가 그 후 한동안 자연세계의 요동을 뜻하는 말로 이해되기도 했다.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기후변화와 지진과 같은 잦은 지각의 동요는 이런 예언자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지구의 지각변동과 같은 식의 변화를 말 했다기보다는 사회의 격변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흔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식으로 남녀 차별을 공식화시켰던 시대가 가고 남자와 여자의 상징이 뒤집어지는 시대를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화의 세계에서나 우리 민족의 전승에서 보자면 세상의 중심, 우주의 중심은 바로 사람이고 그 사람을 낳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하늘과 땅이 결합하는 매우 신성한 의례다. 음과 양이 만나 생명을 낳는다는 생각이 장구한 세월 동안 문화의 켜를 형성했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천지인 사상이다. 한글의 모음이 바로 이 천지인 사상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고 풀이되는 천지인 사상은 실상 남과 여가 결합해 새로운 생명을 낳는 생명의 순환 고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순환 고리에 언제부턴가 위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양, 하늘)>여자(음, 땅)>새로운 생명(인간)의 순으로 인위적 질서가 부여된 것이다. 그러면서 남자들의 권력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그렇게 부자연스럽도록 커지기만 하던 권력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불평등, 부패, 사회적 균열로 이어져 갔다.

과학계에서야 뭐라고 하든지 민족 전승의 경전인 천부경을 들여다보면 블랙홀은 다시 빅뱅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낳아야 한다. 영원한 것도 없지만 또 영원하지 않은 것도 없는 끊임없는 변화가 반복된다는 사고인 것이다.

따라서 집중될 대로 집중된 권력에는 필연적으로 균열이 나야 하고 서서히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개벽인 셈이다.

사회 권력의 변화가 단지 같은 성 안에서만 일어날 때는 개벽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남자에게 과도하게 쏠렸던 권력이 다시 공평하게 흩어지려면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어질 만큼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100년, 1,00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빅뱅을 통해 태양계가 생성되고 안정화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듯 신화의 세계에서 천지가 창조되고 개벽되는 시간으로 몇 백 년쯤은 대수로운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런 변화가 100여 년 전 한 예언가의 눈에 포착돼 표현된 것이 소위 말하는 강증산의 개벽 선언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몰랐지만 극악한 불균형을 보이던 권력관계 속에 이미 격변의 씨앗이 숨어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신화의 세계를 보면 진정한 하늘은 어머니의 자궁이었다. 그래서 하늘은 종종 바다와 혼용돼 쓰인다. 하늘이 곧 바다고 바다가 곧 하늘인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은 우리 민족 전승에서나 중동 지역 점토판 문서에서 두루 발견된다.

고대인들이 죽은 자를 동굴에 장사지내던 풍습도 대지인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부활하기를 열망하는 당대인들의 꿈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고대 여성들이 사제로서 씨족을 이끌던 시대에 하늘에 대한 제사는 모두 동굴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고대 유적지들 중에 산 정상에 천제단이 있으면 반드시 그 산 중턱쯤에는 큰 동굴이 있는 게 일반적이다. 먼저 동굴에서 제를 준비하고 정화의 의식을 치른 후 천제단에 올라 천제를 올리는 것이 오랫동안 전승돼온 관습이었다.

당초에는 동굴에서만 지내던 천제가 산 정상으로 올라간 것은 이미 모권시대에서 부권시대로 변화된 시대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예로부터 신성한 산을 늘 신성한 산이었기에 천제단과 동굴은 한 세트로 발견되는 것이다.

고구려가 건국 초기 국동대혈에서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은 당시에만 해도 여전히 모권시대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그 큰 동굴은 그 내부이든 근방이든 반드시 큰물과 함께 할 때 신성성을 갖는다.

백두산이 신성한 산인 이유는 바로 천지를 이고 있기 때문이다. 천산산맥 천산에도 천지라는 이름의 큰 호수가 있어 우리 민족 이동과 관련해 상당한 주목을 받는 곳이다.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물은 바로 자궁 속 생명의 물을 뜻하는 것이다. 대지는 바로 여성이고 어머니이며 그 속에서 큰 호수든 바다든 큰물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화의 세계는 자연스러움과 평등함을 추구한다. 불평등한 조건을 극복하고 마침내 이르는 평등의 바다는 곧 평화의 하늘이다. 그 하늘, 그 바다가 바로 어머니의 자궁이다. 인류가 오래 꿈꿔온 유토피아가 실상은 바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누린 평화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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