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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글쓰기

고문 같은 친절 범람시대

2010.04.02 09:39

평화여성회 조회 수:9255

 

고문 같은 친절 범람시대

 

                                                                                                  홍승희(평화여성회 웹진 편집장)


지난 3월말 일주일가량은 개인적으로 과공이 비례(過恭이 非禮: 지나친 대접은 예의가 아니라)라는 옛말을 실감하며 지냈다. 그 말을 간혹 쓰기도 했지만 이 땅에서 여자로 살면서 지나친 대접 받고 살 일 별로 없다보니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던 말인데 전화회사 간의 서비스 경쟁에 별 일을 다 겪은 것이다.

괜스레 요금 몇 푼 깎아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집 전화 관리회사를 바꾸기로 했다. 그날부터 하루 두세 차례 씩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나중에는 진저리가 쳐졌다. 결국 사람이 와서 한 일이라고는 아파트 지하 단자함에서 회선교체 작업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 일이 끝나고 나서의 확인 전화까지 세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20회에 가까운 확인 전화를 받았다.

가뜩이나 요즘 집에서 일을 하다보면 인터넷 전화를 설치하라거나 무슨 여론조사라거나 하는 각종 스팸성 전화에 시달리는데 이번 경우는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피하기도 어려워 학을 떼도록 전화 공세에 시달린 것이다.

일하다 말고 뛰어가 받아야 하는 전화 자체에만 진저리를 치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인건비를 줄인답시고 매사를 전화로 처리하는 근래의 서비스 방식이 엉뚱한 낭비를 초래하는 뒤틀린 모습인가 싶어 한숨이 나왔다. 또한 저 비용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일이라는 데 이르면 부아가 치밀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상인들에게도 화가 나지만 이런 방식의 넘치는 친절은 실상 친절이 아니라 고문이다. 나중에는 전화하는 이들마다 장황한 인사말을 늘어놓은 것조차 짜증을 돋운다. 바쁜데 친절한 인사말이라고 외워서 읊어대는 대사들이 붙들고 놔주지 않을 때는 소리라도 버럭 지르고 싶어진다.

그뿐 아니다. 주민등록번호(물론 뒷자리만 부르라지만)며 주민등록증 발급일자는 왜 두세 차례 씩 묻는지 울화가 치민다. 저희들의 시스템 미비를 소비자들의 불편으로 전가시키면서 친절로 포장한 그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고문 같은 친절이 이들 통신회사들 뿐일까? 막상 필요한 일은 외면하면서 수용자를 번거롭고 성가시게 들볶는 금융 서비스며 행정 서비스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자본주의적 행정을 독려하는 현 정부 하에서는 더군다나 군더더기 치레 행정만 늘어가는 듯하다.

넓게 보면 청계천이며 4대강 사업이며 다 하지 말라는데도 부득부득 “다 너희를 위한 일”이라며 하겠다고 우긴다. 통신회사들의 그 부산한 전화질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작게 필요한 일만 해도 될 것을 모조리 다 파헤치고 겉치레만 요란하게 하느라 막대한 세금을 쓰면서도 훗날 한사람의 치적으로 남을 것이라는 미몽에 사로잡혀 요지부동이다.

내 돈 같고 제가 생색낸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통신회사나 이 정부나 다 결국은 소비자요 국민의 돈으로 장난하고 있는 셈이다. 어린이 급식 문제처럼 정말 필요한 일은 돈이 없어서 못한다면서.

남영동에 끌려가니 웃고 농담하며 고문하더라는 김근태 의원의 고발이 옷만 갈아입은 채 지금 전 국민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는데도 올바른 선택을 못하는 국민이라면 우리는 참 희망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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