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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이우정의 마음, 그리고 눈과 귀- 初心과 恒心
-김성재(연대 석좌교수, 김대중도서관 관장)


1.시작하는 말

오늘 이 강연은 7년 전에 소천하신 이우정선생님을 추모함과 동시에 그 분의 신앙, 학문, 삶을 통해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와 세계의 과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우정선생님, 하면 먼저 작으마한 몸매에 언제나 밝은 미소를 띤 자상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신체적 운동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지만 사회적 운동에는 누구보다 먼저 다가갔고,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모든 운동에 기꺼이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은 민주화, 인권, 민중,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평화통일, 생명운동 등 운동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사회운동에 함께 했고, 뿐만 아니라 가난, 아픔, 억압, 차별 등에 의해 비인간적 삶을 강요당하는 사람들과 하나 되고 한국사회와 세계를 인간다운 사회로 변화시키고, 자연의 생명을 살리는 현장에 언제나 함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운동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선생님은 힘들어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며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한때 선생님의 별명은 ‘스페어타이어(Spare Tire)’였습니다. 군사정권의 탄압이 극심해져서 에큐메니칼 기관들과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의 장(長)들 그리고 각종 대책협의회 위원장들이 잡혀가거나 도피하여 그 일들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면 “아무도 못하면 나라도 해야지”하고 소위 “땜빵”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지위나 역할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곧 그 자리, 또는 그 역할에서 물러났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그 소명의 책임을 수행한 후에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본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사들, 판관들처럼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했습니다. 이렇게 삶과 운동이 하나 되고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생명의 원동력은 선생님의 자유혼의 인격과 신앙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자유의 종’을 쓴 신소설의 개척자 이해조의 손녀로서 그 정신을 물려받았고, 기독교에 귀의한 후 예수의 사랑에 흠뻑 젖은 삶을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어머니의 삶을 통해 깨달은 ‘남성의 굴레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의 인격체로서의 삶’, 그리고 오직 주님께만 순종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운동 현장과 더불어 살았지만 운동가도 투사도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신학교를 다닐 때 시각장애인인 양정신선생과 늘 함께 다녔는데, 선생님이 하도 말을 하지 않아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다니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큰 소리와 폭력적 투쟁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고통 받고 짓밟힌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운동에 동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많은 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운동 논리에 매이지 않았고 특정 이념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 편에서 그들을 대변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순진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순진했던 선생님의 한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개하는 내용에 있는 분들이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시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전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말씀드립니다.

선생님은 한국신학대학에서 신약학과 희랍어를 가르치던 교수였는데, 1969년 교수들과 학장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장은 수유리캠퍼스 땅을 팔아 학교 미관 정비에 사용하려고 했고, 교수들은 땅을 팔면 안 되고 학교 건물이 낡았어도 돈이 있으면 장학금으로 먼저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등이 심해지다가 급기야 교수 전원이 사표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때 같은 신약학 교수였던 전경연박사가 사표를 안내겠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설득해서 사표를 내었습니다. 전경연박사는 1965년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데모에 앞장섰다가 정치교수로 낙인찍혀 3년간 해직당하는 어려움을 겪은 분이었습니다.

이후 이 사태에 대해 학장이 책임지고 물러나고 교수들은 다시 복직하게 되었는데, 후임 김정준학장이 전경연박사를 복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선생님은 김정준학장을 설득해도 안 되니까 매우 괴로워하다가 본인도 복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서울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선생님 때문에 서울여대가 어려움을 당할 것을 염려해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이후 교회여성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전경연박사는 그 후 조향록학장 때 다시 복직했습니다. 순진하신 선생님은 해직교수에도 못 끼셨습니다. 이렇게 순진한 아니 순수한 선생님의 인격은 타고난 성품이기도 했지만 깊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선생님의 고희를 기념해서 헌정한 논문집에서 선생님의 일생을 “여성, 평화, 생명”으로 주제화했는데, 이 주제는 1990년대 초 당시 우리사회 상황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와 21세기 인류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우정의 마음, 눈과 귀- 초심과 항심의 관점에서 이 주제들을 다시 성찰해 보려고 합니다.

2.이우정의 인권과 민주주의

우리 사회에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상당히 신장되어 이제는 이것이 주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런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물론 1970-80년대에 비하면 인권과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결코 낡은 이슈도 간과할 과제도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이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그동안의 희생을 값싸게 취급하고, 어설프게 이것의 과실이나 따먹으려 하고,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현 이명박정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다고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번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에 상상을 초월해서 많은 국민들이 애도 한 것은 바로 그분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함께 이런 우려를 표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각 대학교수들,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원로들, 문인들, 각 대학학생들의 잇따른 시국선언들은 70-80년대를 연상케 합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소위 운동권 사람들처럼 인권과 민주주의를 운동의 목적으로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삶의 차원에서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운동권 사람들이 이제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우리사회의 과제가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체념하고 있을 때 도리어 앞장서서 아니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진보적인 운동권 사람들이 국민을 의식화시킨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더 성숙해서 운동권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생님이 제일 먼저 외쳤던 과거 기생관광 문제는 오늘 형태를 달리 한 채 여전히 성의 노예화, 성의 상품화로 여성들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원풍모방, 동일방직, 해태제과, 콘트롤데이타, YH무역 등에서 일어난 여성근로자들의 인권과 복직 투쟁 역시 오늘 많은 기업들에서 구조조정, 비정규직 해고 등으로 이름은 달리하지만 본질은 똑같이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공법 역시 국가보안법으로 이름만 바뀐 채 오늘도 정권의 공안 탄압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민주화운동은 보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사회 모든 분야 및 영역에서 평등한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자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의미에서 대의민주주의나 절차민주주의가 쉽게 간과하고 잘못을 범하는 반인권적,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양 99마리를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예수님처럼, 사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으로 보면 99%가 찬성하면 거의 완전에 가까운 것이지만 선생님은 다수의 이름으로 1%약자가 희생된다면 안 된다고 하고 그 약자 편에 섰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행동은 대의민주주의와 절차민주주의가 강자와 다수의 횡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다시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3.이우정의 여성운동과 여성신학

선생님의 여성운동과 여성신학은 단적으로 엘리트여성의 입장, 남성과의 대립적 관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은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서유럽의 여성운동은 시몬느 보바르의 “제2의 성”이 말해주듯이 여성이란 남성에 의해 사회적으로 조작되고 학습되어진 ‘제2의 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본래적 인간을 회복하려면 결혼과 성으로부터 자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의 여성운동은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3/4세계 여성해방운동은, 전에는 제3세계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서구제국주의 관점의 표현이기 때문에 3/4세계라고 하는데, 서유럽과 미국의 여성해방운동과 달리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여성해방운동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물론 3/4세계의 여성들도 남성들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받았지만(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제3세계에서 여성들이 또다시 남성들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기 때문에 여성해방운동을 제 4세계의 해방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3/4세계의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의 자유와 해방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3/4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유하고 해방되는 인간해방을 추구했습니다.

선생님의 여성운동은 3/4세계 여성해방운동과 입장을 같이 했습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이 자유민주주의 운동이었다면 1970년대 인권, 민중, 민주화운동은 사회정의적 차원에서 전개되었는데, 이 운동들은 거의 다 여성노동자들이 촉발시켰습니다. 전태일열사가 분신으로 고발했던 평화시장노동자, 원풍모방, 동일방직, 해태제과, 콘트롤데이타, YH무역 등에서 일어난 투쟁은 모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투쟁을 함께하며 여성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현장에서 신학을 한 것이 선생님의 여성신학입니다. 선생님의 여성신학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주지주의적이거나 현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민중을 보편화하거나 개념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구체적으로 ‘짓밟힌 자’로 말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은 오늘의 엘리트여성운동, 여성신학과 차원을 달리해서 짓밟힌 여성, 짓밟힌 인간을 자유하게 하고 해방시키는 여성운동과 여성신학을 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선생님의 이런 여성운동과 여성신학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의 세계관이 인류의 희망’이라는 21세기 담론은 바로 이런 관점, 즉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 더 나아가 자연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평등성과 가치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여성운동과 여성신학은 이런 선생님의 마음과 시각을 깊이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이우정의 평화통일운동

선생님의 평화운동은 불의한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현상 유지하는 제국주의적 평화, 곧 PAX ROMANA, PAX AMERICANA, PAX JAPANESE의 평화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추구하는 평화는 성서 말씀대로 “정의와 입 맞추고, 화해와 자비가 춤을 추는” 평화입니다. 성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평화의 왕’이라고 말하는데, 모순되게도 예수님은 ‘평화 파괴범’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가난하고 병들고 천민과 죄인 취급받던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지만 로마와 유대종교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평화 파괴범’이었습니다. 선생님도 군사정권에서는 ‘평화 파괴범’이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평화는 “하늘의 평화”가 아니라 “땅의 평화”였습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 탄생 때 울려 퍼진 찬양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서구지배기독교는 오랫동안 이것을 “땅의 영광, 하늘의 평화”로 왜곡시켰습니다. 서구지배기독교는 신의 축복이란 미명으로 땅의 모든 영광적인 것을 탐욕스럽게 움켜쥐고 한없이 누렸습니다. 반면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평화’를 말하면서 참고 견디면 내세에 보상받는다고 종교적으로 현혹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늘의 평화’는 땅의 거짓과 불의에 침묵하고 순응하는 마술과 마약으로 작용했습니다. 죽은 후 ‘천당의 보상’이 ‘하늘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으로 둔갑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평화’와 ‘천당 보상’의 거짓을 폭로하고 그 미혹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선생님의 평화통일운동은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민족주의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쪽 민중과 북쪽 인민들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평화적 삶의 추구가 아닌 평화통일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지배수단이 된다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굶주린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 없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자고 하는 것은 위선이고 정부의 자기기만이라고 했습니다.

6.15남북정상회담으로 이제는 한반도의 냉전이 해체되고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햇볕에 녹은 평화의 물이 다시 적대화로 얼어붙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 핵 문제가 한반도에 새로운 위기로 등장하고 있는데,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자동적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것은 남한과 군사적 대결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에 대한 보장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반도가 냉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되려면 무엇보다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체제에 대해 안전보장을 하도록 남한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한이 일본과 동맹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한반도를 더욱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관계 개선하면 남한은 고립되고 맙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은 인도주의적 지원 중단이나 군사적 압박이 아니라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평화공존, 평화교류를 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는 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안전 그리고 번영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5.이우정의 생명운동

우리가 환경운동, 생명운동을 할 때 언제나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은 누구의 환경과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의 환경과 생명이어야 하지만 ‘모두’라는 보편성 속에 무서운 지배이데올로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열대림이 지구의 허파이기 때문에 더 이상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열대림에서 사냥하고 고기 잡고 벌목해서 사는 원주민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내어 쫒는 환경운동은 환경을 빌미로 한 부정의한 제국주의의 착취에 불과합니다. 아마존 열대림을 보존하려면 먼저 원주민들의 생존권부터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사실 지구를 위해 보존해야 할 자연 자원의 대부분은 이미 서구 지배세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서구는 일찍부터 비서구의 자원을 수탈하고 그들을 노예화한 노동력으로 개발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제 3/4세계가 개발을 하려고 하니 지구와 인류의 환경을 위해 개발하지 말라고 합니다.

1970년대 로마에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렸을 때 이미 개발해서 그 부와 풍요를 누리는 서구는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개발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3/4세계 사람들은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 빈곤 속에서 살다 죽어가라는 말과 같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맞섰습니다. 정의롭게 하려면 서구는 마이너스 성장하고 3/4세계는 플러스 성장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여 이 회의는 결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사독재개발의 공업화는 서구가 공해 때문에 더 이상 가동하지 못하는 공해산업 유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는 공해문제를 제기하면 반공법으로 잡아갔습니다. 결국 공해산업으로 경제가 발전했지만 이 성장의 결실은 독재세력과 재벌이 가져갔고, 노동자와 빈민은 공해병과 가난 속에 죽어갔습니다. 지금도 공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그 지역 주민들은 당국이나 기업이 그 원인을 숨겨 억울한 희생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한 화학비료와 농약 살포로 생산된 농약 쌀과 농산물은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을 병들고 죽어가게 했습니다.

따라서 환경, 생명 문제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구체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의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입장에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들의 입장에서 하지 않으면 이것은 지배자와 부자를 위한 운동이 되고 맙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의 입장에서 환경, 생명운동을 할 때만이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보편적 운동이 됩니다.

선생님은 서구기독교 신학과 신앙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서구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서의 내용을 가부정적 지배욕으로 잘못 해석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축복과 금과옥조의 말씀으로 삼아 비서구, 비기독교인들과 자연을 무자비하게 정복하고 파괴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서구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잘못을 성찰하고 인간-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연은 모두 하나님의 생명으로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며, 사람과 자연의 생명 가치는 동등하고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이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듯이 사람도 자연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에코신학과 신앙은 에코페미니즘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에서 이념이나 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감수성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선생님은 환경과 생명에 대한 깊은 감수성을 가지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6.맺는 말

선생님은 1970년대 초부터 문동환선생님과 “새벽의 집”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이기심과 돈과 물질 그리고 소유에 매이지 않고 사랑으로 함께 나누며 사는 공동의 생활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님을 향해 열려 있었고, 이 마음은 동시에 가난한 이웃과 병들고 짓밟히고 차별당하는 민중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은 언제나 예수님과 민중들을 보고 있었고, 선생님의 귀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과 민중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가졌던 믿음과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날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늘 세계의 놀라운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1989년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구사회주의권이 붕괴된 후 자본주의는 승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부와 풍요를 누리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채 안되어서 신자유주의는 부메랑의 덫이 되어 서구자본주의 선진국가들을 경제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작은정부와 시장만능주의가 도리어 독버섯이 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외신들이 “한국국민들은 도덕을 외면하고 경제를 우선해서 이명박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보도했는데, 지금은 신자유주의 경제적 고통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고통도 함께 걸머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정부 통계를 보면 이명박정부에서 빈부 격차가 더 심해졌고, 이것은 OECD선진국가들 중 가장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늘 우리가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서 추모한다면 선생님의 마음과 눈과 귀를 가지고 선생님처럼 우리 사회와 시대의 가난, 억압, 소외, 차별, 갈등, 적대감, 분열, 분단, 생명파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믿음과 사랑의 초심을 되찾고 변함없는 마음과 자세, 항심으로 이 일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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