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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 2008 멕시코 사회포럼을 스케치하다


- 엘리 (평화여성회 여성평화연구원 원장)


멕시코.

멕시코는 최소한 한국인들에게는 복잡한 인상으로 지멋대로 그려져있다.

격렬한 살사 춤의 열정이 가득한 곳, 자원이 풍부한 곳. 그러나 빈부차도 심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곳, 혼자 여행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곳, 매년 백 만명의 미등록이주자들이 미국의 국경을 위험스럽게 넘다가 죽고 다치는 곳...... 이런 저런 몇 가지 상들로 교차된다.

여행객인 나에게 멕시코시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따사로운 햇살과 파아란 하늘의 강렬함이다. 등이 아련해진다. 눈이 부시다. 이러한 자연의 덕인지, 나무와 꽃, 과일과 채소들의 다채로운 빛깔은 너무나 선명하여, 절로 아름답다는 감탄이 나온다. 여기 저기 거리에서 오랫동안 껴안고 입맞춤을 하는 연인들의 열정만큼이나 도시의 색채는 에로틱하다. 그 중 고통과 열정의 교차를 보여주는, 그렇다고 해서 절망스럽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힘을 느끼게 하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나 박물관의 색감이 말하듯, 멕시코시티는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황홀한 자유로움과 강한 자존감을 담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박물관에서. 프리다와 디에고가 여기서 살았다는 글귀가 보인다. 박물관은 남편 디에고와 살았던 실제 집인데, 짙은 불루와 카민색으로 칠한 벽이 인상적이다



2008 멕시코 사회포럼, 땅과 원주민에 관한 포럼의 부스 천막에 그려진 그림. 옥수수는 멕시코 인디오들의 삶을 상징한다

멕시코의 2008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도 그러했다. 실업의 증가, 빈곤,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 선거부정, 경제적 부패, 언론법의 탄압, 사회운동을 범죄로 취급하는 것, 인디오 원주민들의 차별 등 산적한 사회문제를 지역 사람들과 함께 대중적 축제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한국에서 포럼을 개최한다면, 이렇듯 수 천명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 진지함을 축제분위기로 엮어낼 수 있을까, 잠깐 숙연해지기도 했다.

2008년도 세계사회포럼은 한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40여 개 국에서 각 지역의 구체적인 이슈와 연결하여 동시에 개최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약 360개의 참여단체가 주축이 되어 멕시코시티의 쏘깔로 광장에서 21일부터 26일까지 주요 포럼과 9개의 포럼, 이와 연관된 부스 전시, 다큐상영, 전통공예품 전시, 옥수수차 행진, 음악공연, 길거리 퍼포먼스 등으로 치러졌다. <세계변화를 위한 지역행동>이라는 멕시코의 지역 슬로건을 가지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세계사회포럼의 비전을 실현하려고 하는 멕시코의 사회포럼은 1)군사화와 인권 억압 2)대안 교육 3)통신법 4)문명의 위기 5)여성과 젊은이들의 인권을 위하여 6)땅과 원주민과 자치권 7)생태문제 (자연과 함께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 8)도시와 주거권 9)경제연대 등의 주제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쏘깔로 광장의 포럼 부스들



각 9개의 주제에 대한 대안적 사회에 관하여 논하는 센트럴 포럼

다섯 번째 포럼인 여성인권 파트는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으로서 재생산권이나 낙태, 건강문제를 다루었다. 또한 젊은이들의 건강, 재생산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었다. 포럼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이 부스를 둘러보니, 주로 재생산권과 피임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결정할 권리를 위해 모인 가톨릭인들(Catolicas por el Derecho a Decidir)’이라는 단체에서는 피임을 금지하는 가톨릭의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었다. 가톨릭이 콘돔사용을 허용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며 로마교황청의 사제들의 무심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나, 여성의 안전한 삶을 위한 낙태법 허용에 대한 주장은 인상적이었다. 옆의 다른 조직에서는 성기모형을 놓고 콘돔이나 페미돔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CDD 단체의 부스

멕시코 젊은이들은 일찍 성관계를 갖거나 결혼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한 여성이 생애기간 중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연수가 길다고 한다. 모임에서 만난 한 멕시코인은 이제 40대 초반인데, 할아버지가 될 참이란다. 10대에 결혼하는 경우가 흔해서 40대가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기 쉽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임과 낙태문제는 자연스럽게 주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가톨릭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멕시코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이나 재생산권, 건강권에 대한 여성인권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으면, 이 문제가 야기하는 위험한 것들은 고스란히 여성이 안고 갈 것이라는 현실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여성들이나 성적소수자들의 다른 아젠다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세계사회포럼이 같은 기간에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 포럼)에 대한 대항적이자 대안적인 모임이다보니 경제, 환경, 평화문제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그러니 멕시코 포럼도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군사화를 비판하고, 지역 사람들로부터 시작되는 그리고 지역사람들이 일구는 대안적인 사회를 꿈꾸고 제시한다.

여러 포럼 중 가장 사람들이 몰렸던 부스가 자연친화적인 멕시코 전통 집이었다. 흙과 볏짚, 펫트병 등을 가지고 만든 흙집은 마치 한국의 황토집을 연상케했다. 태양열, 먹거리 등을 전시하는 이 공간에 몰려든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일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먹거리를 전시하고 대안적 흙집을 실제로 짓고 있는 중



생태문제, 쓰레기문제, 땅의 오염 문제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지구적 문제라는 점을 사회포럼도 심각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환경오염에 대한 퍼포먼스와 그림

세계 자본주의 질서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사빠띠스타는 멕시코 사회포럼의 주요한 한 이슈이자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멕시코 남쪽에 위치한 치아빠스주는 풍부한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착취와 억압을 당한 빈곤지역이었다. 사빠띠스타 운동은 치아빠스 지역의 인디오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토지와 문화의 자유, 원주민들의 권리, 여성인권, 복지와 개발, 민주주의와 정의를 추구하며, 멕시코 정부군과 무장투쟁하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들을 선전해왔다. 세간에는 여성의 파워와 역할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땅, 원주민과 자치 포럼 부스에 전시된 사빠띠스타 운동 사진들



내가 참석한 ‘군사화와 인권억압’에 관한 포럼은 남미의 정치적 억압 상황과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그 가족들이 나와서 증언하는 섹션이었다. 이것은 멕시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콰테말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지역의 문제였고, 토론자들은 이러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연대하고 조직해야한다는 제언을 하였다. 콰테말라에서 온 피해자 가족은 발표하면서 울먹였고, 내용을 이어가지 못하자, 경청하고 있던 사람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하였다. “사라진 사람들을 우리에게 데려다 달라. 꼭 살려서 여기 있게 하라.”



군사화와 인권억압 포럼 부스의 그림. 군사적 폭력은 멈추라는 구호가 눈에 띤다



군사화와 인권억압 포럼에서. 콰테말라의 한 여성이 인권상황에 관하여 발표 중.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이 플랭카드에 붙여져있다.

세계사회포럼이 각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 사람들의 삶과 노동, 섹슈얼리티,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세계경제포럼은 기업사장들, 은행가, 투자가, 정치인 등이 모여 글로벌 경제의 안정,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과 에너지 문제 해소, 무력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 등에 관해 논한다. 세계경제포럼도 미래를 염려하고, 공동협력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대안과 연대, 소통의 문제는 서로 다른 언어와 담론을 갖는다.

글로벌한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평화,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동일하나, 이를 경험하는 방식은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은 누구의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이 두 포럼은 보여준다.

또다른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포럼이 아름다운 언어로 자칫 말만 화려하게 될 수 있는 세계경제포럼의 대안적 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공감과 사람들과의 연결의식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할 것이다. 쏘깔로 광장의 축제는 이를 위한 기반이 되리라고 본다.

*엘리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이며, 성균관대와 성공회대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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