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r01
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죽음의 가치

-홍승희(평화여성회 웹진편집장)


김수환 추기경이 숨을 거뒀다. 선종했다거나 소천 했다거나 하는 종교적 표현들이 어색해 숨을 거뒀다고 했지만 실상 그의 죽음은 선종이라는 표현이 제대로 어울린다. 따뜻한 이웃 할아버지 같은 모습도 좋았던 어른이다.

그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은 그가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라느니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이라느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망자조차 기록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김수환 추기경은 엄혹한 시절 가난한 자, 약한 자, 쫒기는 자들의 편에 섰던 성직자의 모습으로 분명하게 각인됐다.

그는 그의 교회를 성경에 기록된 도피성, 우리 역사 속의 소도와 같이 만들었다. 실상 그가 지켜내고자 한 이들은 예수가 생전에 제자들에게 예수 자신을 대하듯 지켜달라고 부탁한 이들이었으니 그만큼 훌륭한 제자도 드물다.

민주정부의 출현을 보며 서울대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더 이상 ‘진보’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래서 변절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는 어느 때에든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정치적으로 휩쓸리기 보다는 나름의 중심을 잡고자 애썼고 말년에는 후임 교구장의 장애가 되지 않으려 몸을 낮춘 자세로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 이해도 가능하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일까. 참으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그를 추모하는 마음 한구석에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 거치적댄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다루라는 보도지침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협조요청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사후 만 하루를 넘기며 명백하게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갈리는 대목에선 자꾸 의심부터 갖게 된다.

그의 죽음은 분명 언론 입장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가치 있는 뉴스다. 그렇다 해도 대한민국이 그의 죽음으로 마비가 된 게 아닌 바에는 다른 뉴스가 끼어들 자리조차 못 얻도록 도배되는 현실은 비정상이다.

그 한사람의 영향력이 아무리 크고 위대하다 해도 그가 생전에 그토록 돌보고자 했던 가난한 이들의 공권력에 떠밀린 떼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들만큼 그의 죽음만 유독 가치 있을 수는 없다. 만약 그의 죽음이 언론 보도비중처럼 그렇게 약자들의 숱한 죽음보다 더한 가치를 지닌다면 그가 80여년 믿은 그 하느님은 매우 불공평한 하느님인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떠밀려 내려가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혼자만 그 물살을 거슬러 오르겠다고 벅벅 우기며 용쓰고 있어 숱한 서민들 곡소리가 터지는 마당이다. 그나마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할 단계다. 그런데 한 탁월했던 성직자의 죽음에 가려 그런 뉴스들마저 1면에는 그림자도 없이 밀려나 버렸다.

용산 사태는 강호순이라는 희대의 살인마를 뉴스 중심에 세우고 키워 슬그머니 묻고자 한 정부다. 그래서 여론조작 비난에 휩쓸렸던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에게 김수환 추기경의 사망은 절호의 찬스가 됐다. 끊임없는 뉴스 속으로 대중들을 몰아가다보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대중들이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고 마취에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 죽음 자체로서만 추모하게 해주면 안되겠니?’ 개그맨들을 흉내 내서라도 묻고 싶다. 추모하는 마음에 모래 뿌리지 말아달라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최종 글
337 200904:시가 있는 평화의 길-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 평화여성회 2010.03.29 3443 0  
336 200904:요즘 내가 본 영화-은영,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평화여성회 2010.03.29 2635 0  
335 200904:회복적 사법 '피해자가해자대화모임'에 다녀와서 평화여성회 2010.03.29 2938 0  
334 200904:지혜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다-2009년 1기 조정자과정 교육후기 평화여성회 2010.03.29 2341 0  
333 200904:차 한 잔의 단상-아들과의 대화 평화여성회 2010.03.29 2686 0  
332 200904:평화글쓰기-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평화여성회 2010.03.29 2984 0  
331 200904:평화를만드는여성회 임시총회개최 평화여성회 2010.03.29 2863 0  
330 200903:안암천변에서-대포동·개성 그리고 남·북 관계 평화여성회 2010.03.26 3140 0  
329 200903:함께 걷는 평화 걸음 평화여성회 2010.03.26 2411 0  
328 200903:사무국 리포트 평화여성회 2010.03.26 2177 0  
327 200903:평화포토갤러리-언니 내려놔 평화여성회 2010.03.26 2889 0  
326 200903:시가 있는 평화의 길-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평화여성회 2010.03.26 2339 0  
325 200903: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클래식이 귀에 들리면서 평화여성회 2010.03.26 1805 0  
324 200903:평화를 만드는 의사소통 평화여성회 2010.03.26 2501 0  
323 200903:평화 글쓰기-오늘을 위해 어제의 일기를 들춰보다 평화여성회 2010.03.26 1826 0  
322 200903:차 한잔의 단상-우리가 제 정신으로 살고 있는 걸까? 평화여성회 2010.03.26 2368 0  
321 200903:38여성대회에 다녀와서 평화여성회 2010.03.26 2098 0  
320 200903:다시 만난 38여성대회! 평화여성회 2010.03.26 2375 0  
» 200902:안암천변에서-죽음의 가치 평화여성회 2010.03.26 2412 0  
318 200902:함께 걷는 평화 걸음 평화여성회 2010.03.26 2111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