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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 정신으로 살고 있는 걸까?”
- 윤수경 (평화여성회 공동대표)
“한국사회는 참으로 역동적이다. 나는 너희 나라가 부럽다.” 가두시위와 휴교령, 불심검문과 도로차단, 자욱한 최루가스로 눈물,콧물을 달고 다니던 70~80년대에 외국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막으면 뚫고, 잡혀가면 다른 누군가 다시 데모를 하는 한국사회는 긴장 속에도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엊그제 지인 몇 사람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사회는 참 지루할 새가 없다.” 매일매일 깜짝 놀랄 뉴우스와 사건이 터져나온다는 말이었다. 두 얘기 모두 ‘우리 사회의 꿈틀거림’을 말한 것이지만, 둘 사이에는 20여년의 간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뭇 다른 현상을 다른 감정으로 한 말들이다.
최근 뉴우스 중에서 세 사건이 특히 내 시선을 끌었다. 그 하나는 김수환추기경의 선종모습을 “뵈려고” 3시간이나 기다리는 긴 행렬이었다. 조용히 경건하게 불평 한마디 없이 기다리며 서로 양보까지 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다른 하나는, 강호순의 6명 살인사건이었다. 현장검증하는 모습이 너무나 태연하여 TV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별것 아닌 일에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잠깐 의심까지 들었다. 다른 또 하나의 사건은, 어린 두 자녀를 목졸라 죽인 우울증 앓는 엄마라는 여자얘기였다. 9살,11살 아들,딸에게 수면유도제 주사를 놓고 목졸라 죽인 후 강도짓으로 위장했다니,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좁은 땅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이 사건들이 왜 내 의식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까? (연이은 연예인들의 자살사건도 내 사고의 범주를 넘어 어색하긴 마찬가지지만 그것까지 언급할 자신은 없다)
`괴물`이란 영화가 있었다. 독극물을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버린 후 어느날 나타난 ‘괴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괴력으로 사람들을 마구잡이 죽이고 데려간다. 영화는, 여태껏 본 적 없는 괴물 앞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어이없는 행태를 그렸다. 그런데 나는, 최근의 사건들을 보면서 ‘괴물’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원인으로 생각이 되돌려졌다. 도대체 무엇이 최근의 ‘괴사건’들을 발생시켰을까? 무엇이 3시간이나 기다리며 줄을 서게 만들었을까? 김수환추기경이 훌륭한 분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분의 장례식을 전후한 그 긴 행렬이 내 눈에는 좀 낯설어 보였다. 우리 사회 ‘일반적 현상’의 잣대로는 잘 가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호순 사건이나 우울증으로 두 자식을 죽인 사건이 부정적 측면에서 저 끝의 경계선에 있다고 한다면, 김추기경 장례식 사건 역시(긍정적이긴 하지만) 저 끝 경계선에 위치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대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이런 사태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기에, 어디 목놓아 울 곳조차 없어 그 많은 사람들이 3시간 넘어 기다리며 숨죽여 흐느낄 곳을 찾는가? 어떤 독극물들을 얼마나 많이 쏟아부었기에 친어미가 멀쩡한 두 자식을 목졸라 죽이고, 여섯 생명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제 정신으로 살고 있기나 한 것일까?
차라리 숨 막혀 죽겠다고 발광하는 데모라도 해야겠다. 그런데 집시법까지 저 지경으로 미쳐 돌아가니 아, 어찌할꼬,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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