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성진아 엄마가 혹시 네게 서운하게 했던 적은 언제니? 성진: 엄마가 별것도 아닌 일로 막 화내고 그랬을 때... 나 :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줄래? 성진: 급식 수저통을 개수대에 내놓지 않았다고 막 뭐라고 그랬을 때요.
온 몸의 피로를 느끼며 저녁 설거지를 할 무렵 6학년 아들의 급식수저통이 발견되지 않으면 때로는 활화산처럼 화를 냈던 순간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들이 자신의 할 일을 챙기길 바라는 것,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 나는 아들에 대한 무수한 비판적 판단을 가하는 얼룩진 소통을 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별거도 아닌 일로 자신을 평가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진정으로 내 속에서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친밀감임을 느낀다. 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대화를 시도한다
나 : 어떻게 하면 네가 개수대에 수저통을 미리 내놓을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자. 성진: 엄마 제가 종이에 ‘수저통 꼭 내다 놓기’라고 써서 책상앞에 붙여 놓게요. 그러면 그것을 보면 잊지 않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 : 그래, 한번 그렇게 해 보자구나. 아들은 ‘수저통 꼭 내다놓기’ 라고 큼지막하게 써서 붙여 놓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월화수는 잘 지켜졌다. 목요일에 놓치더니 금요일 수저통이 토요일 저녁이 되도록 나올 생각이 없다. 또 다시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것이 느껴진다. 나 : (억양을 낮추며) 성진아 수저통이 가방속에 그대로 있으면 온갖 균들이 득실거려 별로 좋지 않아. 종이에 써 놓은 글씨도 있는데 왜 내놓지 않았니? 성진: 죄송해요. 글씨 보는 것을 잊어 버렸어요. 나 : …
아들의 말에 어이가 없어 잠시 침묵했다. 다른 때 같으면 자동반사적으로 ‘저렇게 큰 글씨가 보이지 않다니 그게 말이 되냐’라고 했을 텐데..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 : 성진아 엄마는 수저통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성진 : 핸드폰 알람을 맞춰 놓을게요. 알람소리를 들으면 수저통 내놓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내놓을 게요. 나 : 그래, 그렇게 해 보자구나.
화가 났던 마음은 아들과 대화하면서 웃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들과 대화하면서 내면의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런 소통이 훈련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나의 삶에 자연스러움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