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이 없다. 이제는 지축을 울리는 군화발도 없건만 민주화를 향한 시대적 발전의 산물들이 폐기처분되고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 전으로 후퇴해간다. 퇴행적 행보가 행정적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법률에 칼을 들이댄다. 그 모든 게 다 합법적 절차라 한다. 모든 행위가 가능한 국회 구성비를 만든 국민들의 업보다. 반대의 목소리는 유리벽에 갇힌 합창처럼 대중 앞에 전달되지도 않는다. 이미 기성언론은 스스로 입을 닫았다.
영향력이 커진 공중파 방송들은 감사의 칼날이 어느 잣대로 어디를 향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친재벌 정책을 표방한 정부 앞에서 언론 통제를 위한 제2의 광고사태는 이제 겨우 눈썹만 보일 뿐이나 불경기의 한파 속에서 크고 작은 언론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몸을 낮춘다.
기성언론을 대신해줄 창구였던 인터넷에도 족쇄가 채워진다. 끝까지 추적해 본때를 보이겠다는 검찰의 서슬에 말하던 입들은 먹고살 일도 아닌 일에 더 이상 목숨 걸지 않는다. 학교 교육마저 30년 전으로 밀려 들어가며 대중은 한 방향만을 바라보도록 점차 길들여져 간다. 제 목소리인줄 알고 높이는 목청에 실린 대사는 정부가 원하는 한 방향의 것 뿐이다. 검찰의 모습은 주인의 눈치를 미리 살피며 꼬리치는 강아지의 모습처럼 비친다. 통수권자의 의중에 누가 미운털이 박혔는지를 알아서 들춰나간다. 30여 년 전 갑자기 증언대에 나온 이들의 얼떨떨한 표정이 기억나게 하는 기자회견 모습도 보인다. 물론 당사자들은 자발적 회견이라 믿을 테고 또 그리 말할 테지만 그 배경이 깔끔하게 미더워 뵈질 못하는 게 문제다. 기업들마저 그 한곳의 손가락이 어딜 향하는지에 따라 생사를 건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민영화의 길을 가는 은행들의 모습은 언론사들이 보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영화에 목숨 건 정부가 미처 민영화시키지 못한 은행에게서는 검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 모습이 훗날 역사 속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조차 멎어버렸다. 돈독이 오른 한국사회가 선택한 달콤한 환상이 가는 길이다. 이제도 그저 수수방관만 하다 통제없는 권력을 부여한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가 어떤 것인지 끝내 그 끝을 봐야만 하는 것인가. 내년 전망마저 우울한 연말에 이처럼 암울한 애가를 읊는 것으로 역사에 대한 빚이 청산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