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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Seedfolks )

김선혜(갈등해결센터 사회갈등분석팀장)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폴 플라이쉬만이라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클리블랜드에 쓰레기 더미 공터 주위에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베트남 소녀 ‘킴’이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추운 봄날 아침 쓰레기 더미 공터에 언 땅을 파고 강낭콩을 심으면서 시작됩니다. 킴은 고향에서 솜씨 좋은 농사꾼이었던 아빠가 공터에라도 녹색 풀들이 자라면 하늘나라에서 자신을 내려다 봐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해 콩을 심은 거죠.

그리고 킴이 콩을 심는 것을 창가에서 지켜본 이웃집 할머니 아나. 처음엔 킴이 나쁜 짓을 하는 줄로 의심하고 땅을 파보고서야 킴이 심은 것이 콩이라는 걸 알고 킴이 콩을 돌보러 오지 않아 콩이 마르자 이웃 웬델에게 콩밭에 물을 주라고 부탁도 합니다.

아나할머니와 같은 건물 1층에 사는 학교 수위 웬델, 아나할머니의 부탁으로 킴의 콩밭에 물을 주고 ‘인생에는 자기 힘으로 바꿔놓을 수 없는 게 부지기수로 많지만 쓰레기 하치장같은 공터 한 귀퉁이를 바꿀 힘은 남아 있다’며 공터 쓰레기를 치우고 밭을 갈기 시작합니다.

‘미국에 이민 오면 어른은 아이가 되고, 아이는 어른이 된다’는 놀라운 발견을 한 과테말라 이민 소년 곤잘로. 곤잘로는 텔레비전에서 얻은 영어실력 덕에 아빠대신 전화 통화하기, 집주인 아주머니 만나기 등 어른 노릇을 척척합니다. 그리고 콰테말라에서는 존경받는 어른이었다지만 인디언 말 밖에 모르는 할아버지 돌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한 공터 풀밭에서 곤잘로는 학교 수위 웬델 아저씨도 만나고, 흙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며 비로소 원래 ‘큰어른’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레오나. 공터에 사람들이 텃밭을 만드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도 텃밭을 가꾸기 위해 쓰레기처리에 나섭니다. 하지만 방법이 남들과 다릅니다. 클리블랜드 시청, 구청, 다음에 오하이오 주정부 마침내 연방 정부의 담당 부서까지 장장 6시간 반 동안 전화기에 매달려 쓰레기더미 공터가 시당국 소유지라는 걸 확인합니다. 그 다음날은 쓰레기더미 치울 것을 요청하는 전화를 합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돌아가는 전화 덕에 수화기 든 채 백발이 될까 걱정이 된 레오나는 ‘살아있는 인격체’임을 보여주기 위해 시청을 찾아갑니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대로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고, 번호표를 뽑아들고 공터에서 가져온 온갖가지 제시물-말이 좋아 제시물이지 냄새나는 오물덩어리죠- 봉지를 열어둡니다. 대기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곧바로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반전평화회의를 개최하며 세상을 낚은 어부였지만, 지금 먼저 웃어주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어부 샘.

택시를 운전하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고향에 있거나 심지어 죽거나 아예 있지도 친척들 몫까지 양상추를 키우는 버질의 아버지.

이민와서 남편을 잃고 혼자 세탁소를 하다가 강도를 만나 그 이후 사람을 회피했지만 텃밭을 가꾸면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된 세영.

‘찬장에 사과잼이 가득 있고 마당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옛애인의 맘을 돌리기 위해 토마토를 키우는 자칭 '미스터 USA' 커티샤. 병든 노인 마일즈씨의 간병을 위해 공터에 꽃씨를 뿌리고 가꾸는 노라. 텃밭의 경험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햇빛과 물과 계절의 순서만으로도 잘 커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새 생명을 키울 수 있는 힘이 있는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미혼모 마리셀라. 그리고 이렇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펼치는 수확의 잔치. ‘일체의 접촉을 피하라’는 생활철학을 깬 이웃들과 만남을 크게 기뻐하는 아이스.

단지 텃밭과 오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활력이 되는 플로렌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무엇을 어떻게 하자고 결의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한 자리에 모여서 했는지 보여줍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청하기도 하면서.

쓰레기 더미 공터는 사람들이 강낭콩 씨앗을 심으면서부터 기린초를 키우고, 호박을 심고, 양상추, 고추, 가지에 갖가지 야채와 꽃들을 키우는 과정에 쓰레기더미가 치워지고 텃밭으로 변신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치 ‘갈라진 바위 틈마다 혼자만의 집을 짓고 사는 게’와 같이 따로 살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이고 서로 소통합니다. 전기나 시계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계속 커가는 자연의 힘을 느끼고, 위험폭발물로만 봤던 흑인 소년이 실은 말을 더듬고 숫기없는 소년이었음을 알게 되고 텃밭 이웃의 관심과 사랑으로 ‘귀염둥이’로 바뀌고, 남편의 죽음과 강도의 공포로 사람들과 교류를 끊었던 이가 사람들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다시 세상으로 나옵니다.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얼마쯤까지도 그야말로 혼자만의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 그들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한 줄의 이야기가 아니라 형형색색의 선이면서 면이 되기도 합니다.

끊어졌던 끈이 이어지듯 놓았던 손을 잡듯 그렇게 이웃과 이웃이 이어졌습니다. 점과 점이 만나고 선과 선, 점과 선, 선과 면, 면과 면이 만나는 것처럼 텃밭으로 변한 공터에서 이웃의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세파 박사가 평화란 ‘인간관계의 망’이라고 정의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무겁거나 비장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생기가 내게 오는 듯한 텃밭가꾸기가 인간관계의 망을 만들고 유지하는 ‘평화’만들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리블랜드가 아닌 서울 하늘 아래 여느 동네도 저 공터에 강낭콩이 심어지기 전 그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언론에 단 세 집만 사는 다세대 주택에서 모르는 사람이 우편함을 뒤진다고 소동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래윗집 사이였다는 사연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혼자만의 집을 짓고 우리는 점점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망이 좁아지고 끊기고 분절화되는 모습입니다. 흔히 ‘인맥’과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나누기 위한 인간관계보다 내 필요만 채우기 위한 것처럼 편향된 해석이 횡횡하는 요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망이 회복되는 것을 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따뜻하면서 경쾌한 독서였습니다.

평화는 A부터 Z까지라는 말대로 다양한 정의가 있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올해 집 골목에 상추 화분과 고추 화분 하나를 내놓고 이웃과 나누는 것에서 평화만들기를 시작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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