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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노순택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주요 작업은 분단에 관한 현재적 기록입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교수신문」과 「오마이뉴스」 기자를 거쳐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지은 책으로 『분단의 향기』, 『반미가 왜 문제인가』(공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공저), 『여행하는 나무』(공저) 등이 있습니다.

붉은틀

1장 ‘펼쳐들다’는 북한사회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의 일단을 제시한다. 일사불란하고 화려한 단결이 춤을 춘다. 북조선식 종합예술의 긍지와 신념, 경이가 펼쳐진다. 나는 부제를 ‘질서의 이면’이라고 달았는데, 그것은 숨은 그림 찾기로 드러나는가 하면, 모습을 저 너머에 감추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사진은 질서의 표면을, 그것도 매우 협소하게 보여주므로, 이면을 읽어내는 건 그대의 몫이다.

2장 ‘스며들다’는 북한이라는 공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그 공간을 탐색하는 이들의 풍경을 담고 있다. 남한사회에서 이제 사진기는 사회구성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북녘을 방문하는 1백 명의 이방인들이 1백 개 이상의 사진기를 소지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북녘공간에서 가장 왕성하게 벌이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사진찍기일지 모른다는 예견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각자의 사진기는 기념, 이해, 경험, 감시, 정보수집의 다양한 차원에서 대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는 모종의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진기는 외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내부인들 역시 이러한 의식에 동참한다. 가끔 사진기는 상대방에게 건네져 우호와 기념의 정을 나누는 가교의 역할마저 담당한다. 이때 서로는 기꺼이 상대방의 사진사가 되어준다.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면, 거룩한 의식을 잠시 미룰 수도 있으리라. 허나 북녘 방문은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경험법칙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찍는 의식’은 미룰 수 없는 의무이자, 이 금단의 땅을 밟았다는 유일하고 거부할 수 없는 증인이 되어줄 것이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잠시 상상해 보자. 이런 곳에서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는 자는 얼마나 생뚱맞을 것인가. 언젠가 수전 손택은 냉전시기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당신은 왜 찍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은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찍어야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나는 2장을 통해 북녘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낯선 공간에 스며든 이들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각자의 사진기에 담긴 장면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또 어떻게 공유되고 유포되고 기념되었는지는 그냥 상상해 볼 뿐이다.

3장 ‘말려들다’는 북한이라는 거대상징이 남한에서 어떻게 재현, 제시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이는 몇 년 전 전시와 출판으로 내놓은 바 있는 ‘분단의 향기’ 연장선이기도 하다. 이 장면들은 아마도 북조선으로서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향취를 풍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장면들 속에 뭔가 논의의 지점이 꿈틀대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간단치 않은 고민과 과제가 숨어있다. 눈을 질끈 감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작품을 싣게 허락해주신 노순택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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