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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20807:어머니와 떠나는 첫여행

2010.03.22 14:52

평화여성회 조회 수:1529



어머니와 떠나는 첫여행


- - 이승헌 (YMCA `꽃들에게 희망을` 편집장)


홀로 되신 지 오래된 어머니, 이번에야말로 어머니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째, 어머니와 함께 미용실에 가서 파마하기(난 옆에서 보기) 둘째, 마트에 가서 어머니와 같이 쇼핑하기 셋째, 둘이 같이 오붓하게 영화보기 넷째, 어머니와 찜질방 가기 다섯째, 대망의 여행을 떠나기…. 사전에 미리 준비한 것들대로 진행하고자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와 미용실로 갔다. 큰누이의 혼사가 오고 가던 중3 가을, 처음으로 어머니가 파마를 하고 드라이라는 걸 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미용실을 들러 머리를 하고 형수님의 셋째 출산으로 인해 둘째 조카를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 목적지는 영암으로 정했다.


우선 마트에 들러 수박을 사고 큰누이 시댁이자 왕인 박사 유적지로 유명한 구림으로 향했다. 405년, 백제의 왕인 박사가 떼배를 타고 일본으로 천자문을 들고 떠났다는 상대포가 우리를 제일 먼저 맞았다. 당시에는 국제무역항이던 포구가 일제 때부터 주변 바다를 막아 농토로 개간하여 작은 저수지가 되어 있다. 월출산 주지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구림마을은 왕인박사 유적지와 함께 가마터 등 선사시대의 유물과 조선시대의 마을길, 그리고 1565년부터 창설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호남 향촌 사회의 전통문화유산인 대동계가 이어져오는 전통마을이다. A.D 5세기경에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왕인 박사와 풍수지리의 시조 도선 국사, 고려 태조 왕건의 책사였던 최지몽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우선 도기문화센터에 들렀다. 구림 도기가마터는 8~9세기 대규모 도기 제작장으로 도기에서 자기로의 기술 발전과정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도기라고 한다. 도자기센터를 지나 돌담길을 따라 사돈댁으로 향했다. 1년에 두 번은 찾아 가는 길인데도 흙담길로 지나다 보니 그 길이 그 길 같고 그 집이 그 집 같아서 운치 있는 남도의 멋을 소박하게 느낄 수 있으나 미로 속 같아 조금 헷갈렸다. 명절 두 번 사돈댁에 선물 보내는 것 말고는 왕래가 없던 터에 이렇게 사돈끼리 만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사실 누이의 결혼이 쉽진 않았다. 이곳 영암 구림마을 대동계는 무려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의 계로 향약 성격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어 주민 다수결투표 등 의결기구 뿐 아니라 전통 사회 규범의 잣대가 되어 주민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까지 담당해왔다. 혼사 때 대동계원의 자식이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무조건 데려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원도 아무나 못하고 학식과 경력, 인격 소양 등을 꼼꼼히 따진 후에 계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계원이 된다.



구림에서 문중 장손이 결혼을 하는데 얼마나 기대치가 컸을까. 그런 집안에서 흔쾌히 결혼을 찬성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결혼 이후 너무나 지혜롭고 인자하고 사랑스러운 시부모님이 있어 행복해 하는 누이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시부모님을 자랑하고 사랑하다고 표현한다.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며 환하게 웃음으로 맞이하는 사돈댁에서 건강에 대해 묻기도 하고 어색한 사돈끼리 모여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념사진도 찍고 아쉬운 작별과 함께 왕인 유적지로 향했다.

매년 3월 3일이면 왕인박사 추모제로 영암 일대가 바쁘다. 봄이면 벚꽃의 장관이 볼만한 도갑사 가는 길로 향했다. 중생이 사는 이 땅은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바세계라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을 모시면 그 자리는 그대로 정토낙원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 뜻을 모아 지극한 세상을 이룩하자고 세운 절이 도갑사이다. 세속에 있지만 세속을 벗어난 출세간의 이상향이며, 함께 닦은 수행의 공덕을 중생들에게 돌이켜 깨달음의 향기를 전파하는 곳이기도 하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웅전 법당을 돌며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외우던 시절을 떠오르면 다시 한 번 심호흡 가다듬고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해탈문을 들어섰다. 예전에 이곳을 찾을 때와 달리 탑과 석등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도갑사의 옛 자취를 발굴하던 도중, 탑의 기단석이 발굴되어 대웅전 앞 좌우편으로 있던 탑과 석등을 정면으로 옮겼다고 한다. 대웅전을 돌아 석조에 물이 없다고 구시렁대며 다시 주기도문을 외우던 중 갑자기 비가 내렸다. 속으로 ‘법당에서 주기도문한다고 그러나?’ 피식 웃으며 도갑사를 내려왔다.



여행의 피로도 풀 겸 월출산관광호텔로 향했다. 천연맥반석 온천수로 지쳤던 일상의 피로와 함께 어머니와의 여행이 저물었다. 다음날, 시골길을 지나던 중 어머니에게 손을 창밖으로 내보라고 하였다. “아이고 이래서 사람들이 손을 내미는구나. 어머니는 생전 처음 차장 밖으로 손을 내밀며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이 좋다며 좋아하셨다. 일흔이 넘은 어머니가 아직도 못해 본 것들이 많다고 하니 시간 내어 어머니가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도록 시간을 내 드려야겠다. 집으로 돌아와 조카들과 함께 한 영화를 보면서도 내심 어머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조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봤던 게 조금 미안하고 죄송했지만 어머니와의 짧은 여행과 데이트 속에 자식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느껴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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