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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평화여성회 5년이 내게 준 변화


-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


평화여성회가 10주년을 맞아 “나와 평화여성회”라는 주제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니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2002년에 5주년 행사를 한지가 엊그제 같고, 장충동 여성평화의 집으로 회의하러 가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평화여성회가 10주년이고, 세 번째 둥지로 이사를 했으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한 모양이다. 처음에 내가 어떻게 평화여성회에 발을 딛게 되었는지, 보람 있었던 일, 괴로웠던 일, 등등. 되돌아보면 나는 평화여성회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많은 변화를 겪었고 이런 점에서 많은 빚을 졌다. 내가 한 일보다 내가 받은 혜택이 컸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평화여성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2002년 1월 당시 대표였던 이현숙 선생과 김숙임 선생의 “유혹”에 넘어가서 평화여성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여성단체연합 대안사회정책연구소장으로 활동했던 것이 인연이 된 것 같았다. 대학에만 있다가 여성단체 활동을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평화여성회 공동대표로서의 회의와 일들이 정말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일들이 터지고 그러면 촌각을 다투어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리고 나면 뭔가 행동을 해야 하고...

그런데 평화여성회와의 인연이 나를 바꿔놓았다. 평화여성회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차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자연스레 찾게 되었다. 그 하나는 여성과 평화에 대한 연구이고, 또 하나는 국제연대였다. 내가 평화여성회에 들어와서 한 일중에 보람 있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리고 평화여성회가 내게 준 양향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이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 그동안 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왔는데 이제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평화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구조적 문화적 폭력 또한 소극적 평화를 넘어서는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만나면서 폭력에 대한 대안으로서 평화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평화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 일상의 이슈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통일, 남북여성교류, 북한인권 등 전에는 정치적인 이슈라고 생각하던 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국제연대를 하면서 많은 외국단체들과 교류하고 방문하면서 평화여성회의 역할을 넓히면서 내 시각도 넓어졌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셋째, 평화여성회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여성과 평화에 대한 연구와 관련해서 내가 한 일은 <여성과 평화> 4호를 낸 것과 <한국여성평화운동사>(2005, 한울)를 낸 일이다. 2004년에 여성평화연구원장을 맡으면서 세계화와 여성안보에 대한 독회를 시작했고 이 모임이 결실을 맺어 <여성과 평화> 4호에 특집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이 연구는 한국의 여성안보에 대한 연구를 덧붙여 <세계화와 여성안보>(2007, 한울)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편 <한국여성평화운동사>는 현재 원장인 김엘리씨와 함께 편집한 책으로서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여성평화운동의 기록들을 모아 정리하고, 이런 과거의 기록을 되돌아봄으로써 현재의 여성평화운동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여성평화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찾아보려는 것이 목표였다. 이 책은 한국여성평화운동사에 대한 최초의 책으로서 여성의 경험을 역사화하고 여성평화운동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여성평화운동의 연구와 교육, 정책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여성평화운동의 역사를 기록한 최초의 책이라는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이제 평화 이슈가 나의 관심과 연구영역으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되었다.

국제연대와 관련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다. 2004년 7월 이현숙 대표가 갑자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가게 되면서 이 대표가 맡던 GPPAC 동북아지역 공동발의자 역할이 나에게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국제연대로도 바쁘게 되었다. 2004년 9월 하노이에서 열린 아셈 민간포럼 참석을 시작으로, 2004년 10월 도쿄 피스보트를 방문하여 다음 회의를 위한 장소 섭외 등 준비를 했고, 2005년 1월 국내 여러 평화단체들의 15명의 활동가들을 꾸려 도쿄에서 열린 GPPAC 동북아지역회의에 참가하였다. 이때 정경란씨가 서울 포컬 포인트로 함께 활동함으로써 국제연대에서 평화여성회의 역할이 컸다. 당시 우리 대표단이 수적으로 가장 컸을 뿐 아니라 여성대표가 가장 많았다. 2005년 7월에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GPPAC 세계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때에는 NGO가 유엔본부 총회장을 차지하고 회의를 했을 뿐 아니라, 북핵문제, 위안부 문제, 아시아평화문제 등 우리의 이슈들도 다양하게 다루었다.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라 그런지 유난히 행사가 많았다. 2005년 8월에는 일본의 피스보트와 한국의 환경재단이 함께 시작한 Peace and Green Boat에 참석해서 중국 단동, 상하이와 일본 오키나와 등지를 둘러보는 평화기행을 했고, 2005년 9월의 평양방문은 북한에 대한 관심을 확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2006년 3월에는 GPPAC 동북아지역 회의를 금강산에서 개최하였고 2007년에는 몽골 울란바토르 회의에도 참가하였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평화여성회가 국제연대의 리더이자 구심점으로서 많은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영어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라서 국제연대를 맡게 된 것 같은데 처음에는 평화에 대한 관점에 부족한 점이 많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듣고 보는 것이 많아져서 점점 이론도 갖추고 관점도 확실해져서 말발도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글로벌 여성리더십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서 이런 쪽으로 여성지도자들을 육성해내는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7년에는 한국여성재단 후원으로 글로벌 여성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해서 보고서를 내기도 하였다.

평화여성회에서 활동하면서 보람 있었던 또 한 가지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화여성회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지만 특히 이현숙, 김숙임 대표와의 만남은 특별한 것이었다. 처음 여성운동단체에 발을 들여놓은 나에게 이 두 분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이 두 분과는 5년을 함께 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큰 수확이고 보람이었다. 또한 나 같으면 결정내리기 무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그들은 용기 있게 척척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 외에도 평화여성회의 많은 분들과 만난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이다. 왕언니로서 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을 베풀어주는 이낙호, 황순영 선생님을 비롯하여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괴로움도 토로하면서 시간을 함께 한, 이름을 들려면 끝이 없는 평화여성회 임원진과 회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쉬운 점은 많은 회원들과 보다 살가운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 아쉬운 점은 내가 평화여성회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 보다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2년에 공동대표가 되고나서 6개월 만에 안식년을 맞아 중국에 1년을 가 있었던 것이 고맙고 미안하다. 또 하필 그때에 나는 대학에서 여학생부처장, 사회대학장 등 여러 가지 본부 보직을 맡고 있던 때라서 학교에서 일이 많다 보니 평화여성회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데모를 말려야하는 입장인데 평화여성회에서는 데모를 해야 하는 모순된 입장이라 나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사정을 늘 배려해준 평화여성회에 감사를 드린다.

평화여성회의 10주년은 평화여성회 만의 10주년은 아니다. 한국여성평화운동의 10주년이라고 할 수 있고 나아가 한국평화운동의 10주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간 많은 회원들의 노력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화운동의 불모지인 우리 땅에서 지난 10년간 평화를 일구어온 성과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항상 재정이 부족해서 절절 매고, 사람이 부족해서 밤새고 이러다가 일이 되기나 되려나 하고 노심초사한 세월이 쌓여 어느덧 10년... 우리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우리사회의 평화운동사 측면에서 보자면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여성들이 조그만 힘을 모아 큰 일을 해낸 것이다.
이제 문제는 앞으로의 10년, 20년, 50년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여성회의 비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 평화여성회 회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평화여성회의 비전은 평화운동의 “가지 않은 길”을 과감히 선택해서 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시인은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아마도 쉽고 편한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시인의 모험가적이고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성평화운동 또한 이러한 선구자적이고 모험가적인 지도력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다른 평화운동이 하는 것을 따라서 하거나 연대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 평화운동의 관점은 별로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과 시도는 노력 없이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위해 평화여성회 회원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세 가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첫째, 여성평화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성평화운동의 다양한 분야들, 반전, 군축, 분단/통일, 여성인권, 평화교육/문화 등의 분야들 중에서 한두 가지를 선택해서 연구를 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여성평화운동에 임하는 자세와 관점에 있어서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셋째, 여성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평화운동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평화여성회 10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하고, 나에게 많은 영향과 변화를 준 평화여성회와 그동안 사랑을 베풀어주신 회원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평화여성회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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