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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김학묵(갈등해결센터 연구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평화여성회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내가 늦깎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무렵인 1998년 10월이다. 당시 나는 민족회의라는 통일단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물론, 당시에는 평화여성회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이나 관심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평화여성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당시 평화여성회가 주최한 한 통일 관련 심포지움에 참관한 적이 있다. 남북여성교류방안개발을 위한 심포지움이었는데, ‘평화실현을 위하여 통일이 필요하다는 접근 방식’의 통일운동에 대한 제안이 나오고 ‘통일’과 ‘평화’,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의 관계에 대한 주제가 자주 거론되어서 흥미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가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고민의 맨 앞에 평화여성회가 있었고 그 이후 평화와 통일의 조화와 상생을 위한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인연이 더욱 가깝게 된 것은 1999년 평화여성회와 몇몇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평화적 갈등해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때부터이다. 평소(!) 소심한 성격 탓에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에 상당히 서툴고 어색함을 느끼던 나로서는 그 프로그램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 이후 2년 가까이 계속된 교육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당시 함께 교육에 참가했던 분들, 주로 여성 참가자들이었지만, 그들로부터 왠지 모를 편안함과 여유 그리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연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 지금은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평화여성회와 인연이 시작된 후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간 사이, 나는 머리숱이 줄고 눈가엔 주름도 더 많이 생겼다. 잠시 딴 길로 새는 말이긴 하지만, 이런 것을 보고 삶의 연륜이 쌓여 가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길 바랄 뿐. 머리숱이 줄고, 눈가의 주름이 더 깊게 패인 그 짧지 않은 시간의 인연을 맺었던 평화여성회는 그렇다면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 보니 무심하게도 그동안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 한 티브이 방송에서 네모 칸을 채우는 질문을 던지고 그 빈칸 속의 답을 말하는 프로그램 하나가 재미있게 방송되고 있다. 자유롭게 빈칸을 채우며 엉뚱하고 기발한 대답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또 가끔은 그 엉뚱한 대답이 정답이 되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나도 그 형식을 빌어서 평화여성회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를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미리 고백하자면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그런 엉뚱함이나 놀라움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선, 평화여성회는 나에게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나름대로 평화여성회의 갈등해결센터 일의 한 주체가 되어 활동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어 이전만큼 센터 일을 못 하고 있지만 가끔씩이라도 찾아가 사람들과 만나곤 한다. 이런 저런 잡담도 나누고 프로그램 소식도 나눈다. 그러면서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평소 일에 묻혀 이런 주제에 둔감해진 채 ‘아, 어느새’ 하면서 지나버린 달력만을 넘기곤 하는데 그럴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점에서 나에겐 평화여성회가 지금도 내 일과 관계있고 삶과도 관계있는 주제, 평화와 통일 문제를 잊지 않고 고민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목화실과 같은 질긴 끈이다.

빈칸을 한 번 더 채우자면, 평화여성회는 나에게 주말마다 향하는 나의 집과 같은 곳이다. 평일엔 서울에서 머물고 있지만 주말이 되면 가족이 있는 ‘시골’에 내려가 서툴지만 농사일을 한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개발시대가 의도하지 않게 가져다 준 시골사람들의 유일한 문화적 특혜인 나무와 흙, 그리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누린다. 그럴 때면 서울에서의 지친 몸과 마음이 풀리곤 한다. 그런데, 평화여성회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일방적이지 않으며 대신 자잘한 속삼임과 웃음이 있다. 비록 일로 만나게 되더라도 그 일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며 찌푸리는 얼굴도 거의 없다. 흔히들 세심함과 평화지향성이 여성성의 하나라고 이야기하는데 바로 그런 것을 실감할 정도이다. 너무 과장된 느낌 아닐까 하고 의심을 가질 이도 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겐 시골 고향집이 주는 평화로움과 여유로운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바로 이러한 느낌 때문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평화여성회와의 인연이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는다.

평화여성회가 우리 사회 평화운동의 지평을 넓혀 온 지 10년째 된다고 한다. 사람살이에 희노애락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평화여성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고 또 그에 감사하듯이 평화여성회의 10주년을 축하하고 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앞으로도 더 다양하고 풍부한 활동으로 우리 사회 평화운동의 ‘고전’과 ‘전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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