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이우정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대추리가 생각났습니다. ‘자식같은 땅'을 빼앗기고 울부짖던 대추리 주민들의 얼굴이 떠올라 기쁨보다는 슬픔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수여되는 평화상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번거롭게만 느껴졌습니다. 받아야 될지 망설였습니다. 운하반대 종교인 100일 걷기 생명평화순례단과 함께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대추리 꿈을 꿉니다. 깨고 나면 얼마나 허망한지 모릅니다.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라기보다 우리들이 대추리를 버렸다는 자책감이 알게 모르게 나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슬픔과 원망, 분노와 긴 외로움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따뜻한 마음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쟁지역에서의 활동은 내 안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나 봅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렀고, 그 소리를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난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더욱이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해온 일인데 특별히 선정되어 상을 받는다는 것이 미안하고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과 함께 받는 것이라 생각하니 위로가 되고 기쁩니다. 그동안 이 길에 함께해온 동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바람은 실체는 없지만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볼을 스치는 바람을 통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냥 그곳에서 바람처럼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오두희님은 1955년 전라북도에서 출생, 대학졸업 후 현재까지 노동운동, 평화운동을 위해 헌신한 보기 드문 여성활동가입니다. 1970년대에는 전북지역의 대표적 다국적기업인 아시아스와니투쟁을 비롯하여 풀뿌리 노동운동과 민주노조 결성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 전북지역 노동사목 활동가로서 노동자들의 교육, 해고자복직투쟁, 그리고 노동자들의 독자적 미디어 활동을 위한 전북지역참소리(민중언론) 결성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개척자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지역의 풀뿌리 평화운동, 남한의 미군기지 감시운동, 생명·평화를 위한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을 통하여 지역과 전국에서 평화운동가로서의 역량을 드러냈습니다. SOFA 개정과 감시를 위한 집행위원장으로 일했을 때에는 미군기지 감시와 미국의 대한반도불평등조약에 대한 저항운동을 범국민적 평화운동으로 그 불씨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하여 그녀는 생명·평화운동에 대하여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실천적 결단으로 ‘평화바람'을 결성하여 한반도 안에서 적극적으로 발전해야 할 평화권과 이를 실현해가는 평화운동에 나서며 작은 공동체, 지역 풀뿌리단체들과 함께하는 거리의 평화문화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