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느날 갑자기 촛불 하나씩 들고 광장에 모여들던 아이들이 역사를 바꿔가려 하는 데 저 아이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났나 싶었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들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386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리는 세대, 한국사회 진보의 아이콘이인 그 세대의 자녀들이다. 이 사회의 진보에 회의하며 386 다 어디 갔느냐고 빈정대던 이들을 무참하게 만드는 사건이 이 아이들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그간 온라인에만 갇혀 지내는 줄 알았던 10대들이 오프라인 세상으로 뛰쳐나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입시지옥에 매몰돼 무얼 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 싶었던 중`고등학생들이 분노마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호로 표출하며 생기발랄하게 거리로 튀어나와 패배감에 젖어들었던 어른들을 들깨웠다.
이명박 대통령을 2mb 저용량 CPU로 비유하며 한 손엔 재치 반짝이는 자그마한 피켓 한 장씩 스스로 제작해 들고 다른 한 손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우리의 아이들이다. 모든 언어를 압축, 사용하던 능력으로 광우병 걸린 소도 삽시간에 ‘미친 소’로 압축, 노랫말로, 구호로 다양하게 활용할 줄도 안다. 그 아이들이 밀알이 되어 6월10일 드디어 100만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겁을 낸 정부는 광화문 한 가운데 길을 컨테이너들을 이층으로 쌓아올려 막고도 불안해 컨테이너끼리 용접해 거대한 장벽을 만들고 그 안을 모래주머니로 채웠다고도 했다. 그 앞에서 장벽을 무너뜨리려 하기보다 차라리 ‘광우장성’이라 이름표 달아주고 옆길로 행진하며 시위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광장이 열리면 모여들고 길을 막으면 널리 퍼져가며 계곡 타고 물이 흘러내리듯 그렇게 유연하게, 평화롭게 주장을 펼쳐간다.
조직이 없으면 움직일 줄 몰랐던 부모세대마저 뛰어넘으며 자발적으로 하나둘 모여들어 광장을 메워가는 물결을 이뤘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저들 모습에서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 아이들의 부모세대는 나이가 들어 이제 486 혹은 일부가 586쯤으로 업그레이드도 됐으련만 여전히 386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리며 우리 사회 진보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기성 미디어의 집중 포화와 기득권 세력의 이 악문 저항을 받아낸 지난 5년을 그들 세대의 실패한 정치실험 쯤으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가 정치 자체의 무기력증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들 386이 그렇게 마른 잎처럼 사라져 갈 줄 알았던 이들이 아마도 많았을 터이다. 그렇게 믿었던 이들은 지금 광장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게다. 거기서 말라버렸던 잎이 다시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물론 저 10대들은 탈정치의 세대들이다. 저들의 바로 위 선배들일 지금의 대학생들도 각 대학마다 소위 비운동권 학생회장의 잇단 당선으로 정보기관들이 희희낙락 했더랬다. 그들까지 이제 동생들이 시작한 촛불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거리로 나서는 데 정치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킬 줄 알게 잘 키워졌다. 저토록 아이들을 잘 키워낸 386세대 여러분, 진정으로 감사하고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