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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여성회 : 여성평화뉴스레터


늦기 전에 협상무대로 돌아가야

- 김연철(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지난주 북미 제네바 회담이 있었다. 평가가 엇갈린다. 장기 교착의 길로 들어섰다는 비관적 결론과 협상타결의 가능성을 남겼다는 관망적 평가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임기 내에 2단계 불능화 조치를 마무리하고, 최소한 3단계인 북핵 폐기 단계를 개막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 신고의 고비를 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형국이다. 2008년은 과연 이런 식으로 흘러 갈 것인가?

서두르는 미국, 계산하는 북한

부시 행정부는 분명 서두르고 있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마무리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흘려보낸 시간이 아쉽다. 부시 행정부가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깨달은 시점은 임기 6년을 보냈을 때였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했을 때였다.

2007년 1월 베를린에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처음으로 진지한 양자협상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2.13 합의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문제로 꼬박 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1단계 영변 핵시설의 폐쇄가 이루어졌다. 2007년 하반기부터는 신고를 둘러싼 입장차이가 지속되고 있다. 2007년 말까지 2단계 조치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은 지켜지지 않고 해를 넘겼으며, 여전히 대치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미국은 보다 유연해 지고 있다. 여기서 신고 문제의 실체를 정리해 보자. 북한이 지금까지 생산한 플루토늄의 양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타협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핵심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 확산 의혹이다. 북한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다.

미국은 어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최소한 확인된 사실에 대한 북한의 해명을 요구해 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러시아에서 수입한 150톤의 고강도 알루미늄관의 행방에 대해서는 북한이 해명할 의무가 있음을 주장해 왔다. 모르긴 몰라도 시리아 핵 확산과 관련해서도 정상적인 원자력 기술이전의 차원에서 북한이 개입한 흔적이 있다는 주장을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미국의 태도는 이번 제네바 회담에서 달라졌다. 북한이 의혹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해명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신고 단계를 넘을 수 있는지, 그 기술적 해법에 몰두하고 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 볼 때, 두 가지 방안이 유력하게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미국 측의 우려를 적시하고 북한 측이 반박하지 않는 방안, 이른바 간접시인이다. 둘째는 미국과 북한의 서로 다른 입장을 병기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 당시 활용했던 '상하이 코뮈니케'방식이다. 당시에는 타이완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양국이 입장 차이를 보였는데, 결국 코뮈니케는 타이완이 중국의 1개성이라는 중국 주장과 중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을 인지한다는 미국 입장을 병기함으로써 타협할 수 있었다.

두 방안 모두 의혹의 실체는 남겨둔 채, 신고의 형식적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한 수순이다. 시간 제한에 걸린 미국의 입장에서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망설이고 있는가? 직접시인이 아닌 방식으로 신고의 형식 요건을 갖출 수 있다면 북한도 손해 볼 일은 없다. 최소한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북한의 요구사항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망설임에는 '고이즈미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행적에 대한 약간의 시인이라도 그것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고, 결국 도쿄에서도 그랬지만, 워싱턴에서도 강경파들의 개입을 초래할 여지가 있다. 힐 대표가 제안한 간접시인의 기술적 해법도 과연 워싱턴 내부에서 공적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시 되는 상황이다.

더욱 중요한 고려사항은 2단계가 마무리 되면 바로 3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3단계에 사용할 협상수단을 비축하고 있다. 경수로 문제도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 있고,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해제가 과연 추가적인 경제제재 완화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전반적인 북미 양국의 정치적 관계 개선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어야 북한은 3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결국 북한은 부시 행정부 임기 내 적절한 시점에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맞바꾸는 수준에서 마무리 할 가능성이 높다. 3막은 차기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에서는 뭐 이 정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저물어 가고 있는 부시 행정부 8년

이제 냉정하게 2008년 북핵 협상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농축우라늄 의혹 등은 해소하기 힘들어졌다. 과거의 의혹 해소는 앞으로의 신뢰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겠지만, 현재의 북미관계 수준에서 쉽지 않을 듯하다. 현실적인 목표는 가능한 신고라는 형식적 절차를 충족해 2단계를 완료하는 것이다. 이 또한 북한은 3단계의 정치적 환경을 고려해서 적절한 시점을 고를 것이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 8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불능화가 마무리 된다는 점을 가정하고, 과연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보다 북핵 해결을 진전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북핵의 동결에 머물렀다면, 부시 행정부는 핵시설의 불능화를 마무리 했다는(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결국 부시 행정부 임기내에 북핵 폐기 단계인 3단계로 진입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극단으로 갈릴 것이다.

3단계를 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면, 부시 행정부는 그야말로 가혹한 역사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002년 10월 이후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면서, 북한은 두 번의 재처리 과정을 통해 플루토늄을 33~45kg 정도 얻을 수 있었다. 핵무기 5개에서 8개정도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나아가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물질을 핵무기로 전환할 수 있었다. 영변 핵시설은 이미 수명이 다한 것이고, 북한은 어차피 폐쇄해야 할 핵시설을 불능화 협상을 통해 중유 100만 톤을 받고 팔았다. 덤으로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해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능화의 완료는 그래서 성과로 평가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가 8년 동안 한 것이 무엇인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동결된 핵시설을 핵무기와 다량의 핵물질로 바꿔 놓은 결과 외에 무엇이 있나? 실패한 외교의 참혹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남은 시간동안 보다 과감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부시 행정부는 더욱 다급해지고, 북한은 좀 더 느긋해 지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은 관중이 아니라 선수다

2008년이 '그럭저럭 2단계'라면, 한국의 책임은 더 커진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한반도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북핵 협상의 무대에서는 한국이라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슬그머니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가 폐기될 때까지 구경만 할 참이다. 외교부의 업무보고에서도 북핵에 관한 대통령의 언급은 거의 없었다.

중국이란 선수는 올림픽 개최에만 신경을 쓰고, 일본은 아직도 납치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야 솔직히 말해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지만, 한국이란 선수마저 경기장을 떠나 응원하겠다고 나서면, 과연 6자회담은 어디로 갈 것인가?

거듭 말하건대 한국은 관중이 아니라 선수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은 한미관계를 통해, 그리고 남북관계를 통해 협상국면의 관리자로 뛰었다. 한국의 협상 노력은 워싱턴 내부에서 협상파의 활동 근거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한국이 더 이상 선수이기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강경파의 활동 근거로 둔갑할 것이다. 한국도 움직이지 않는데, 왜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양보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이미 워싱턴에서 넘쳐나고 있다.

남북관계를 통한 설득 노력도 사라지고 있다. 이미 대립의 조짐이 생겨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접촉의 속도가 떨어지면 악재는 확대 재생산된다.

언젠가 관중석에서 자신이 선수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선수가 되려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국제적인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논의되는 우려할 만 한 상황이다. 국제적인 경제위기와 더불어 안보위기까지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참으로 걱정된다.


* 이 칼럼은 코리아연구원과 여성평화뉴스레터에 동시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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